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워라밸을 스스로 찾아가는 스웨덴인들의 모습
워라밸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스웨덴에 있는 맥킨지에 다닌다고 하면 처음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글로벌 Top 3 컨설팅 펌이라 하면 강도 높은 업무에 계속된 야근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스웨덴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워라밸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워라밸이 대부분 잘 지켜지는 스웨덴 회사들과는 달리 맥킨지 스톡홀름은 아무래도 스웨덴 외의 다른 지역들과 함께 일하는 글로벌 회사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스웨덴 기준으로는 워라밸이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1년에 보통 25-26일 휴가가 나오는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맥킨지는 1년에 30일 휴가가 나왔는데, 대신 계약서에 야근이나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은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 일주일 내내 야근하면서 회사에서 점심과 저녁까지 다 해결하며 야근하는 날도 많았는데, 별도로 야근 수당이나 시간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추가로 4일 휴가를 주지만 실제로 일 년 안의 초과 근무 시간은 4일보다 훨씬 많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과 컨설팅이라는 너무나도 상반된 두 가지 영역에서 서로 공존을 찾아가는 스웨덴인들의 모습은 꽤나 인상 깊었다.
많은 업무량 속에서 워라밸을 찾아가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자신의 일 외의 일상생활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방법이다. 가장 흔한 경우는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오후 4시부터 한 시간은 유치원이나 학교 픽업을 간 후에 6시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고 팀원들에게 양해를 먼저 구한다. 맥킨지의 많은 파트너(임원)들은 오후 6-8시에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로그아웃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로그아웃 한 시간 이후로는 다시 업무를 이어나가고는 한다. 꼭 아이가 없더라도 프로젝트 시작 전 팀원들끼리 자신의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서 꼭 지켜져야 될 부분은 미리 공유를 하고, 팀 리더도 팀원들에게 프로젝트 시작 전에 지켜야 되는 일정이 있는지 꼭 물어본다. 가령 매주 화요일 저녁은 꼭 요가를 하거나, 수요일 저녁은 러닝 클럽을 나가는 등, 자신의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 혹은 건강하고 행복한 자신의 일상생활을 위해 꼭 지켜야 되는 한 가지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럼 다음 날 중요한 보고나 데드라인이 있지 않은 이상 일이 아직 남아 있더라도 퇴근을 할 수 있다. 나도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PM(Project Manager)이 수요일마다 축구 연습을 가야 된다고 모든 팀원들이 다 야근하고 있음에도 먼저 퇴근하고는 했다. 팀원들은 다 남아있는데 리더가 떠나는 관경이 조금 어색하다가도 결국 자기 멘털과 건강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나도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번아웃이 오지 않으면서 오래, 그리고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일이 남았더라도 스스로를 챙기면서 일을 해야 된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당장 단기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한 직원이 번아웃이 와서 반년씩 휴직하는 것 역시 큰 손해이기도 하다.
맥킨지에서 근무하던 중 가장 업무량과 스트레스가 많았던 프로젝트에 투입된 적이 있었다. 규모가 굉장히 큰 프로젝트에 변경 사항이 잦은 프로젝트였고, 실무를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나 하나였기 때문에 아침 8시부터 저녁 9, 10시까지 끊임없는 미팅과 작업량을 쳐내야 됐었다. 두 달 내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종일 근무를 하고 난 후에 주말에는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그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약 10명의 팀원들 모두가 최소 2주씩은 휴가를 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중 가장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은 오늘 끝내야 될 일은 아직 남아 있는데, 나의 사수가 저녁 9시나 10시에 아직 슬랙에 온라인 표시가 켜져 있는 나에게 어서 마무리하고 퇴근하라고 했던 점이다. 업무는 아직 남아있는데, 얼른 퇴근하라고 하는 사수의 말이 너무 아이러니했기에 마지막까지 업무를 끝까지 마친 후에 퇴근하고는 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결국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겼고, 결국 마지막 1-2주에는 업무 시간에 양해를 구하고 병원을 여러 번 다녀와야 됐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배운 점이라면 결국 업무량이 많을 때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물론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은 맞지만 모든 것에 예스맨이 될 필요는 없고, 자신이 감당이 안 될 정도가 되었을 때 오늘 하루는 정시 퇴근해야 되겠다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하루쯤 정시 퇴근한다고 해서 대단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 전까지 약 30년간 계속되는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이고, 10시에 퇴근하라고 했던 나의 사수는 이 큰 그림을 미리 알고 있던 것이다.
평소에 내가 꽤나 존경하던 임원 분이 있었다. 매번 프로젝트 5-6개를 한 번에 저글링 하듯이 매니징 하며 오전 내내 끊임없이 미팅을 진행해도 점심에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나름이었다. 그리고 웃는 이유도 진심으로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어서, 혹은 클라이언트한테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줘서 등 일에서 오는 보람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러던 임원 분은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나서는 앞으로 80%만, 월요일부터 목요일만 일하게 되었다고 선포하셨다. (맥킨지에서는 감사하게도 80%만 일한다고 결정하면 그에 따라 월급과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그래, 지칠때도 되셨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즐겁게, 그리고 또 진심으로 일하시던 분이 그러시니까 좀 아쉽기도 했다. 그 분은 자기가 너무 재밌게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슬 번아웃이 오는 것을 스스로 느꼈고, 당장 자기가 15-20년 뒤에 퇴직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적고 나서 이 리스트를 20년씩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80% 일하시면서 아내 대신에 아이들 학교 픽업을 더 자주 가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운동과 악기를 다시 시작했다고 하셨다. 물론 평소에 100%, 혹은 120%씩 일할 때보다 실적은 차이가 있지만 젊을 때 돈은 비교적 많고 시간은 없는 대신, 퇴직 후에는 돈이 없고 시간이 많은 트레이드오프가 싫다고 하셨다. 임원이 된 레벨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으셨을건데, 오히려 임원이 되어서도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먼저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 같아서 고마웠다.
유럽에서의 너무 아름다운 일상을 나만 보기 아까워서 유튜브 채널 (아이디: sohmnm)을 만들었다. 유럽 일상을 더 생생하게 보고 싶다면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