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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Feb 07. 2019

응, 참지 않고 솔직했던 거야

표정이 솔직해서 불편했나요

결혼하자마자 파리에 와서 유학생의 신분으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내게 늘 당연했던 것들과 단절하고, 프랑스에서 모든 것들을 새로이 맞아야 했다. 집, 휴대폰, 은행계좌... 거의 모든 것들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내게 '안정'으로 존재했던 것은 당신이었다. 9년간 서로를 믿고 의지해온 사람.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했다.


그러나 신혼 생활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지 못했던 거 같기도 하다. 내가 알기도 했고 모르기도 했었던 당신의 사소한 생활 습관들이 나의 일상이 되었을 때 조금 갈등을 느꼈다. 그것을 내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나의 행동들 또한 당신에게 의문을 자아냈을 것이었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때때로 참 하찮은 행동들과 생활양식 같은 것들 앞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야 했다.


포르투에 여행을 다녀왔다. 4박5일 일정 가운데 3일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동안, 내가 좀 툴툴댔던 거, 인정.


우리는 줄곧 서로에게 솔직한 사람이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다 얘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서로 생각했었고 그렇게 만나왔다. 그렇지만 맨날 찰떡처럼 달라붙어 있는 유학생 신혼 생활 가운데 몇 차례 긴 대화(결코 싸움이라고 하지 않는다)를 거듭한 뒤 다다랐던 결론은, 더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 말 다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끝내 삼키는 말과 행동들이 있다. 입밖으로 꺼내기에 너무 짜친 것, 그 말을 하면 내가 너무 속좁은 사람 같은 것, '그런 부류의 사람 별로야'라고 할 범주의 행동을 하고 내가 하고 있는 것. 



왜 참는가.
당신이 좋아하니까. 당신 속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것도 맞지만, 실은 그걸 못 받아주는 내가 못나서,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 싫어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보는 거다.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실천한다. 때때로 성공하고 때때로 실패한다. 그 실패는 말과는 어긋나는 표정,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언어로는 참았지만 비언어적 표현으로 너무나 솔직해져버리고 만다.


이렇듯 모순적인 상대방에게 대응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당신이 참아내고 있으니,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겠다. 혹은, 당신이 참고 있으니 그쯤에서 멈추고 다른 길을 택하겠다. 내가 '참는 중'이라면, (나 지금 솔직하게 말하는 건데) 당신이 이제 내 의중을 알았으니 내 맘을 도닥여주고 다른 방법을 찾아봤음 좋겠다. 하지만 당신이 '참는 중'이라면, (또 솔직하게 말하는 건데) 마저 잘 참아줬음 좋겠다. 당신한테도 나한테도 그게 더 좋은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더 참느냐 마느냐 속으로 고민을 하며 표정과 몸짓으로는 거부의 의사를 마구 내뿜는 과정의 끝은 결국 스스로의 쪼잔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타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걸 정작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공동체인 내 가정에서 이상하게 실천하려고 애를 쓴 것 같다. 저 말이, '그러니까 각자 자기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하세요'라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닐 테니까. 물론 본인의 의지, 신념, 가치관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은 아니다. 마음껏 펼치고 지켜야 한다. 다만 사회에서도 다름을 인정한 것을 바탕으로 거기에서 발생하는 불균등을 해소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조율해나가듯, 당신과 나도 같이 만족하고 같이 행복하기 위해 맞출 부분은 맞추고 바꿀 부분은 바꾸어야 한다. 그러려면 긴 대화(싸움이 아니다)가 필요한 게 당연하고. 나도, 당신도, 바뀌지 않으려고, 바꾸지 않으려고 속으로 삼키면 함께 행복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제 진짜로 더 솔직해지자고 또 다짐한다. 당신을 배려함으로써 내가 못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억지 욕심을 버리고, 일단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보자. 


그러니까 음식 좀 더 건강하게 먹고 내일 운동나가면 같이 쭉 달리면 좋겠고 공부 열심히 하면 좋겠고 거북목 안 되게 목 수시로 똑바로 펴주고 허리도 세우고, 그러니까 평소에 등이 아프잖아, 엇 지금도 거북목 하고 있어 ......


와인 사랑하는 부부.


* 이 글은 남편이 쓴 이전 글 <우리 더 솔직해지자>에 대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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