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심히 사는 목적은 나의 안녕이었다.
저질체력,
환절기마다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조금만 무리해도 코피가 나 코피를 달고 살았으며,
한 번 체하면 위액까지 수차례 토하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하루 종일을 보내야 했던 나의 어린시절.
잠을 많이 못자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드는 저혈압에 고3 수험생 때도 하루에 꼬박 6시간은 자야했던 저질체력으로 ‘건강’은 늘 나의 관심거리였다.
저질체력이지만 하고싶은 건 또 많은 욕심쟁이라 “어떻게 하면 힘을 덜 들이고 효율적으로 건강할 수 있을까?” 잔머리를 굴리며 지금까지 어찌저찌 살아왔던 나.
밤에 잠을 더 자기 위해 낮에 열심히 살고 얼른 퇴근하고 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열심히 사는 목적은 나의 안녕安寧(편안할 안, 편안할 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팽팽하게 당겨왔던 고무줄을 ‘탕’ 하고 놓아버린 것처럼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
그렇게 하고 싶은게 많던 욕심많은 난데 더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오히려 지금까지 아둥바둥해왔던 생활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놓아버린 고무줄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채 다시 잡아 당겨주길 기대하는 듯 했지만 그런 고무줄을 다시금 잡아당길 힘은 남아있지 않았음은 물론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번아웃인가?”
그야말로 새까맣게 타버린 번아웃(Burn out)상태로 재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이 바닥에 쓰러진 채 더이상 토해낼 음식도 없는데 계속해서 위액을 토해내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안녕이라는 단어를 쓴다.
누군가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사용하는 인사말이다.
安寧(편안할 안, 편안할 녕)
안녕의 본래 뜻은 ‘걱정이나 아무 탈이 없음’을 의미한다.
평소엔 그저 무심코 쓰던 단어가 어느 날 내 귓 속을 거쳐 깊숙이 들어와 머리에 박혔다.
“나는 안녕(安寧)한가?”
선뜻 “Yes”라고 동의할 수 없었다.
마음 속 한켠에 동의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비집어 나와 생각으로 이어지려는 충동을 다른 한켠에 자리한 이성이 간신히 막아섰지만, 그 때는 이미 무의식에 무언가 있음을 짐작한 뒤였다.
“안녕(安寧)하고 싶다.”
안녕(安寧)하지 못한 상태임을 어렴풋이 알아차리자 마자 나의 간사한 뇌는 금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를 뿜어내며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안녕(安寧)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나의 잔머리도 여느 때와 같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안녕(安寧)에 도달할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