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식물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IMZI Nov 20. 2018

물조리개의 재발견


식물을 키워보기 전,

물조리개란 무릇 옛 물건이라 생각했다.

이케아에 진열된 물조리개들을 보며

아날로그 감성으로 꾸며줄 상품이라 생각했고

그중 하나를 인테리어용으로 구매했다.

우리 집 물조리개의 자리는 나무 스툴 위였고

그곳을 벗어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식물을 들여놓고,

이 녀석의 진가는 곧 드러났다.


첫째, 많은 양의 물이 담긴다.

수돗물의 염소 기를 사라지게 하려면 하루 동안 물을 받아 놓아야 한다. 물받이가 필요했다. 바가지에 담아도 보고 생수병에 담아도 보았다. 그들은 용량이 충분치 못했고 번거로웠다. 며칠 지나서야 '아 물조리개가 있었지' 깨달았다. 생각보단 많은 양의 물이 담겼고 한 화분의 물을 듬뿍 주기에 충분했다. 이 녀석, 인테리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둘째, 물 주는 양을 가늠할 수 있다.

그저 흐르는 물, 샤워호스로 물을 줄 때 물 양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계량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흘리는 물도 많았기에 양을 측정할 수 없었다. 물조리개에 물을 담으니 당연 물의 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화분마다 얼마나 물을 주고 있는지 체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초보 식물러인 나에겐 의미 있는 데이터가 되었다. "물을 충분히 듬뿍 주세요!"보다 더.


셋째, 물주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샤워 호스기의 수압은 강해 속도도 빠르다. 화분의 흙이 파이고 흘러넘쳤고 흙이 물을 흡수하는 느낌보단 물이 흙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덜 틀면 힘이 없어 쪼르르 물의 길을 잃어버렸다. 방향을 조준하기 어려워 물을 흘렸고 물주는 내 손도 이리저리 갈 곳을 잃었다. 샤워기는 식물에게 물주는 친구가 아니었다. 반면 물조리개로 물을 주니 훨씬 속도를 제어하기 쉬웠다. 기울기를 조절하면서 흙이 넘치지 않도록, 파이지 않도록, 골고루 잘 흡수하도록 물을 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물을 흘릴 일도 없었다. 자동식 기계보단 사람의 손길이 더 유용할때가 있음을 알았다.


쓰다보니 물조리개 예찬론 같지만 이건,

물조리개의 용도를 이제야 발견하고는

신기해서 방방 뛰는 초보 식물러의 고백이다.


'물조리개는 한물간 아날로그 물건이 아니었다.

또한 인테리어용도 아니었다.

물조리개는 분명 식물에게 물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

식물일기

물조리개의 재발견







염소 승천 기원중


매거진의 이전글 식물은 처음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