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를

불안과 무기력도 삶의 원동력이 된다.

by 이키드로우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눈이 약간 따끔거리긴 하지만

다시 자고 싶지는 않다.


잠을 줄여가며

뭘 열심히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냥, 조금 불안해서일까?


괜찮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되뇌어 봐도

솔직히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린다.

방음이 나쁘지 않아

그리 거슬리게 들리진 않는다.

되려

새벽의 고요함을 증명하려들듯

웡웡 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지만 선명하게

울려온다.


똑바로 누워 자면

허리가 좀 아프다.

요즘 단시간에 좀 살이 붙어 그런지

아니면 자세 같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반듯하게 누워 자면 허리가 아파온다.

똑바로 누웠을 때

어딘가 신경이 눌리는 걸까?


30대 후반에

내가 만든 회사에서

공동 대표와의 갈등으로

도망치듯 나오게 된 후로,

목, 귀, 허리 등이 더 아프게 된 것 같다.


오늘,

불안의 이유 중에서

건강의 이유도

크게 한몫하는 거겠지.


나이가 찰수록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아지는데,

체력과 에너지는

더 젊을 때만큼 받쳐주지 않으니,

이것도 큼지막한 스트레스 중

하나이긴 하다.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글을 쓸 때는

뭔가 좀 더 희망적이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결국 글의 방향은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하게 되는 것 같다.


나를 위한 독백을 쓰기로 한 책이다 보니

더 그런가 보다.


불안과 무기력 같은 소재를 다룰 때면

한편으로는 읽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좀 더 산뜻하고 명랑하면

더 좋으련만,

종종 그렇지 못한 어두운 면을

드러내 보이는 듯해서

송구스러운 맘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의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좋아 죽겠어’ 까진

아닐지 몰라도

내 안의 이런 어둠들을

그냥 끌어안는 경지에는

도달한 것 같다.


’ 받아들이자.

이런 모습이 바로

나야.‘

하는 마음으로

나를 반듯하게 맞이해 본다.


불안과 무기력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것이고

받아들이는 건

받이 들이는 별도의 몫이다.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다행이다.


그나마 건전한 방법으로

나를 다시 다 잡을 수 있어

진짜 다행이라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감정과 생각을

글로 양껏 쏟아내고 나면

뭔가 문제를 바깥으로

끄집어 내놓은 듯하여,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마음이 놓인다.






불안과 무기력이 만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처박혀 뒹굴거릴 것 같지만

불안과 무리력은

오히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글을 쓰게 만들고

그림에 몰입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게 만든다.


밝은 영혼의 소유자는 아닐지 몰라도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야겠다는,

굳은 의지의 사람은 맞나 보다.


삶에 집착이나 생에 대한 미련은 없다.

하지만

살아있다면

제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머리와 맘속에

확실히 각인되어 있다.


다만

불안과 무기력이

삶의 양분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좀

힘겨운 일이긴 하다.


긍정과 밝음,

명랑함과 유쾌함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그런 밝음의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그것은 순간순간의 이벤트처럼

반짝 빛났다가 곧이어 흩어져 사라진다.


대부분의 순간은

불안과 무기력을

견뎌내기 위해 싸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거기에

우울이 더해지지 않았다는 점.

우울까지 더해졌다면

뭔가 할 의욕도 없었겠지만

다행히 우울하진 않다.


바라건대,

불안과 무기력들이

나를 습격해 올 때

지금처럼만 잘 버텨주기를.

글과 그림이 방패가 되어

내 삶을 잘 지탱해 주기를.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에 기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는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