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수요일.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김샘이 전화를 받았다.
"네, 동물병원입니다"
"진료 예약하고 싶어서요"
김샘은 재빨리 컴퓨터에 보호자 전화번호를 입력해 아이의 정보를 찾았다.
화면에
'봄이'의 정보가 뜬다.
말티즈/ 5세...
"봄이 보호자님 이시죠? 우리 봄이 어떤 것 때문에 예약하시는 걸까요?"
"... ................"
"보호자님?"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닌데 답이 없던 보호자는 김샘의 여러 번의 호출에 조금은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는... 그....... 음........
무...지개 다리를... 건넜.. 어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간신히 끝맺은 말.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김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보호자님, 입력된 정보만 보고... 제가... 너무 죄송합니다"
김샘은 보호자가 옆에 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숙였다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아니에요.. 갑자기...... 그렇게 된... 거라
병원도.... 못갔... 거든요"
보호자의 말소리는 전파가 닿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지듯 들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김샘은 전화기에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보호자의 다른 반려견의 예약을 도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매 달 기본관리와 심장사상충 약을 받으러 왔던 봄이.
처치실에서는 주사도 씩씩하게 잘 맞고 다 잘 따라줬으면서 보호자 얼굴만 보이면 그때부터 낑낑대며 엄살쟁이가 되어 샘들을 놀라게 했던 봄이.
작고 사랑스러운 봄이가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김샘은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다가 봄이의 정보란에
'무지개다리를 건넘'
이라고 적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거나 듣게 되는 것은 병원에 있는 한 막을 수 없는 상황인데 어째서 그것은 반복되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걸까?
점심을 먹으며 모두들 엄살쟁이 봄이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이야기는 무지개 다리로 떠나보낸 각자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번져갔다.
오늘이는 점심을 먼저 먹고는 삑삑이 공을 물고 와서 홍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공을 갖고 노는 것 같더니 어느새 홍샘 다리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는 수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