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나는 요기니 삶을 살게 되었나
요가는 늘 좋아했지만, 꾸준히 해본 적은 없었다. 관심사가 아주 많은 Infp로서 요가는 그 수많은 관심사 중 하나였다. 언젠가는 요가를 잘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에 집중할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요가에 빠지게 되었을까.
불과 3년 전 늦은 나이에 개발자로 커리어를 바꾸었다. 문과생으로서는 따라가기 어려웠고 야근은 물론 주말까지 회사에 가서 일해야만 했다. 일을 잘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겨우 일을 끝낼까 말까였다. 30대 중반에 여자가 신입마인드로 한참 어린 개발자에게 혼이 나고 계속 한숨 푹푹 쉬며 한심하다고 핀잔을 듣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래도 개발자가 꼭 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이렇게 실력이 부족한 나를 채용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버텼다. 아니 버티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머리와 체력은 따라주지 않았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돈을 번다는 긍정회로를 아무리 돌려도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지옥철에서 매일 눈물이 났고 자꾸 자궁 쪽이 무겁고 아파서 서있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퇴근하면 맥주 한 캔 들이키고 바로 좀비처럼 누워있다가 잠들었다. 하필 난 그때 한창 신혼이었다. 나 때문에 한국에 와서 지내는 미국인 남편에게 미안했다. 이렇게 얼굴 볼 시간도 없는 신혼생활이라니… 몸과 정신, 내 삶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까지 커리어를 바꾸어야 하나? 현타가 왔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두면 다시 예전에 생기 있는 나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계속 감정이 메마른 채로 그냥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다시 취업하려고 이력서 넣으려 해도 출퇴근해야 할 지하철, 마주해야 할 상사, 형광등 아래 사무실, 컴퓨터에 코드 화면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아찔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기력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계속 유튜브만 보고 누워있었다. 나 자신은 점점 싫어지고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내 상태가 번아웃이라는 것을 유튜브를 보고 알게 되었다. 아 그 말로만 듣던 번아웃에 걸렸구나!
그렇게 6개월간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득 ‘살아야겠다’는 본능적인 마음이 일어나 동네 요가원을 찾아서 등록했다. 마침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무제한권이 있었다.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수업을 연달아 들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거라도 하자라는 심정으로 정말 매일 2 타임씩 연달아 들었다. 매일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2시간 동안 계속 몸을 움직이니 힘들기는커녕 몸에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이게 나를 살려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아주 작게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서 좋았다. 내 인생 망했다구나 이런 기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는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면서 그냥 요가하는 시간만 기다리며 지냈다. 다시 개발일을 해보려고 이력서 준비도 하고 공부도 했지만 모든 것들은 머릿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튕겨나갔다. 모든 게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자꾸만 요가책을 찾아 읽고, 요가만 검색하는 나를 발견했다. 뭐야 이 정도면 요가해야 하는 거 아냐? 할 정도였다. 그렇게 요가에 미쳐있는 나를 보더니 요가원 선생님도 나중에 요가 강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웃으실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서 그냥 흘러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인스타에서 아는 지인들이 추천으로 떠서 우연히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뜬금없이 요가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뭐야 요새 요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가? 내 눈 앞에 자꾸 요가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알고리즘일 수 있겠지만 그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온 세상이 요가해! 요가해! 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사실 개발이 다시 하기 싫어서 도망 회로를 돌리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다니는 요가원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요가 지도자 TTC 과정을 적극 권유를 해주셨다. 하지만 협회에서 하는 곳은 그저 돈 받고 요가강사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곳이니 절대 가지 말라고 하셨다. 한참 생각해 보시더니 내가 그런 피해를 받지 않았으면 해서 본인이 직접 제대로 된 자격증 반을 만들어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스타일과 가치관이 일치했기 때문에 그분이 만드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올해 3월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뭔가 세상이 요가를 하라고 척척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모든 우연들이 모여 나는 요가를 더 깊이 공부하게 되며 요기니를 꿈꾸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다양한 관심사가 참 많았는데 그게 아로마, 싱잉볼, 명상, 차크라 등이었다. 보통 원데이 클래스 등으로 호기심을 해소했지, 깊이 공부할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요가를 시작함과 동시에 그것들은 필수적인 공부가 되었다. 요가를 하다보니 신기하게 계속 배우고 싶은 게 확장되고 넘쳐난다. 무언가 배우려면 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취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개발일은 아니고 원래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 일, 집이랑 15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서 1년 계약직. 요가마인드로 커리어 변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되니 가능한 일이었다. 요가를 배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을 생각이다. 앞으로는 인요가, 싱잉볼, 아로마를 배우고, 내년에는 발리에서 RYT200, 치앙마이에서 마사지를 배울 계획이다. 상상만 해도 설레인다.
요가를 수련하고 배우면서 앞으로 내가 요가 강사가 될지, 테라피스트가 될지 아니면 계속 회사원으로 살아갈지도 아직 모르겠다. 과연 요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차크라가 열리면서 해탈(모크샤)에 다다를 수 있을까? 궁금하다. 그렇지만 그저 깊은 호흡을 하고, 요가만 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미래가 두렵지 않다. 요가적인 삶이 내 삶을 어떻게 이끌지 너무 기대된다. 그 과정을 여기에 오롯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