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병원 문에 걸린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늘씬한 키에 길고 탐스러운 웨이브 털을 뽐내며 유유히 들어온 반려견과 보호자.
대기실에 있던 보호자와 아이들 모두 일제히 그 둘에게로 시선을 빼앗긴다.
아이 이름을 묻는 김샘에게
"스테파니요"
라고 말하며 주변의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대기실을 살피는 보호자. 접수를 마친 후 대기실 창가 쪽에 앉자 보호자 옆에 앉아 차분히 기다리는 스테파니.
대기실의 크고 작은 강아지들이 스테파니 옆으로 가고 싶어서 앞으로 고개를 내밀어보지만 주인들은 목줄을 당기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 애는 짧은 털인데도 엉키고 난리인데, 어쩜 저렇게 긴 털을 잘 관리했을까?"
"보호자가 엄청 부지런하고 깔끔한 사람인가 봐"
함께 온 보호자들끼리 들릴 듯 말듯한 말을 주고받는다.
꽤 오랜 대기 시간이 지난 후 스테파니 이름이 불리고 보호자와 귀족견은 대기실의 부러움과 감탄을 가로지르며 진찰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보호자만 나와 대기실에 있다가 진료실에서 부르는 소리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온 보호자는 좀 전과 같이 다시 창가 자리에 차분히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강아지와 고양이, 도마뱀까지 줄줄이 대기실에 더 들어오고 나서야 김샘이 진찰이 끝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스테파니요"
보호자가 나오지 않자 김샘이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부른다.
"스테파니 보호자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데스크 쪽으로 간 보호자.
처음 보는 강아지를 자신에게 넘기려고 하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하는 보호자에게
털이 한 올도 남아있지 않은 강아지를 넘겨주는 김샘.
그제야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낯선 아이를 찬찬히 훑어본다.
윤기 흐르던 털은 온데간데 없고 빡빡 밀어 속살이 드러난 피부는 어느 곳하나 성한 곳 없이 각질과 울긋불긋하게 돋아난 무언가로 가득한 이 애가 우리 애라니...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스테파니는 털을 밀려서인지 오들오들 떨면서 아무리 털을 잘랐어도 그렇지 자신을 몰라본 주인을 시무룩히 올려다본다.
대기실에 있던 보호자들도 그 광경을 지켜보고 너무 놀라 일시정지를 누른 듯 갑자기 움직임이 멈춰 선다.
샴푸 광고에 나올법한 윤기 흐르던 털은 꿈이었던가? 핑크색 속살에 얼룩덜룩한 피부가 아까 그 귀족견이라니...
처방 약을 기다리는 스테파니 보호자 옆으로 다른 보호자들이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 예쁜 털을 왜 밀었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스테파니가 귀가 불편한 것 같아 병원에 왔는데 진찰 중에 다시 불러서 들어가 보니 귀보다는 피부병이 심해서 털을 밀고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털 밀린 모습을 보니 낯설기도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피부병이 심해서 놀랐다고 한다.
"털이 길어서 피부병은 생각도 못했어요. 귀 치료만 생각하고 왔는데 이렇게 치료받으니 너무 다행이에요."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대기시간이 이렇게 길어도 다른 델 못 가요"
듣고 있던 보호자들이 한 마디씩 건넨다.
스테파니 보호자는 데스크에서 약을 받고는 좀 전에 대화를 나누던 보호자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스테파니를 데리고 병원을 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모두들 무얼 먹을까 메뉴를 고민하고 있을 때 김샘이
"우리, 그거 먹을까?"
"그거?... 아... 좋죠"
모두들 점심 메뉴로 '그거'를 선택했고,
잠시 후 널따란 박스에 피자가 배달되었다.
따듯한 피자를 한 조각씩 먹으며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늘이는 홍샘의 발치에 앉아 홍샘이 피자조각을 들고 늘어나는 치즈를 빨아들이듯 먹는 것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홍샘과 눈이 마주쳤다. 빨리 먹고 산책 가자는 오늘이의 텔레파시가 통했던 걸까?
홍샘이 손을 닦고 오늘이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