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 토교마을에서

'노을이 내리는 나루'의 가을

by 기빙트리

토교마을에 가을이 왔다.

잔디마당에 쏟아진 낙엽을 갈퀴로 긁어 모아 불멍화로에 넣는다.

불길이 낙엽을 한 장씩 삼킬 때마다, 매해 이맘때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마른 낙엽을 태우면 갓 볶은 원두향이 난다.”

누가 처음 그런 말을 했을까. 시적이면서도 정확한, 코끝을 타고 스며드는 그 묘한 향.

매운 눈끝에 눈물이 맺힌다.

마당 끝 화단을 돌아보니, 지난해 듬성듬성 잘라 놓았던 국화에서 다시 봉오리가 올랐다.

심은 기억도 없는 꽃무릇과 가을 들꽃들이 군데군데 고개를 내민다.

언젠가부터 나는 새로 꽃을 들이지 않는다. 다만 모양만 조금 다듬을 뿐인데, 철이 오면 새 꽃이 알아서 피어난다. 손을 덜 댈수록 자연은 더 제 모습으로 들어선다. 그 자연스러움이 좋다.

사람 발길이 드문 이 마을에서 요즘은 고양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숙소 마당 여기저기에 사료와 물그릇을 놓아두었더니, 낯익은 얼굴 사이로 어린 녀석들이 가끔 섞여 나타난다. 그들에게 이곳은 얼마나 좋을까. 널찍한 잔디와 풀숲, 먹을거리, 그리고 해롭지 않은 환경.

그 기본만으로도 ‘노을이내리는나루’는 이미 충분히 좋은 곳이 된다.

오늘은 책방 휴무일. 큰맘 먹고 숙소의 모든 패브릭을 떼어 세탁기에 넣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자잘한 곳곳을 손봤다. 손님 하나 없는 집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이것 저것 일을 한다.

묵은 먼지가 걷혀 나갈 때마다 나 또한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

일을 하면서도 이 시간은 나에게 충전이 된다.

실내에서 바느질을 하다 창밖을 보면, 마당에서는 고양이들이 천진하게 논다.

가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오래도록 눈싸움을 하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장난을 이어간다.

몇 해 전만 해도 까칠하던 흰둥이는, 나이를 먹고 몇 번의 출산을 겪어서인지 몸이 늘어지고 행동이 굼뜨다.

요즘은 내가 마당에서 풀을 뜯고 있으면 가끔 내 주위를 빙빙 돌기도 한다.

예전에 노랑이 같으면 엄청 나를 훑고 다니며 놀자고 했을 텐데

떠난 고양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다 보면, 조금 서글퍼 진다.

마당냥이들은 대개 어느 정도 시간을 함께 보내다, 어느 날 문득 보이지 않게 된다.

소식 없이 끊긴 그 하루가,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서글프다.

오래 머물 것만 같던 생도 이 마을의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걸, 이 아이들이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가르쳐준다.

낙엽 타는 냄새와 함께 오후가 기울고, 해는 낙동강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집 안에는 막 건조기에서 꺼내 펼쳐놓은 패브릭의 향기와 세제 냄새가 엷게 배어 있고,

밖에서는 고양이들이 서로를 쫓으며 가늘게 우는 소리를 낸다. 내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어 간다.

무엇을 더 보태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시간.

이 평범함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낙엽을 긁어 모아 태우고, 마당냥이들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누군가의 잠자리를 말끔히 정돈하는 일,

그리고 저물녘 불꽃같은 노을을 바라보는 일.

사소하고 단정한 루틴 속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다시 꿰매어 본다.

이 바람 끝의 차가움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더 단단히 붙들어 준다.

그렇게 가을이 왔다. 토교마을에도, ‘노을이내리는나루’에도, 그리고 내 안에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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