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정 Jan 24. 2024

서당개

ㆍㅅㆍ

"딸랑딸랑"


병원 문에 달린 작은 종이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울려댄다. 오늘도 참 많은 아이들이 주사를 맞고 약을 바르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그런 모습들이 낯설고 무서워서 숨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놀라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궁금한 아이들이 오면 진료실로 쓰윽 들어가 원장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샘들이 급하게 무언가를 찾으면 두툼한 네모 모양을 물어다 주고 칭찬을 받기도 한다. 요 고마운 물건을 샘들은 '물티슈'라고 불렀다.

이 물건은 사람에게 참 중요한 물건인가 보다. 이번에도 내 예감이 맞았는지 물티슈를 받은 김샘이

 "역시, 우리 서당개"라고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자주 듣는 말이 아니라서 '서당개'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그렇게 부를 때 샘들의 표정을 보고 추측건대 '사랑해'라는 말과 비슷한 뜻이 아닐까 싶다.


앉을자리 없이 꽉 찼던 대기실의 아이들이 주인과 함께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마감시간이 되어 텅 비어버린 대기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그림자처럼 내 뒤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맛있는 음식 같은 걸까? 하루 내내 지쳐있던 김샘이 저렇게 빨리 옷을 갈아입고 손을 흔들며 나간다. 원장님과 강 샘도 어느샌가 가고, 홍샘만이 남아서 내 식사와 물을 챙겨주고 있다.


"우리 오늘이, 오늘도 고생 많았네~푹 쉬고 낼 만나"

나를 안고 쓰다듬어주는 홍샘의 손이 너무 따듯해서 배고픈 것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을 흔들며 나가는 홍샘을 따라가 보았지만 늘 그렇듯 문이 닫히고 홍샘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환하게 빛나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조용해지자 낮에는 들리지도 않던 시곗바늘소리가  내 귀에 대고 째깍이는 것 같다. 그 소리를 피해 처치실 뒤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푹신한 내 침대와 담요가 있다. 담요에 얼굴을 대고 누우니 오늘 봤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주인에게 폭 안겨서 나를 쳐다보던 까만 눈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멀리서 꿈결처럼 들리는 소리에 무거운 눈을 떠본다. 제일 먼저 출근해서 나를 만나러 오는 이 발자국 소리.

홍샘이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