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충전이 필요하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서 나온 명대사다.
극 중 여자주인공 아이유의 이름이 지안, 그 이름의 뜻은 기가막히게도 ‘至(이를 지)安(편안한 안): 편안함에 이르다’ 이다.
지안은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홀로 할머니를 부양하고 대부업자의 빚독촉을 견디며 살고 있다.
작고 마른 체구에다가 아직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인 지안에게 세상은 가혹하기만 하고 지안은 그 세상을 살아내느라 웃음기를 잃은지 오래다.
그렇게 꿋꿋이 살아내는 지안의 삶에 어느 날 동훈이 들어오며 지안의 인생에도 가끔 웃을 수 있는 숨통이 트인다. 이 드라마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인생드라마로 등극하였는데, 이 드라마가 시사하는 바는 이렇다.
“어느 인생도 편안할 자격이 있다.”
행복(幸福) :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그리고 만족을 느끼는 것.
‘행복'이 인생의 목표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인생을 공부하면서 결국 행복이라는 목표는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찰나의 감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령 “내 꿈은 건물주!”라고 생각해서 인생을 바쳐 건물주가 되더라도 그 목표의 달성이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오히려 목표를 달성한 달콤함은 잠시 뿐이고 이후에 인생의 목표가 사라진 허망함을 느끼고는 이내 좌절해버렸다는 사례는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결국 지금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어떤 상태로 도달하더라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어떤 상태로 도달해서 행복을 느끼려면, 현재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기 위해서 현재를 즐겨라. 마음껏 웃고, 이 순간을 온몸으로 즐겨라"
- 니체 -
한 때는 매일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 내준 숙제라도 하듯이 SNS 계정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행복한 모습’을 업로드하고, 하루라도 SNS에 올릴만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인생을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누가 더 행복한지 겨루는 ‘행복 대회' 에 참여하여 남보다 나은 피드를 올려야지만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오랜시간 행복의 의미를 왜곡했던 것 같다.
그저 특별한 일 없는 일상적인 하루였다면, 딱히 무언가 기쁘고 즐겁지 않은 평범한 날을 보냈다면 나의 하루는 의미없는 하루였을까? 이제서야 단언컨대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대부분 사람의 하루는 평범하고 그러한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특별한 하루를 만든다. 인내의 시간이 없는 열매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열매만 볼 뿐 그 열매를 만들기 위해 견뎌온 수많은 평범한 인내의 시간들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사실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걸수도 있다.
어느샌가 변질되어버린 ‘행복'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와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허황된 찰나의 ‘행복’보다 확실한 일상의 ‘안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 바쁘게 하루를 사는 사람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 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쩌면 전자는 ‘대단한 사람’으로, 후자는 ‘한심한 사람'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그 목적지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전자는 미래의 안녕을 위해서 그렇게 현재를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고 후자는 현재의 안녕을 위해서 그렇게 쉼의 시간을 갖는 것 뿐이었다. 누군가가 대단할 것도, 한심할 것도 없이 그들은 각자의 안녕을 위해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 아이유가 나왔는데, 쉴 때 그냥 식탁에 6-7시간을 앉아있는다고 했다. 특별한 일 하는 것 없이 멍 때리기도 하고 핸드폰을 보기도 하며 그저 그렇게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아이유를 모르는 혹자는 그녀를 한심하게 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유재석은 달랐다. “평소에 일하면서 얼마나 에너지를 다 쏟아냈으면 그렇겠냐” 라면서 핸드폰 충전에 비유를 했는데 그 말이 참 공감이 갔다.
“왜 핸드폰도 평소에 전화통화하고 메세지 보내면서 열심히 쓰지만 충전할 때는 가만히 충전기에 두잖아요.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열심히 살고 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충전할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어쩌면 앞서 이야기한 전자와 후자는 같은 인물일 수도 있다. 그저 미래의 안녕을 바라는 나와 현재의 안녕을 바라는 나만 있을 뿐이다.
“평소처럼 의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쳐 있다는 증거다. …
피곤하다고 느낀다면 사고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다시 의연히 활동할 수 있도록 내일을 향해 준비하라.” - 니체 -
나의 상태를 핸드폰으로 비유한다면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 곧 방전될 거라고 빨간색을 띄며 경고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전부터 잘 충전해줬다면 좋았을테지만 애석하게도 지금까지는 ‘이 나약한 저질체력아, 더 힘내란 말이다'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경고들을 무시해왔다. 몸과 마음이 더이상 내 의지를 따르지 않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방전되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는 많았지만 그 뿐, 큰 병이나 수술 없이 이 저질체력인 몸뚱이를 데리고 30년 이상을 살아온 난데 방전이라니?’
처음에는 어떤 큰 병에 걸린 줄로만 알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건강검진결과서를 받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 편, 현대 의학으로 이 상황을 속시원히 진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답답했다.
그래도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 금새 좋아질 거라고 여기면서 한동안은 여느 휴식할 때와 같이 쇼파에 누워 하루 종일 드라마를 정주행해보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서 잘 먹고 잘 자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쉬는 동안에는 괜찮아지는 듯 하다가 무언가 새롭게 도전하려고만 하면 금새 물 먹은 휴지처럼 바닥에 다시 널부러지기를 반복했다.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되다보니 드라마나 여행과 같은 임시방편은 한계가 있었다. 조금 더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