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과 연봉 인상 요구 시기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돈이나 연봉과 같은 수치로 나의 가치가 증명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봉 협상은 가장 껄끄러운 대화 주제이다. 나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하면서 연봉을 높여가야 되지만 이익 추구가 최우선인 회사 입장에서는 연봉 앞에서 그 누구보다 더 깐깐해진다. 특히 맥킨지에서는 입사할 때 자신의 연차와 레벨을 가장 최소한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 입사하는 것에 비해서 연차를 낮추거나 올리지 않은 상태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입사 후 연봉 협상을 할 때마다 껄끄럽고 불편한 대화였지만 나름 합리적이고 공평한 맥킨지의 시스템 덕분에 나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상사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맥킨지 내부에서도 회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꼽자면 채용과 승진 두 가지를 꼽는다. (채용 관련해서는 다른 화에서 다루도록 하고...) 일 년에 두 번, 6개월에 한 번씩 승진과 연봉 협상이 자신의 'DGL'과 이뤄진다. 'DGL'이란 자신의 직속 상사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별로 팀 구성이 수없이 바뀌는 컨설팅 업계의 특성상 DGL이 자신의 직속 상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일을 함께 하지는 않는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오히려 프로젝트 팀이 가장 덜 겹칠 수 있는 사람으로 DGL을 정해준다.
그리고 스스로가 승진을 할 자격이 충분하고, 꼭 승진을 해야 된다고 생각이 된다면 연봉 협상 기간에 DGL에게 이야기한다. DGL 역시 이에 동의하면 연봉 협상 시즌에 자신의 케이스를 관련 부서 임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Designation Committee'에 가져가서 자신의 DGL-ee가 승진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Committee에서 논의 후 승진을 결정한다.
자신의 DGL이 Committee에서 발표하는 내용은 승진하려는 본인이 가장 많이 준비해야 되는데, 이를 위해 맥킨지에서 각 연차별로 발휘해야 되는 역량 표에 따라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자세하게 기록해둬야 한다. 가령 주니어 UX 디자이너가 시니어 디자이너를 서포트하며 프로젝트에 필요한 에셋을 만드는 것이 역량이라 하면, 3년 차 UX 디자이너는 서포트 필요 없이 자신이 스스로 필요한 결과물이 무엇일지 스스로 평가하고 이를 디자인해야 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승진을 원하는 주니어 디자이너라면 자신이 여러 프로젝트에서 3년 차가 할 일을 이미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된다.
이를 위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일했던 팀원들의 평가가 제일 중요하다. 함께 일했던 팀원들이 익명으로 평가를 남길 수 있는 사내 시스템도 갖추어져 있고, 자신이 가장 가깝게 일한 팀원 10명을 제출하면 DGL이 이 10명과 미팅을 잡아 일했던 경험에 대해 직접 물어본다. 한 프로젝트에서 가장 가깝게 일했던 자신의 시니어(상사)에게는 리포트 형식으로 된 피드백을 요청하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해 과장 없는 솔직한 평가가 중요한 것이, 결국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로 DGL이 이를 다시 점검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예시를 가장 많이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끝난 후, 혹은 연봉 협상 시즌 직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피드백을 요청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 피드백 세션에는 서로 일하면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보완할 수 있는 점 등 자세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직급 상관없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주니어 디자이너가 시니어한테 피드백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시니어 디자이너 역시 같은 팀원 주니어에게 자신의 피드백을 듣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말하기 가장 불편할 수 있는 임원 피드백은 철저히 익명인 사내 시스템에서 이뤄지고, 프로젝트가 끝난 시기와 피드백 제출 시기를 생각해서 임원들이 누구인지 유추할 수 없도록 익명 피드백 5개가 완성되면 피드백을 열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이런 과정에서 솔직한 피드백은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공격이 아니라 이유 있는 비판이다. 물론 좋았던 점, 잘 맞았던 부분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는 무조건 쓴소리를 하면서 서로 얼굴 붉히자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진행 방식이나 업무 방식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입사 초기에 개선할 점에 대한 피드백을 망설이는 나에게 나의 상사는 자기도 팀장 자리가 처음이기에 주니어들과 함께 일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이 서툴고, 개선할 점이 충분히 많다는 점을 알려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었다. 상사에게 무조건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좋은 부분만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 역시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칭찬만 있는 피드백은 오히려 제대로 된 피드백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성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런 피드백 문화에 비롯한 연봉 협상 과정은 스스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게 되며, 나의 강점과 약점이 각각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스스로에 대해 평가를 한 후, 남들도 나와 생각이 같은지 확인하면서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있는지, 혹은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물론 이 시스템도 시스템인지라 100% 완벽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한 사람의 능력과 역량을 단지 한 회사의 인사팀이 정의한 표에 끼워 맞추기도 어렵고, 생각보다 자신이 한 일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 성과가 평가될 수도 있다. 조용히 일만 잘해서는 승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약 4만 5천 명이 근무하는 큰 조직에서 모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승진 시스템인 점에 의의를 둔다. 또한 승진이나 연봉 인상을 요구할 때 체계적으로 요구하는 방법을 배운다. 어린아이가 때를 쓰는 식의 요구가 아닌, 구체적인 이유와 논리적인 예시를 통해 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스톡홀름에서의 너무 아름다운 일상을 나만 보기 아까워서 유튜브 채널 (아이디: sohmnm)을 만들었다. 스톡홀름의 일상을 더 생생하게 보고 싶다면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