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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 Feb 21. 2024

고양이 마요

북새통 같았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오늘 일찍 마감하죠?"


원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힘조차 없던 샘들이 힘을 내어 빠르게 퇴근준비가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병원 문이 열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보호자의 배낭에 태워진 채 들어왔다. 접수 시에 정기 접종이라고 하자 김샘과 홍샘이  서로 눈을 찡긋했다. 정기접종은 조기퇴근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접수를 마치고 원장님께 접종 전 진찰을 받는 시간


"그동안 마요,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특별한 일은 없이 잘 지냈어요"


"마요, 체중이 좀 늘었네요~"


 "워낙 먹성이 좋아요 마요가"


 "지금은 괜찮은데 체중이 더 늘지는 않도록 보호자님이 신경 좀 써주세요"


진찰이 끝나자 김샘이  마요를 안고 처치실로 가려는 찰나, 원장님의 시선이 마요의 입 주변에서 멈추더니 안경 사이의 미간에 진한 주름이 잡혔다.


"마요 입에 이건 뭐죠?"


 "네? 어떤 거요?"


원장님은 조심조심 마요의 입 근처에 삐져나와 있는 무언가를 손으로 잡아본다. 떨어지지 않는다.


"마요, 털실 갖고 노는 거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집착에 가까울 정도예요"


 원장님과 김샘이 눈빛을 주고받더니 순간적으로 김샘은 마요의 보드라운 몸을 잡고 원장님의 한 손은 마요 턱을 잡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입꼬리의 양쪽 끝을 잡아 눌렀다. 그러자 위아래로 마요의 작은 입이 쩌억하고 열렸다. 마요의 입속을 빠르게 스캔한 원장님은 마치.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줄줄이 이어진 손수건을 꺼내듯 털실을 꺼냈고 이 마술이 마요의 입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인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털실을 통째로 삼켰을 수도 있어요. 엑스레이 찍어보고 바로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원장님과 김샘은 마요를 데리고 황급히 엑스레이 촬영실로 향했고 보호자는 "야옹" 한 마디도 못하고 그대로 촬영실로 가는 둥그런 털뭉치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촬영 결과는 더 위급했다. 삼킨 털실 뭉치가 장까지 내려간 상태였던 것이다.


수술준비가 완료되고 수술방에 불이 켜졌다. 원장님, 김샘, 홍샘 모두가 수술방으로 들어가고 대기실은 오늘이와 보호자만 남았다.


수술실 문이 닫히자 보호자는 대기실에 힘없이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보호자의 어깨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금씩 새어 나오던 소리는 조용한 대기실에 점점 더 크게 울리듯 퍼져갔다.


데스크 쪽에 앉아있던 오늘이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더니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들리는 소리보다도 더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마요 보호자의 흐느낌과  오늘이의 소리가 (낑낑과 끙끙, 깽깽 사이의 소리) 서로의 소리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화음을 넣는 것처럼 한동안 이어졌다.


보호자가 고개를 들어보니 안절부절못하고 빙빙 돌며 낑낑대는 강아지가 보였다. 왠지 그 모습이  자신과 함께 울어주는 것 같아 고맙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가방 속에서 간식을 꺼내 오늘이에게 내밀어본다. 바스락 바스락 비닐소리에 빙빙 도는 행동을 서서히 멈추고 보호자를 바라본다.

간식이 담긴 손을 내밀며 이름을 부르자 오늘이가 보호자에게로 다가와 손에 놓인 간식 냄새를 조심스레 맡는다. 내민 손에 오늘이의 수염이 닿아 간질간질하다. 오늘이는 간식은 먹지 않았지만 더 이상 낑낑대거나 빙빙 돌지는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가만히 앉아서 보호자를 올려다보았다.

병원에 올 때마다 보았던 강아지인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쓰다듬는 건 처음이었다. 자세히 보니 오늘이의 눈동자 색깔이 한쪽은 파란색, 진갈색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너도 우리 아이처럼 오드아이였구나... 마요와의 공통점을 찾고는 마요생각에 다시 울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늘이의 파란 쪽 눈동자가 더욱 진한 파란빛으로 반짝였다.


그렇게 마요 보호자와 오늘이는 대기실에 남겨져 수술실 쪽만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이가 슬며시 데스크 쪽으로 종종거리며 꼬리를 늘어뜨리고 걸어갔다.

조기 마감의 희망을 품고 김샘이 꺼버린 대기실의 음악 플레이 버튼을 앞발로 꾸욱 눌러서 다시 켠 오늘이는 다시 마요 보호자 옆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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