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챙김이 필요하다
진단 diagnosis, 診斷
신체적 혹은 심리적 상태에 관한 평가결과를 토대로 전체적인 해석을 하는 것. 환자의 질환의 증세나 원인을 판단하기 위해 의학적 원리와 경험 그리고 과학적 수단과 방법을 적용하여 진단한다.
우선 의사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나라는 환자를 진단해 보기로 했다. 물론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이러한 증상이 생긴 데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을 것이며, 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한다면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진짜 의사라도 된 것 마냥 병원에 가면 하는 의사들의 단골멘트 ‘술, 담배 하지 마시고. 운동을 좀 하면 좋겠네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정도는 술술 읊어주었다.
무기력증 자가진단
최근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고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매사에 조바심이 자꾸 생긴다
전보다 두통(요통 혹은 기타 질환)이 심해졌다
‘누가 나에게 관심이나 있을까?’하는 실의에 자주 빠진다
최근 술을 많이 먹고 주량도 늘었다
예전에 비해 기운이 떨어지고 하루 종일 피곤하기만 하다
근래 들어 일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전보다 집중이 잘 안된다
밤에 잠을 못 이루거나 새벽에 자주 깨고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다
식욕이 떨어졌거나 식욕이 지나치게 왕성해졌다
제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진다
일에 대한 의욕이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전에는 결정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다
내가 좋아하고 자신있게 하던 일이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
‘신경 써서 뭐해?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정당한 대우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문제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아 무능함을 느낀다
일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출처=뉴시스】 무기력증 자가진단표. 의욕이 저하되고 불안감이 지속되면 간단한 자가진단(미국 정신과 의사 프랭크 미너스 박사)를 통해 무기력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 20가지 문항은 무기력증의 초기 증상으로, 이 중 10개 이상 해당될 경우 무기력증일 수 있다.
그러던 중 나의 상태를 명확히 진단해줄 수 있는 증상을 찾았는데 바로 ‘무기력증' 이었다. 위 자가진단표의 20가지 문항 중 10개 이상 해당될 경우 무기력증일 수 있다는데 2-3가지 빼고는 모두 해당되는 걸 보니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무기력증'이란 단어가 저질체력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단어라 ‘또 나약한 저질체력 너가 문제구나'라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늘 걸림돌이 되던 이 몸뚱아리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뒤 무기력증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원인은 체력에 있지 않았고 보다 심리적인 문제에 가까웠다.
무기력증 Lethargy
전신적인 피로감과 집중력의 저하로 인해 간단한 작업을 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 부진한 상태를 의미.
신체적 질환이 기저가 아니라면 심리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 실패 경험, 과도한 업무량, 통제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적 상황 경험 등이 무기력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마음 心 (mind)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
심리 心理 (a state of mind; a mental state; mentality; psychology)
마음의 작용과 의식의 상태
그 때부터였나보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지치고 피곤할 때면 당연하게도 저질체력을 탓하면서 잠을 자거나 보양식을 먹거나 운동을 하는 등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행동들을 해왔기에 이 쪽 방면에서는 지식이 빠삭한 편이었다. 그런데 심리적인 문제라니? 심리에 대해서는 별달리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그런 심리적인 문제가 나에게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비록 체력은 미약하나 정신력에 있어서는 꽤 자신이 있었는데, 심리적인 문제라니..!
혼란스러울만도 한게, ‘마음’에 대해서는 부끄러울만치 아는 게 없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아주 가끔 친밀한 사적관계에서만 신중하게 드러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마음’에 솔직할 수 있는 건 어린아이 때나 가능하지 다 큰 어른은 ‘마음' 따위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마음(mind)'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사실(fact)’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하곤 했고 그렇게 하는게 맞는 줄로만 알았다. 간혹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되는 것인냥 서둘러 마음 깊숙이 집어넣고 다신 나올 수 없도록 봉인해놓았다.
‘그 때 느꼈던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등 감정의 상태를 알고자 하는 노력을 소홀히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어떤 감정이었는지 알고 그 감정을 조절하여 행동하는 것과 그 감정을 알지 못하고 무시한 채 행동하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비슷해보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천지차이라는 걸 그 당시는 몰랐다.
나이는 벌써 삼십대 중반이 되었는데 마음은 여전히 자라지 못한 채 어린아이로 남아있었다.
지금까지 돌보지 못한 ‘마음’에게 미안해졌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어린 마음을 꼭 껴안고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줘야할지 그 방법마저도 몰랐다. 내 감정과 나, 우리는 전혀 친하지 않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2015)’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 머릿속에 존재 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기쁨 (Joy), 슬픔 (Sadness), 버럭 (Anger), 까칠 (Disgust), 소심 (Fear) 다섯 감정들.
(스포 포함)
11살 소녀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타워는 기쁨(Joy)이 이끌며 매일이 즐거운 날들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일리 가족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다른 감정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하고, 기쁨(Joy)은 기쁜 감정을 유지하려 계속해서 다른 감정들을 통제하지만 그럴수록 라일리의 상황은 더 악화되어간다. 기쁨(Joy)이는 행복했던 기억들을 자꾸 슬픈 기억으로 바꾸는 슬픔(Sadness)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재하는데, 결국엔 라일리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다름아닌 슬픔(Sadness)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른용 애니메이션이라고 봐도 무방할만큼 인간의 감정에 대해 잘 풀어낸 영화로 ‘모든 감정들은 저마다의 존재 가치가 있으며 소중하다'라는 깨달음을 준다.
여러 감정들 중 슬픔(Sadness)을 떠올려보았다. 어렸을 적 나는 울보였다. 아빠는 지금도 술을 마실 때면 옛날에 내가 매일 생떼를 부리며 울어서 많이 혼났다고 안주삼아 말씀하신다. 그 눈물 많던 울보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 이 무력감이 슬픔의 감정이라면 실컷 울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감정을 슬픔이라는 한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감정을 더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