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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六) 물. 어판장

아침을 여는 사람들을 만나다

2016.05.28. 압해도. 잡은 낙지는 어판장에 내기 전부터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새벽잠을 깨우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짧지만 굵고 거칠다. 뭔가를 끄는 듯하였다. 간밤에 갯벌에 다녀온 탓에 몸이 무거웠지만 몸을 일으켰다. 필시 어머니가 잡은 낙지를 어판장 경매에 부치는 작업을 하고 있을 터였다. 생물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줘야 때깔도 고와지고 서로 싸우지 않으니까 말이다. 낙지는 밀식이 어려웠다. 주로 게를 먹이로 삼지만 부족하면 같은 낙지를 잡아먹기도 했다. 청년이 홰낙지잡이를 하면서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힘이 센 큰 낙지가 어린 낙지를 보듬어 욱죄거나 제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모습이 그러했다. 한편 배가 고프면 제 발을 뜯어먹는 습성도 있었는데 발이 하나, 둘 없는 낙지는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 위판하기 전에 집에서 한데 모아두면 늘 상처가 나거나 발이 없는 녀석들이 몇 마리씩 나왔다. 그렇고 그렇게 먹고 산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흠이 없는 보기 좋은 낙지가 제값을 받는 건 빛깔 좋은 사과나 이물질(파래 따위가 섞인)이 없는 구운 김을 좋아하는 구매자의 욕구에 맞추어 매대에 오르는 상품과 같은 이치에서 비롯된다.     

바닷물만 떠서 낙지를 넣으면 산소가 부족해서 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산소 호흡기 따로 마련해야 했다. 또 모여 있으면 서로 힘겨루기를 하거나 옥신각신 다툴 수 있으니 미끼로 쓰던 참게를 몇 마리씩 던져주어 달랬다. 이런 지극정성도 부족할 때가 있었다. 산소가 과하게 공급되면 녀석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다툴 확률이 높아졌다. 일면식도 없이 한 자리에 붙으니 자리싸움이다 뭐다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었다. 바닷물의 양을 조절하여 수중에 녹는 산소량을 조절하거나 마릿수에 비례해서 참게를 넣어 주었다. 최고의 낙지를 뽑는 낙지 선발대회에서 중도매인들의 눈에 들려면 불편하지만 번거로운 과정을 소화해내야 했다. 


 

2019.11.07. 압해도. 송공항의 어판장으로 가기 전에 낙지를 한 데 모았다. '가족(家族)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겼다.



예전엔 목포 북항의 활어어판장에서 신안군의 어민들도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압해도 송공항에 신안수협 어판장이 새로 생기면서 낙지를 중심으로 하는 위판이 섰다. 섬사람들은 목포로 왕래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좀 더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위판장은 낙지를 잡는 어민들이 모이는 공간으로써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바다에서 만났던 이웃집 주민을 뭍에서 또 만나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저마다 가진 기량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결과는 낙지의 크기나 신선도, 마릿수에 따라 달랐다고 값으로 이어졌지만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낙지를 골라가며 잡을 순 없으니까.     


물목에 오른 낙지를 사는 중도매인들은 전자계산기에 값을 입력하여 경매사에게 보여줬다. 세상이 좋아져서 겉옷에 손을 감추며 특유의 숫자를 세는 손짓 문화 대신 계산기가 자리 잡았다. 경매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어민의 이름을 부르고 값을 매기기 시작하면 수군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누구네 낙지가 *씨알이 크고 좋더라.’라는 둥 ‘누구네 낙지가 때깔이 곱더라.’라는 감탄이 이어졌다. 값을 정하는 기준은 크기에 있었지만 부차적으로 상태나 신선도가 중도매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19.11.07. 압해도. 송공항에 새로 문을 연 신안군 수협의 어판장. 섬 지역에서 잡힌 상당수의 뻘낙지가 이 곳으로 모인다.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호호 불며 순서를 기다리는 청년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부모님의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가격이 불리면 바로 문자를 보내드린다는 약속을 한다. 마침내 중도매인 무리가 청년의 이름표가 적힌 대야에 이르렀다. 연신 시선을 아래에 두며 유심히 관찰했다.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불꽃이 번뜩였다. 경매사가 부르는 값이 좋았다. 씨알은 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모든 건 어머니의 공이라 생각하며 문자를 보냈다. 문자쓰기가 귀찮았는지 전화를 걸어왔다. “ 기다리느라 고생했다.” “아들. 얼른 와.” “아침밥 먹자.”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볼일이 끝나니 허기진 배가 울어댄다. 낯익은 어른을 뵈어 연신 인사드리고 차에 올랐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신나는 음악을 선곡했다. 구름을 탄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 해를 앞에 둔 차는 미끄러져 갔다.       


    

*씨알: 크기를 뜻하는 남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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