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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Feb 05. 2020

성미 급한 강원도의 겨울

마이 그린 멜로디

나뭇결 따라 소복이 눈이 쌓이면

달력을 문득 쳐다본다. 11월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성미가 급하다.

11월 중순만 되어도 영하권으로 훅 몸을 움츠린다.


눈은 어떤가. 많이도 내려서 온 동네를 새하얗게 덮고도 펑펑 내려 우리 집 개들만 더 방방 뛰게 만든다.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눈판이다.


조금 일찍 일어난 날은 밤새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아 마당이고, 창으로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 위에고간에 지천에 널린 새하얀 얼룩에 막 비빈 눈을 뗄 수가 없다.


강원도의 겨울은 의외로 외롭지 않다. 친구가 많다. 허허벌판에 눈도 찾아오고, 먹을 것을 찾아 멧돼지도 찾아온다. 물론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대는 우리 집 개들 등살에 인기척만 날 뿐 금방 줄행랑을 친다.


추위는 또 어떤가. 이웃보다 가깝다. 옷보다도 먼저 내 살에 닿는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기 전에 이미 거실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래서 이불밖이 위험하단 것인지.


그래도 몇 년 전에 설치한 화목보일러를 덕분에 나무만 제때 잘 집어넣으면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아야 잘 수 있을 정도로 후끈하다. 찜질방이 필요 없다.

추위와 데면데면해지면 좀 살 것 같다. 몇 년 강원도에서 지내다 보니 피부가 두꺼워졌나. 처음보다는 확실히 덜 추운 느낌이다. 이래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처음에 이곳에서 나를 맞아준 계절은 봄이었는데, 창 밖엔 어느새 펑펑 눈이 허공을 때린다. 볼에 닿는 친구가, 새하얀 입김이, 성미 급한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다


강원도의 겨울은 참 의외이다. 깊은 산골에 왠지 할 일도 없고 심심할 것 같지만, 오리가 물속에서 쉴 새 없이 발을 젓듯, 사람들은 계속 꿈틀대며 그린 멜로디를 연주하고 산다.


이 와중에 화롯불에 구워 먹는 가을에 캔 고구마는 수분기가 쫙 빠져 다디달다. 조금 더 겨울이 익으면 말린 감이 쫀득쫀득 곶감이 될 거다.


이곳에서 나무와 풀과 가깝게 지내면서 겨우내 알게된 새로운 사실이 있다. 나무에 달린 솜털옷 입은 꽃봉오리가 한 겨울에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느려도 너무 느려서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지만.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자고 있는 척하며 자라고 있는 깜찍한 생명체이다. 어느 날 갑자기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게 아니었다.


겨울은 늑장을 부려도 되는, 게으름이 허용되는 숨 고르기 계절이다. 강원도의 성미 급한 겨울은 정작 역설적이게도 그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쉼을 베푼다.


겹겹이 따스운 옷 걸쳐야 하지만, 땅땅 언 흙 밟으며 좋아라 하는 개들 따라 뒤뚱뒤뚱 걷다 보면 겨울도 금새 지나간다. 굳이 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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