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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四) 물. 혼자 놀기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었다.



청년은 유난히 혼잣말하길 좋아했다. 육지에서 살 적에 그 습관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섬에 오면서 일상이 돼버렸다. 육지와 섬 사이에 다리가 놓이면서 절은 친구들의 이주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청년이 마을에 집을 지을 즈음에 남은 사람은 초등학생 두, 세 명과 중·고등학생이 네 명 남짓이었다. 나이 비슷한 또래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섬사람들이 말하는 청년은 육지보다 적게는 스무 살에서 많게는 서른 살까지 잡는, 그래서 4, 50대가 주를 이루었다. 터울이 벌써 띠동갑을 넘어서는데 그나마 젊은 삼촌들과 얼마나 마음이 통할지 몰랐다. 더구나 육지에서 젊은 날의 대부분을 보내다 온 초보 청년에게 말이다.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달라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마을 회의에서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뿐이었다. 술 한 잔 나누어도 깊은 얘길 공유할 수 없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세상. 말을 하고 싶은데 못하면 어떨까? 그 쓸쓸함이나 적적함은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음이다. 주민 대부분이 바다에서 김 양식을 하다 보니 만나기조차 쉽지 않았다. 



2017.05.16. 압해도. 봄날



그래서 혼자 놀 수 있는 시간을 갖는 데 고민했다. 집에 물건을 정리하다가 오래전에 아버지가 쓰시던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다. 표준 렌즈에 꼬마처럼 작은 체구의 펜탁스(Pentax) 카메라였다. 요모조모 따지고 만지작대다 ‘이거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모래밭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풍경을 담는 데 굳이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으니까. 곧장 아버지께 사용법을 배워서 집 안팎으로 나다니기 시작했다. 같은 풍경을 특정한 시간에 맞춰 찍기도 하다가 점점 촬영 영역과 대상을 늘렸다. 마을에서 뒷산으로, 해안선이나 바다로 출사를 다녔다. 


그저 좋은 결과보다는 이런저런 사물이나 자연 풍경을 많이 찍는 데 만족했던 청년은 평소 가볍게 스치며 잊었던 대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긴 마장에 매달려 꾸덕꾸덕 건조되어가는 생선 건정이 해풍(海風)을 만나 휩쓸리는 풍경, 비릿함을 쏙 빼고 짠내음 풍기는 건정을 올려보며 입맛을 다시는 마을 고양이. 색 바랜 돌담, 담장 틈에 어렵사리 뿌리내리어 움을 틔우던 들꽃, 인기척에 놀라 짖어대다 낯익은 청년을 발견하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반기는 백구. 시원하게 바다를 가로지르며 내달리는 보트 등 일상에서 생동하는 모습은 카메라의 네모 상자에 담기어 말 대신 생각을 키워냈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사진 잘 찍는 법을 나열해놓은 서가의 책을 읽는 대신 현장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보고 느끼는 시선과 사고를 키우고 풍경에 오롯이 반영하는 과정은 지금의 자아를 발전시킨 동기라는 점에서 옳았다고 생각한다. 



2017.08.01. 압해도. 섬 위에 뜬 여름



마을에서 시작된 놀이는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이나 이웃하는 섬이나 육지의 도시 여행을 떠나는 여정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적으니 인물사진을 찍기 어려웠지만 천의 얼굴을 가진 대자연의 신비롭고 맑은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무성(無聲)의 자연은 가끔 감탄사와 함께 짧은 말 내뱉던 청년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아를 만나는 데 더없이 좋은 중간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였다. 틈틈이 글쓰기를 즐겼던 청년은 감성의 목마름으로 애를 태우기도 하였는데 지난날 시·공의 흔적을 온전히 담는 사진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상념이나 느낌을 문자의 형태로 바꾸는 데 더없이 좋은 기록이자 흔적이었다.      

한편 직접 만나지 않아도 교류하거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인터넷이나 sns가 만인(萬人)에게 보급되어 허접하지만 나날의 기록을 전파하여 다양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연령이나 성별이 달랐지만 그들은 어촌에서 사진 찍는 친구가 있다는 데 관심을 표현하거나 호응했다.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시작한 놀이가 햇수를 늘려가면서 청년 스스로를 소개하는 데 좋은 명함과 얼굴이 되었다. 



2017.09.26. 신안군 병풍도. 갯골



과거 대학에 다니던 시절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적 있다. 그때 교수님이 수업 중에 ‘일’과 ‘놀이’의 차이점을 명료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서로를 구분하는 기준은 즐거움을 느끼는가, 느끼지 못하는가에 있다는 점이었다. 과연 그렇다. 사진을 찍으면서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바꾸고 렌즈도 몇 가지 샀지만 청년은 여전히 이 놀이를 일로 생각하길 경계한다. 가끔이지만 지인들에게 상품이나 공간 촬영을 의뢰받기도 하는데 상업 사진 세계에서 인정하는 작가 인건비보다 적은 금액을 제시하거나 아예 바라지 않기도 한다. 그 대신 결과를 장담하지 않는다. 그리고 꼭 ‘결과에 상관없이 재미있게 놀겠습니다.’라고 당부한다. 여전히 놀고 싶은 욕심이 큰 까닭이다. 


사진과 글은 각각 이미지나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결이 같다. 시각에 민감한 요즘 세태는 더 다양한 콘텐츠를 요구한다. 사진을 접했으니 영상으로 넘어가는 건 어떠냐는 지인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더 나아가지 않기로 했다. 한 가지만 잘하기에도 벅찬 본성을 잘 아는 탓이리라. 여전히 풍경에 갈증을 느낀다. 아직 가지 못한 섬이 고향 주변에 있고 만나지 못한 사람이 알 수 없을 만큼 많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과욕은 건강을 해치고 지나친 스트레스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늘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성스러운 놀이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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