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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Jul 05. 2022

할머니와 점심

단편선#03

할머니와 점심  



     

할머니는 허리가 많이 굽으셨다. 눈에 띄게 휘어버린 다리는 휘청휘청 그녀를 오리처럼 걷게 만들었다. 그런 불안한 걸음이지만 짧은 보폭으로 앞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할머니의 눈만은 불안한 걸음과 반대로 똑바로 앞을 바라본다.     

“밥은 먹어야제. 나랏님이 주시는 밥인디 감사함서 먹어야제.”     

할머니는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다니셨다. 어린 나이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손에서 느껴지는 싫지 않은 압박과 거친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온기에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이다.     

“할매. 나 치킨 먹고싶은디.”     

“떽. 으디 나랏님이 주시는 밥 안묵고 엄한걸 묵을라노. 싸게 따라온나.”     

투정을 부렸지만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여름날의 반지하 방은 태양의 뜨거움을 막아 주었지만 무겁게 습해진 공기는 방 안 어린 몸뚱아리를 하루종일 축축하게 짖눌렀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숨이 조여오다 밥때가 되어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급식소 식당으로 갈 수 있게 된다. 급식소 식당에는 에어컨이 있다.     

“감사해야 한데이. 이래 밥 물수 있게 해준 나랏님한테 감사해야 한데이.”          

나 역시 감사하기 그지없다. 작년까지 하루 한 끼를 겨우 먹고 살았었다. 그나마도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이나 방학에는 그 한 끼도 거르는 날이 많았다. 가끔 바퀴나 곱등이를 잡아 구워먹었다. 나방은 먹으면 배탈이 나서 먹지 않았다.     

내가 여섯 살 때부터 배가 고팠으니 3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세상에 먹을 것들이 없어진지.

날씨가 너무 더워지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해서 먹을 걸 만들지 않고 싸우느라 먹을 게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먹을게 너무 비싸져서 사람들이 밥을 먹기 힘들어졌다. 먹을 게 없어져서 사람들은 더 많이 싸웠다. 싸우느라 먹을 게 더 없어졌다. 너무 많이 다치고 죽었다.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돈이 아주아주 많이 필요했다. 부자들만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먹을 걸 사고 나면 돈이 없었다. 자꾸만 돈이 없어져서 배고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들 배가 고파서 슬퍼했다. 슬퍼할수록 먹을 것들은 더 비싸졌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싸우지 않도록 먹을 것들을 통제했다. 그렇게 나라에서 밥을 주는 식당이 생겼다.      

‘삐. 2025년 9월 30일. 식사 승인되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쌀이 나왔다. 쌀은 맛있다. 감자랑 고구마 옥수수도 맛있는데 쌀이 더 맛있다. 밥을 담는 은색 그릇에는 동그라미가 다섯 개 있는데 큰 동그라미가 두 개, 작은 동그라미가 세 개 있다. 하지만 큰 동그라미 하나와 작은 동그라미 하나는 항상 비어있다. 계란이랑 하얀 김치도 맛있었다.     

“밥 다 묵었니야.”     

“네. 할무니.”     

“그럼 인자 가자. 비올라 칸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옛날에는 버스가 많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별로 없다. 그래서 걸어다녀야 했다. 길에는 사람들이 잘 없다. 건물들도 불이 많이 꺼져있다. 돈을 벌어도 먹을 걸 살 수가 없으니 일을 하지 않았다. 일을 하는데 전기도 쓸 수 없고 물도 쓸 수 없고 가스도 못 써서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 다들 비어있는 땅을 찾아갔다. 시골에 사람들이 더 많다고 그랬다.     

집에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아주 넓은 한강을 건너야한다. 강 위로는 커다란 배가 둥둥 떠 있었다.     

“할머니. 저기 고기 먹어.”     

한강의 물줄기를 역으로 헤치고 나아가는 유람선 한 척 위로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인다. 더운 날씨에 불을 피워두고도 다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건 그들의 앞에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고기들 때문일 것이다.     

“맛있겠다.”     

“쳐다보지 말라. 배고파진께.”     

할머니는 작게 호통치며 나를 품에 안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품 사이로 나의 시선은 여전히 배 위의 고기를 응시했다.     

“쳐다보지 마라. 쳐다보지 마라.”     

할머니가 나를 안고 있는 동안에는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었다. 할머니의 품은 왠지 태양보다 불쾌하게 더웠다.     

“할머니. 저기 아저씨가 손 흔들어.”     

배 위의 사람들 중 유난히 밝은 옷을 입은 사내. 하얀 반바지와 형형색색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는 짧은 셔츠의 단추들은 자리를 잃고 풀어헤쳐져 있다. 저렇게 태양을 한 몸에 받을 거면서 썬글라스는 왜 끼고 있을까. 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나. 나에게 흔드는 게 맞나?     

“눈 마주치지 말그라. 간 빼가는 도깨비인기라. 언능 가자.”     

할머니는 나를 품에서 풀고 손을 잡아 이끌었다. 할머니의 눈은 왠지 모르게 심하게 떨리고 있다. 휜 다리로 보채는 종종걸음이 불안하다. 불안으로 일렁이는 걸음으로 드디어 다리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한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였다.      

“꼬마야.”     

아직 불안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안도의 숨을 뱉는 그 자리는 아직 불안의 경계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던 것일까. 아마도 할머니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불안의 정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까 나에게 손을 흔들던 사내는 어떻게 된 일인지 나의 앞에 나타나 말을 걸었다. 그는 크기 몹시 컸고 단단해 보이는 몸을 가졌다.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을 가려두었지만 위로 세운 짧은 머리, 어린 나에게도 그는 상당히 잘생긴 사람이란 걸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누구신교.”

“아.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배에서 보고 있는데 너무 귀여운 꼬마아이가 지나가서 보고 있었거든요. 마침 눈이 마주치길래 손을 흔들었는데 그냥 가버려서 아쉬워서 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아이에게 음식을 나눠주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아..아입니다. 괜찮십니다. 우...우리는 집에 그냥 가겠십니다.”     

할머니는 왜 이 멋진 남자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연신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음식을 준다는데 도대체 왜 거절하는 걸까.     

“할머니. 나 고기 먹고 싶어요.”

“조용히 안하나! 이기 뭣도 모르고!”     

저 남자를 따라가면 고기를 먹을 수 있을텐데. 바람결에 실려왔던 그 냄새를 눈 앞에 두고 손에 들고 입에 넣을 수 있을텐데. 지금 당장 저 남자의 얄팍한 옷에서도 고기냄새가 솟아나고 있는데 할머니는 내 맘도 모르고 버럭 역정을 낸다. 속에서 억울함이 밀려 올라와 토가 나올것만 같다.     

“아이가 이렇게 먹고 싶어하는데 그냥 가시죠. 어르신도 같이 드시구요.”

“아이...아이 되는데. 가믄 안대는디...”     

할머니는 안 된다고 하면서 어느새 내 손을 놓고 남자의 앞에서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런 기회가 흔치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남자는 할머니와 나를 인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남자가 유람선에서 타고 왔을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경사를 내려가야 했고 정리되지 않은 무성한 수풀을 헤쳐가야만 했다.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착장에 가까워질수록 늙은 걸음은 빨라졌다.     

작은배를 타고 올라온 커다란 배 위로 펼쳐진 풍경은 멀찍이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밖에서 물속을 보는 풍경과 물속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의 차이처럼. 지난달 물이 없어 씻으러 갔던 산속 계곡에서 보았던 기억과 느낌과 같다. 이대로 가라앉아도 괜찮겠다 싶었던 그 날의 물속으로 내리쬐던 햇볕줄기들이 나를 찔러대던 느낌과 같다.     

“자 꼬마야. 가장 먼저 먹고 싶은게 뭐니?”

“고...고기요.”     

음식이 한가득 쌓인 길고 길다란 테이블이 유람선의 한쪽에서 뱃머리 끝까지 뻗어있다. 초록초록한 야채들이 빨강빨강한 노랑노랑한 야채들과 뒤섞여 눈부시게 빛난다. 색색의 과일들이 갓 짜낸 물감들이 올려진 팔레트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새하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구워내고 있는 저 고기들. 고기다. 고기들이다. 지글지글 천국의 냄새를 만드는 고기.     

“기다리렴. 가져다 줄테니.”     

저 사내는 왜 할머니와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아니 그런 의문 따위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 저 남자가 몸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게 되면 그 손에는 고기가 담긴 접시가 들려있을거다. 고기가 내 입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급식소에서 먹는 갈아서 으깨서 물과 양념에 푹 절여진 고기와는 분명 다른 맛이겠지. 언젠가 한번쯤 나왔던 손가락만한 고기의 맛이 기억난다. 돼지고기였던가. 기름의 맛. 살아있는 생명체가 품고 있던 기름이 끓고 태워져 풍기는 냄새가 코로 들이마셔지며 한 것 돋구워진 그 맛. 아아.     

할머니는 애가 타고 있다. 오로지 고기가 손에 들리길 바라며 오매불망 사내의 뒷모습을 간절하게 바라본다. 할머니의 관심에는 내가 없다. 다리 위에서 내려오고 있던 그때부터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바라본 적이 없다. 아. 남자가 돌아섰다.      

할머니는 남자가 그릇을 가져다 주기도 전에 그에게로 다가가 빼앗듯 그릇을 낚아챘다. 그리고 고기를 먹었다.     

“어이구. 천천히 드세요 어르신.”     

나는 얌전히 남자가 나에게 고기를 건네주길 기다렸다. 혹시나 가만히 있지 않는 버릇없는 아이라고 고기를 주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아주 몇 걸음. 여섯 걸음 정도일까. 여덟걸음 정도일까. 저 남자는 키가 크니까 더 빨리 올지도 몰라.     

“자. 꼬마야. 여기 고기다.”     

드디어 남자는 나에게로 다가와 고기를 주었다. 고기. 고기가 내 눈앞에 있다. 태어나서 이렇게 커다란 고기를 본 적은 없다. 고기의 모양도 모두모두 다르다. 어떤 동물의 고기일까. 어떤 맛이 날까. 생각하지 말자. 먹자.     

“아...”     

고기란 이런 맛이구나. 그때 먹었던 그 손가락만한 고기는 고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고기가 입안 가득 들어갈 수 있는 음식이라니. 기름. 그래 기름이다. 씹으면 뿜어나오는 기름. 마른 나뭇가지를 잘근잘근 씹어 나오는 한 방울도 되지 않는 마른 즙같은 기름이 아니라 계곡에 빠져 코와 입을 통해 목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계곡물과 같은 기름. 씹으면 올라오는 짜고 시고 쓰던 야채의 맛은 아마도 혀를 죽이려고 만든 독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고기만 입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고기 위로 뿌려진 이 짙은 갈색의 액체는 또 무어란 말인가. 단맛인가 짠맛인가. 둘 다인가. 그것만이 아니다. 엄마의 양수 속에서 맛보았던 맛이던가. 입안에 고기가 있는데도 나는 고기를 입으로 더 넣으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남는 손은 고기가 바로 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고기를 움켜쥐고 대기 중이다.     

“하하하. 먹었구나 이제. 이젠 너도 돌이킬 수 없지. 어린 아이야. 키키키. 넌 이제 평생 구경도 하지 못할 고기를 갈망하며 살게 될거란다. 키키키”     

“네.”     

나는 남자의 비릿한 웃음에 난 아주 행복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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