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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Feb 04. 2020

시골 버스 타기 - 슬로 라이프

마이 그린 멜로디

이럴 수가, 배차간격이 더 늘었다니. 

원주에서 횡성 직행 시외버스가 하루 2개로 줄었다. 면 단위 작은 시골마을 곳곳을 누비는 시내버스의 수도 줄었다. 당황하지 말자. 그토록 꿈꾸던 슬로 라이프에 더 가까워졌으니. 사실 차가 없이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편하진 않다. 그러나 버스 타는 맛이 있다. 내가 운전하지 않아도 배테랑 운전수가 논밭 사잇길로, 때로 험한 낭떠러지 옆길을 지나 준다. 창 밖만 내다보고 있어도, 치유가 되는 듯하다. 


아픈지 몰랐더라도 누구나 조금씩은 아프다. 마음이 그렇다. 상처는 어디에서든 언제든지 입을 수 있다. 누구에게서나. 잔잔한 생채기들이라 크게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상처를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치유할 수 있다니. 거짓말 같을 수도. 스마트 폰 중독이라든지, SNS 중독이라든지 그런 몰입된 시간을 내버려 두고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다 보면 사색을 할 시간을 갖게 된다. 


어차피 길이 너무 꼬불꼬불하다든지, 때로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에 멀미가 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강제 사색이었지만 끝은 치유의 손을 잡는 자발적 사색이다. 뇌에게도 쉴 시간을 주어야 한다. 때로 뇌에 강제로라도 - 강제가 아니면 중독적이고 강박적으로 하는 행동을 의지를 가지고 벗어나기 어렵다는 가정하에 - 멍을 때릴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창 밖엔 온갖 멍 때리기 좋은 소재들 뿐이다. 요즘은 그렇게 가을 햇살 품은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단풍들이 멋지다. 이곳에 내려오기 전에는 눈에 띄는 커다란 변화가 아니면 눈치채기 힘들었다. 단풍은 빨간색, 노란색이 되어야 알아차렸고, 때로 가로수 한번 쳐다볼 시간이 없어서 걔네가 옷을 갈아입었는지 어쩐지도 몰랐다. 

이제는 가을 들녘 누렇게 익은 벼 위로 쏟아지는 석양이 지는 무렵, 오후 5시경 타는 버스를 타보면서 누런 색 옷인지 누리끼리한 옷인지도 다 안다. 쉼을 얻고 마음을 덜어낸다. 오늘 분은 치유가 되었다.


다만, 사색과 치유의 장인 시골 버스는 타는 법이 남다르다. 녹록지 않다.


버스 정류장이 없는 곳이 많다. 정류장 표시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이방인은 티가 난다. 딱히 표시는 없어도 어디에 버스가 서는지 그를 제외한 모두는 알고 있다. 눈치껏, 먼저 나온 동네 어르신 근처를 어색한 인사 후에 서성거린다. 그래, 그 이방인이 나다. 아니, 한 때 나였다.


버스 시간이 다 되면 이방인은 긴장한다. 버스가 시간을 칼같이 맞추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가서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다 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를 보며 벌떡 일어선다. 여유롭게 일어나시는 옆에 앉으셨던 할머니와 선명한 기다림의 차이이다. 시골버스 타기에 노련한 자와 초심자, 그 수준이 보인다.


그나마 자주 다니는 노선버스는 원주와 횡성을 잇는 파란 시내버스이다. 그 운행 횟수는 성에 차지 않는다. 지금은 수요 감소로 정지된 하얀색 시외버스를 타려면 현금을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교통카드 단말기는 먼 얘기처럼 들리는 버스 운전좌석 앞에 둔턱마다 덜커덕거리는 요금함이 있었다. 느리다 못해 이곳 시간은 멈춰버린 듯했다.


시골버스와 관련된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꺼내 본다. 


이래저래 마음이 무거운 일로 어깨는 축 쳐지고, 눈부신 파란 하늘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낯선 일요일 오후였다. 늘 일요일엔 제시간보다 빨리 가버리거나 때론 말없이 오지 않기도 하던 애태움 쟁이 버스에 발을 하나씩 올리던 순간.


"반가워요."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티는 안 냈지만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전 버스 기사 아저씨들은 인사가 없으셨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어."

그제야 둘러본 버스 안.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을 햇살만이 빈자리를 어련히 채우고 있었다. 난 마치 왕이라도 된 양, 아무 자리에나 앉아 아저씨의 인사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달랑 손님 하나 태우고도 신이 나서 달리는 차창 밖 파란 가을 하늘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자욱한 희뿌연 흙먼지에도 가려지지 않는 새파란 가을 하늘이 눈에 담겼다. 


그 후, 차를 운전해 다니는 지금도, 햇살을 먼지 뿌연 창에 날리며 다니는 버스를 마주하면 반갑다. 그래서 가끔씩, 느림의 미학을 벗 삼아 치유가 필요할 때면 버스에 오른다. 더 이상 이방인은 아니 것처럼 꽤나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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