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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Nov 12. 2019

마이 그린 멜로디 - 서른다섯의 시골생활기

0. 서른다섯, 귀촌의 시작

귀촌.

마음을 먹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원도가 고향은 아니었어도, 낯설지 않았기 때문일까. 몸이 좋지 않아 서른 살 한 해를 이곳에서 보낸 적이 있어서일까.


먼저 귀촌을 한 가족을 따라서 횡성으로 왔다. 갑작스럽게. 번갯불에 콩을 구웠다.


귀촌의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사람 냄새가 잿빛 콘크리트 벽에 막혀버린 도심 속에서 유리창 사이로 비추는 한낮의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흙이 밟고 싶어 졌다.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보이는 하늘을 향해 치닫는 아파트들은 미세먼지 자욱한 시야에 푹푹 박혀 방랑벽만 더 자극했다. 풋내 나는 풀과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을 허수아비 옷처럼 걸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웃고 싶었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은퇴 후 하고 싶었던 "일들"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왔다. 그리고 벌써 반년이 훌쩍 넘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 숨 쉬는 한 늘 그러하겠지만 - 진행형이다.


나의 귀촌 소식을 들은 친구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추천해줬다. 영화 초반. 주인공의 조금 삶에 지친 청춘의 모습은 내 모습을 닮아있었다. 얼굴은 전혀 다르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겪으면서 주인공, 혜원은 직접 재배한 계절 식재료를 가지고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요리를 해 먹는다.


영화 속 느리게 흐르는 소소한 일상이 공감됐다. 밭에서 딴 토마토로 허기를 채우고, 감을 말려서 곶감을 말리는 것과 같은 시골스러운 일상. 나름의 쿵쾅쿵쾅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일은 있었어도 꽤나 평화롭고 소담한 시간들의 합.


특별한 건 없었다. 그게 특별할지도 모르지만. 순리대로, '자연'스러운 삶의 상들.


친구는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려 했던 것일까. 아마도 시골에 적응하는 방법을 넌지시 일러주고팠던 듯하다. 그녀의 우려가 무색하게 나의 시골 에세이는 순항 중이다. 요즘의 나는 "마이 그린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 속에서.


때로 무료하지만, 일상에 쉼을 불어넣어주는 시간의 정적 속에서 시골 생활을 적어볼까 한다.


공기에 미동도 주지 않을 정도로 느린 걸음이 이끄는 산책길에 마주하는 풀냄새의 횡적 변화를 후각으로 탐할 때의 풍경이라든가, 눈이 채 떠지기도 전에 고추를 심을 밭이랑에 비닐을 씌우는 봄철 노동의 현장이라든가, 보건소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때 귀에 콕콕 박히는 할머니들의 도란도란 주름진 수다까지도 꼭꼭 눌러 담을 나의 이야기가 도시에서 시골생활이 궁금한 누군가에게 "시골 한 달 살기"의 지도쯤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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