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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얗고 까만 토끼 Apr 28. 2024

사랑_2024version

타인의 기쁨을 온전히 축하 해 줄 수 있는 마음

“내 연봉, 또 인상됐어! 우리 맛있는 고기 먹으러 가자!”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얼마 전, 계약 기간이 6개월이나 남은 직장에서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전에도 종종 계약 기간이 많이 남은 상황에서 연봉 인상은 있었기에 특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입사 5년 차가 된 나의 연봉은 초봉의 2배를 훌쩍 넘겼고, 최근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가며 준 보너스 역시 넉넉했던 탓에 추가적인 연봉 인상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연봉 인상 소식에 혹시 내 퇴사 결심을 눈치챘나? 싶으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나에겐 이 소식을 전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직장에서 연봉이 가장 높은 내가 다른 직장 동료와 연봉 관련 이야기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 얼마 전 나보다 연봉이 적다는 걸 알고 연봉에 불만을 가지게 된 선배에게도, 곧 육아 휴직에 들어가는 지인에게도, 나의 퇴사 계획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친구들에게도 딱히 내 연봉 인상 소식은 전할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사람들은 제각기 살아가는 데 바쁘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생각보다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상관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 대부분의 일에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때문에 기쁨을 함께 증폭시킬 사람이 없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소한 소식을 맘 편히 전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괜히 더 이 소식을 말하고 싶고, 한껏 축하받고 싶어졌다.


문득 몇 년 전에 받았던 축하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진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회장에서 만난 교수님으로부터 좋은 입학 조건을 제안받았다.  갑자기 나타난 램프 요정 지니가 몇 년간 단단히 꼬여 있던 실타래를 한 번에 풀어준 것 마냥 너무 기뻤다. 학회장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당시 남자친구는 이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기뻐했다. 곧바로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축하 파티를 하고, 몰래 꽃을 사 와 내게 건넸다. 잠들기 전 공유해 준 그의 일기에는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너무 기뻤고, 그 기쁜 날을 온전히 함께 기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적혀 있었다. 진짜 축하는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된 날이었다.


그럼 지금 내게 기쁨을 함께할 사람이 없었던 이유는 과거 남자친구나 나를 사랑하는 지인들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 어떤 외부적 이유가 아닌 나의 문제였다. 내 기쁨을 함께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누구도 나의 기쁨을 온전히 함께 해주지는 못할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짐작을 하게 만든 건 '나'라는 레퍼런스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축하할 때 남몰래 마음 한편에서 느꼈던 질투와 부러움. 괜히 나랑 큰 상관도 없는 사람이지만, 멋져 보이면 그에 못지않게 잘나고 싶은 경쟁의식. 너무 완벽해 보이는 타인의 삶을 보면, 뭔가 안 보이는 문제가 있을 거라고 치부해 버리는 못난 마음. 이런 못생긴 마음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순전한 축하와 기쁨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타인들에게도 그 어려운 마음을 기대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진짜 사랑은 힘든 것을 같이 이겨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좋을 때 같이 행복한 건 누구랑도 할 수 있지. 좋을 땐 다 좋으니까. 그런데 힘들 때 진짜가 구별되지. 힘들 때 그 곁을 지켜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게 진짜 사랑이야.’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온전히 같이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 역시 아주 큰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큰 사랑이고 싶다. 그들의 기쁨을 그 누구보다 먼저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 누군가에게 괜한 시기, 질투, 부러움 같은 못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 하는 마음 걱정 없이 온전한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과 돌아가면서 생기는 기쁨을 함께 증폭시키며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이야 말로 ‘사랑이 가득한 삶’이 아닐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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