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내 마음의 경호실, 방어기제
방어 기제(防禦機制, 영어: defence mechanism)
받아들일 수 없는 잠재적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하거나 왜곡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이다.
“마음은 마치 순두부 같습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리고 쉽게 뭉그러집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이렇게 여린 마음을 잘 보호하기 위해 누구나 마음의 경호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 ‘프로이트의 의자’ 중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누구나 느낀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오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 즉시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마치 우리 몸에 외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면역체계가 발동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 방어기제를 외부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개인마다 방어기제를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다른데 개중에는 미숙한 것도, 성숙한 방식도 있다.
10여개가 넘는 방어기제의 종류가 있지만 주요 내용만 요약하여 이야기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억압, 부정, 합리화 등의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방해가 되거나 악화될 수 있는 반면, 승화, 유머, 이타주의 등의 '성숙한 방어기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방어기제를 잘못 사용하여 그 증상이 심해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억압: 불안이나 위협적인 생각이나 감정 존재 자체를 거부하여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무의식적으로 막는 것입니다.
부정: 위협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외부의 실재나 사건을 아예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분리 : 자기와 남들의 이미지, 자기와 남들에 대한 태도를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 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것으로 분리하는 것
투사: 스트레스와 불안을 일으키는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를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전가시킴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 투사를 사용하는 경우 다른 사람의 무의식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편견, 의심, 경계, 오해, 책임전가 등의 현실왜곡이 나타남
합리화: 불합리한 태도, 생각, 행동을 합리적인 것처럼 정당화시킴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으려는 방법
반동 형성: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대되는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퇴행: 더 안전하고 편안했던 이전 발달 단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방어기제를 공부하면서 가장 의미있었던 건 그동안 감정을 의식적으로 ‘억압’해온게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 '미성숙한 방어기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감정을 억누른 채 이를 '이성'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속여왔다는건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러던 중 심리학에서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더 심리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글도 읽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며 도움이 많이 됐기 때문에 늘 옳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누군가 뒷통수를 세게 친 것 같이 정신이 번뜩 들었다. '힘들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태도가 그 감정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는 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짐작하건데 두렵고, 불안하고, 걱정되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애써 외면했던 건 혹시라도 그 감정들이 해야하는 걸 하지 못하게 의욕을 꺽고 가야할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던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어떻게 해야 맞는 선택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봤다. 아마도 직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그 당시 느낀 감정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다른 묘안은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돌이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가파른 언덕위로 돌을 힘겹게 올리는 것을 반복하는 시지프스가 떠올랐다. 고통스러운 것을 그 자체로 인식하고 계속해서 살아내는 것, 그게 시지프스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베르트 까뮈의 부조리를 떠올렸다. 카뮈는 우리의 삶이 시지프의 형벌 같다고 비유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의미없는 일 (먹고, 자고, 일하고, 씻는 등)을 반복해야하며 이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카뮈는 이 부조리를 깨달은 사람은 자살하거나 극복하거나 두 가지의 가능성만 있다고 했다. 카뮈가 제시한 해법은 "삶에 대한 이유를 외부적 요인에서 찾지 말고 그 자체로 받아들여라"다. 카뮈는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라고 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받는 걸 알지만 그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아니 오히려 잘 해내야하는 그 냉혹한 현실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까뮈의 말이 단순히 뇌에서 이해되는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파도로 다가와 모든 신경세포를 삼켜버렸다.
찰리채플린의 말이 진정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진정으로 웃으려면 고통을 참아야 해, 고통을 즐길 수 있어야 해
(To truly laugh, you must be able to take your pain, and play with it!)
- 찰리채플린-
1930년대 말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72년간 추적관찰하며 연구한 결과를 담은 인생성장 보고서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 이 연구에서 행복의 첫번째 조건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졌는지의 여부이다. 이 책에서 성숙한 방어기제는 승화, 유머, 억제, 이타주의로 크게 4가지를 제안했다.
승화(Sublimation) :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충동을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격적인 충동을 스포츠 활동이나 예술에 투영하는 것이 있다.
유머(Humor) :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사태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보지 않고 가볍게, 희망적으로 보는 능력이다. 이 메카니즘을 가질 때 우리는 심각한 상황도 객관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억제(Repression) : 감정을 잠시 미뤄 두고 나중에 다시 찾도록 하는 것이다.
이타주의(Altruism) :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타인을 돕는 것을 말한다.
승화, 유머, 억제, 이타주의와 같은 것들이 심리학적으로 카뮈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했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감정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나도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면이 단단하고 외적으로 부드러운 ‘외유내강’형의 사람들을 존경하곤 했는데, 이들이 모두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의식하고 있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부족한 부분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해왔던 것 같다.
문제를 인지하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마음을 기르고자 하는 이유는 충분했고 이제 실행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