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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은 예외가 없었어

생기와 총기를 잃고, 음소거와 소머즈 기능을 얻었네

요즘 우리(남편과 나)는 둘이 합쳐 아이큐 100(50:50일 수도, 한 명이 99, 한 명이 1일 수도) 혹은 반푼이+반푼이=한 명 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렇게나 총기가 없었나 새삼 놀라기도 하고, 쑥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게 쑥떡 같이 말하면 개떡으로 알아듣기 일쑤다. 남편을 불러놓고 왜 불렀냐 물으면, 글쎄 말이야 내가 왜 그랬지 싶다.


예를 들면 공갈젖꼭지를 가상 젖꼭지로 부른다던지(홀로그램도 아니고 가상 젖꼭지라니). 쿠팡 로켓 배송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만 놓고서 왜 물건이 안 오냐며 화를 내 본들, 확인해보면 여지없이 결제를 안 했다. 그마저도 일주일 정도 후에 생각난다는 거. 그뿐인가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생겨 카카오로 선물을 보내려다가도 결제 단계에서 아기가 울어 도중에 몇 번을 멈추다 보면 그 일 자체를 잊어버리고 시일을 지나치게 된다던지. 심지어 결혼기념일도 잊고 하루를 보냈으며,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는 아주 간단한 일도 전혀 간단한 프로세스가 아닌 게 되어버린 요즘.


매일 정해진 시간에 라디오 오프닝을 알람 삼아 눈을 뜨던 매일 아침이 흔한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아득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커피로 흐리멍덩한 정신을 맑게 깨우고 싶지만 모유수유 중에 카페인은 섭취하면 안 되는 성분이라서 오늘도 디카페인 라테로 내 마음을 위로해본다. 사실 디카페인 커피 조차 조심스러워 이제껏 참다가 출산 후 처음으로 마시는 공식적인 첫 커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내가 몽롱한 이유는 새벽 쪽잠으로 인한 수면부족, 더 자세히는 몇 시간에 한 번씩 신생아가 먹어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도 잘 수 없는 생초보.


오늘은 출산 후 처음으로 아기랑 나랑 단둘이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빈자리가 이렇게도 클 줄이야.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자는 아기의 숨소리 변화만 있어도 힐끔힐끔 눈치를 보게 되는 쫄보인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직 아침 점심 설거지, 욕실 청소가 남아있다. 

아기 깨기 전에 어서 커피 마시고, 남은 미션을 수행해야지. 일단 소머즈 모드로 커피 타임 중에 몇 자 끄적여보자. 잊기 전에.


#육아일기 #엄마일기 #초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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