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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Feb 06. 2022

힘들 땐 교과서 같은 착한 말도 불편해진다

09.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힘들 땐 교과서 같은 착한 말도 가끔 불편해질 수 있어요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9화. 난임부부 주변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난자 채취술을 하고 나서 혈복강을 겪고 아직도 피가 고인 채 천천히 흡수되는 것을 기다리는 중이다. 내 생에 가장 잦은 피검사와 초음파로 인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염증까지 발견되어, 언제 이식 수술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 답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답답해도 여전히 맥주 한 모금 할 수 없고 말이다)

 간단할 줄 알았던 시험관 아기 수술이 정말 내 몸을 힘들게 할 수 있구나를 깨달은 뒤로, 난자 채취를 인위적으로 해야 하는 순간이 다시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조급해졌다 담대해졌다 우울해졌다 초탈했다를 반복하는 게 난임의 국룰인 걸까? 마치 조울증을 겪는 사람처럼 정말로 괜찮았다가 때론 억울했다가 다시 무던해졌다가 또 답답해지고는 한다.


 난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인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난임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것만 같아 그런 위로들이 딱히 달갑지 않았다. 그중에는 ‘포기하면 생긴데’라는 말도 꼭 있다. 그런데 난 그 포기라는 게 진짜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너무 어렵다. 정 안되면 둘이 알콩달콩 살지 뭐 했다가도 시도를 하려고 하면 '이번엔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시작된다.

 게다가 그놈의 포기도 부부가 타이밍이 맞아야 가능하다. 나는 슬쩍 포기할까 했는데 무심코 남편이 ‘나중에 우리 아기 생기면 여기도 같이 가자’라고 하는 말에 아 아직 포기하기 이른 가보다 생각하게 되고, 난 열심히 병원을 다니는 와중에 남편이 ‘그냥 애 없이 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하면 은근 섭섭한 마음이 일고는 한다.

하긴 당사자들도 이리 마음 타이밍이 안 맞을 때가 많은데 '남'이면 오죽하랴. 그저 날 위한 말이었겠거니 하고 넘길 수밖에...


 정말 난임부부의 수가 많아진 건지, 혹은 매체가 다양해져서 일반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퍼져나갈 경로가 많아진 건지, 유튜브에도 난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알고리즘에 의해 어느 난임부부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비슷한 처지로서 공감이 되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냥 그 주제를 얘기하지 않으면 돼요.


 노처녀 노총각에게 '결혼'이, 고3에게 '성적'이, 무주택자에게 '아파트 가격'이, 10만전자를 굳게 믿고 97층에서 삼성전자를 만져버린 개미에게는 '주식 얘기'가 스트레스의 버튼이지 않은가?

 혹 주변인이 난임부부라는 걸 알게 된다면 '임신'얘기를 하지 않으면 된다. 똑같은 울음을 울어보지 않은 사람의 위로는 때로 달지 않을 수도 있고 선의 또한 버거울지도 모른다.

 십인십색이듯 세상엔 참 다양한 주제가 있다. 좋아진 노래나 재밌었던 영화, 자신이 겪은 일, 하고 싶은 고민 상담 등 할 이야기는 굳이 그 이야기가 아니라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면서 '포기해야 생긴다'는 어려운 말일랑 우리 하지 말자.

비록 마음을 비우고 편히 가지란 말이겠지만, 혹 그런 사례가 넘쳐난다해도, 어쩌면 포기가 답일 수도 있지만 진짜 포기하기 전까지 난임부부에게 포기라는 말은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포기하라거나, 아파도 참고 계속 시도하라거나 붕어를 먹으라, 흑염소를 먹으라, 스트레스를 비워라,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등 하고싶은 말이 많겠지만, 안타까워서 그런 거겠지만 도움을 청하기 전엔 그냥 그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도움을 청한다면 그때 들어주고 위로해줘도 늦지 않다. 그때는 당신의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제할 정도로 감사할 것이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선 난임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포기의 타이밍이 어긋날 지라도, 서로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 다를지라도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한 생명을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의 동의와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임이라면 더더욱 서로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의 모습을 함께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번 난자채취술을 하기 전에는 시험관아기를 몇 번이고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몸이, 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부부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남편도 "난 네가 더 소중해."라고 말한다. 각자의 가치관과 몸의 상태에 따라 안전하고 다양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만들 때 주변들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훈수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의 난임부부들과 나누고 싶은 말]


※난임 부부를 위한 주변인의 자세 TIP

혹 이 글을 읽은 누군가의 주변에 난임 부부가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들을 위로하고 싶거나 혹은 그들이 애를 낳건 말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면 그냥 임신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말이 굉장히 이기적이고 옹졸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슬픔은 어차피 당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보단 훨씬 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아마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슬픔의 버튼 하나쯤은 있거나 생길 테니 건전한 성인이라면 이 하찮은 조언을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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