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to be a mom
잊고 있었는데 수첩을 찾아보니 첫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한 날의 만감을 감성 돋게도 수첩에 적어놨더라.
2017.2.8(수)
아가야, 아직 변변한 태명 조차 정하지 못한 내 아가야.
오늘 병원에서 처음 아기집을 확인하고, 너의 존재를 물리적으로 확인했어.
네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 무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철없는 엄마는 이것저것 저울질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한단다. 네가 우리에게 온 줄도 모르고 이 엄마는 매일 같이 야근에, 스트레스에, 전자파를 온몸으로 쏘이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렸었다.
지난주 임신 테스트기로 테스트할 때에도,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를 들을 때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 너는 아직 1cm도 안 되는 콩알이고, 네가 내 생활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아.
오늘 초음파 검사를 하고 아기집을 보기 전까지는...
아가야, 철없는 엄마는 회사에 아직 말을 못 했어. 너를 생각한다면 당장 야근이고, 부서 이동이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새로 옮길 부서의 부서장은 뭐라고 생각할지 이런 걱정이나 하고...
내 아가야, 다음다음 주 병원 검진 때까지 자리 잘 잡고, 잘 지내줘, 엄마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이제 뛰지도 않을게.
병원에서 네가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걱정이야. 좀만 더 위로 올라와 아가. 2주 뒤에 또 만나자.
이렇게 마음을 털어놓고, 얼마 되지 않아 회사에 바로 말씀드렸던 거 같다.
이제 와 읽어보면 당시에는 엄청난 고민이고, 절절했던 느낌이 든다. 몇 달이나 지났다고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맞는 듯. 뭐가 정신이 없었는지 매주 일기를 써놓을 걸 후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