날이 흐리다. 그래서일까, 켜놓은 노란 조명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명절을 앞둔 주말인데, 거리엔 어쩐지 사람이 없다.
가을맞이 빗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오락가락하지만, 덕분에 무덥던 여름이 물러간 듯하다.
책방의 에어컨을 끄고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편히 드나들 수 있도록.
그러나 오늘은 발길이 뜸하다. 지나가는 사람조차 드문 이 고요함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물론, 간혹은 머물 생각도 없으면서 책을 이리저리 흩어놓고 시끄럽게 굴고 가버리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땐 짜증이 확 밀려오지만, 오늘은 그런 이조차 없어 조용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용함이 반갑지만… 또 운영은 걱정이다.
영원한 딜레마.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은데, 사람이 없으니 운영이 안 된다.
책방 앞 전깃줄엔 빗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지금은 분명 한낮인데, 하늘은 어둑하고, 그 분위기가 참 좋다.
이런 날이 참 좋다.
며칠째 붙잡고 있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다 읽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성경의 구절들 덕분에 더 친숙하게 읽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바로 또 다른 책을 펼쳤다.
이번엔 짧은 단편을 모아놓은 제주살이 에세이집이다.
제주는 나에게 늘 로망이었다.
떠나지 못하는, 떠나지 못했던 인생 속에서 제주살이는 언제나 꿈이었다.
그래서일까,'연금술사'책 속 산티아고의 삶이 부러웠다.
나는 떠나지 못하는 인생을 오래 살아왔으니까.
짧은 가을, 더 깊어지기 전에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책방을 잠시 닫고, 숙소 예약도 막아두고, 집안일은 남은 가족에게 맡긴 채.
떠나보는 삶.
생각만 해도 발이 무겁다.
나이를 먹고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퇴직까지 했으니 이젠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었던 걸까.
무엇이 두려워 스스로 족쇄를 채웠던 것일까.
북모임 지인이 보내준 국화 화분이 책방 앞을 지키고 있다.
소담한 꽃잎이 오가는 이를 반기듯 조용히 피어 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길을 책으로 돌린다.
비록 지금은 떠날 수 없어도,
책이 열어준 길 위에서
조용히 내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