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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May 21. 2019

09. 마음이 하는 운동

플라잉요가 9주차, 운동의 심리적 효용에 관하여

살아있는 것은 언제나 불안의 일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안정이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다녀야만 얻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냥 살아가는 것만도 어지러운데, 일을 하면서는 늘 불안증에 시달렸다. 그냥 '아 불안하네..'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을 잠식하는 막막한 불안이었다. 돌아보면 그랬다. 나 혼자 불안할 땐 그럭저럭 견디어 냈지만, 좋지 않은 사수나 상사를 만나면 불안은 쉽게 증폭되어 자기 비하와 우울로 쉽게 번져갔다.


회사를 나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플라잉요가를 하러 가는 게 좋았다. 물론 센터에 가기까지의 발걸음은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지만. 일단 해먹 위에 올라가고 나면 안심이다. 안심, 이라고 느낄 새도 없이.


몸이 쓰이는 동안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쉬었다. 현실의 이런저런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며 운동을 가는 날엔 시작 전 명상을 하면서도 '오늘만큼은 정말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 것 같은데..' 하며 호흡에도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나면 어김없이 현실의 걱정을 거짓말처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어서 한쪽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면 다른 쪽도 어김없이 따라오곤 하기도 하지만, 작동하는 것은 반대되는 것인지, 마음이 번잡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몸이 바쁘게 치고 나가면 마음이 복작거릴 겨를이 없다.


저마다 운동을 하는 이유나 목적, 그리고 운동에서 얻는 효용은 다르겠지만, 내가 운동을 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역시 마음의 안정이다. 잡념이 많아 잠도 잘 못 드는 나는 운동을 하는 만큼은 아무 생각을 안 하거나, 적어도 내 몸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 최소한 하루 중 겨우 한 시간이더라도, 세상의 이런저런 고민거리를 죄다 끌어오지는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플라잉 요가를 할 땐 정말로 다른 생각이 스밀 새가 없다. 깜빡 다른 생각을 하면 시퀀스를 따라갈 수 없기도 하고, 일단 공중에 매달려 있으면 지금 당장 손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기도 하다. 힘든 동작을 할 땐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세고, 다음 동작으로 - 부디 쉬운 동작이길, 혹은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 넘어가기만을 기다린다. 가지 않을 것 같던 한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 있다.


운동을 하면 반드시 에너지가 넘치고 기분이 나아져요!라고 하면 솔직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해도 마음이 영 좋아지지 않는 날도 있고, 정말로 운동하는 잠깐만 망각의 덕을 봤다가 번잡함이 다시 몰아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운동이 주는 잠깐의 활력이 모여 일주일을 견디는 기운이 되어주기도 하고, 운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지는 몸을 바라보는 작은 작은 긍정의 마음들이 모여 매트리스 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땐 운동은 날씬한 혹은 건강한 몸을 위해서만 하는 것인 줄 알았던 내가 성인이 되어 운동이 마음에 주는 작은 효용을 소중히 하게 되었다. 불안을 이겨내는 한 시간들이 모여 마음도 조금씩 튼튼해질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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