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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 Jan 31. 2024

무병장수 거북이

ㆍㅅㆍ

분명히 거북이 두 마리가 예약되었는데 진료실에 들어온 것은 등껍질 가운데가 허옇게 색이 바랜 거북이 한 마리뿐이었다.


차트를 보던 원장님이 보호자 손바닥 위의 거북이를 보며 물었다.

 "얘가 무병인가요?"

 "아뇨, 얘는 장수고요, 무병이는 차에서 잃어버려서 지금 아이들과 아내가 찾고 있습니다"

"네? 차에서요? 얼마나 됐나요?"

 "삼십 분 넘게 찾다가 얘라도 먼저 진찰을 받으려고 데려왔습니다"

"날이 추워서 무병이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주세요. 차에 히터 꼭 트시구요"

걱정 어린 원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더 조급해진 보호자는 장수의 콧물 약과 무병이 약까지 처방받고는 서둘러 주차장 쪽으로 뛰어갔다.


오늘따라 기온이 뚝 떨어져서 콧물, 감기 때문에 온 아이들이 많았는데 무병이와 장수도 이름에 걸맞지 않게 콧물감기가 걸린 모양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홍샘이 나를 불렀다. 하루 중 가장 기다렸던 시간이 온 것이다. 잠깐의 시간도 아까워서 홍샘에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항상 가던 산책길과는 반대쪽으로 향하는 홍샘.

홍샘을 따라간 곳엔 아까 본 무병이와 장수의 가족들이 차 주변에서 대답 없는 무병이를 부르며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못 찾았구나... 추운 날씨에 자신이 위험에 처한 줄도 모르고 이 느긋한 녀석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홍샘이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나를 차에 태웠다. 내가 무병이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데리고 왔다는 얘기였다. 차안과 차 주변을 코가 닳도록 킁킁대며 무병이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이 녀석의 냄새는 차 뒷자리에서 뚝 끊겨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니 무병아.

내 코만 믿고 출동한 건지 홍샘은 별다른 방법 없이 나를 차에서 꺼내 보호자에게 인사를 하는 찰나.


다가오는 남자 보호자에게서 수상한 냄새가 감지되었다. 뭐지? 이 냄새는?

차 뒷자리에서 뚝 끊겨있던 무병이의 흔적이 얕지만 확실하게 남자 보호자의 움직임 속에서 포착되었다. 몸 주변을 샅샅이 킁킁대보니 점점 더 확신이 생겼다.

작전이 필요했다.


두 다리로 서서 남자 보호자의 허벅지를 박박박 긁었다. 남자 보호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쭈그려 앉는 그 순간. 옆쪽으로 잽싸게 방향을 틀어 보호자의 옷을 확인하다 보니 뒤쪽 보호자의 옷에 달린 모자 부분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몹시 수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무병이의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병이가 그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 모자 안으로 고개를 쑤욱 내밀어서 빠르지만 부드럽게 그 녀석을 물어 올렸다.

늘쩡맞은 이 녀석, 그럼 아까 보호자의 모자 속에 누운 채 진료실에 들어왔었겠구나.


무병이가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자 가족들의 환호와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하는 가족의 손에 안전하게 무병이를 인도한 홍샘과 나는 남은 점심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달려서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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