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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八) 물. 맞담배

어장(漁場)에서 우린 동지가 되었다.

       

아버지와 맞담배는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바다에서 시작되어 바다에서 끝났다. 부모와 자식 간에 예의범절을 강조하던 어른이셨다. 이와 같은 행위는 용납할 수 없었지만 어른의 그림자를 피해 숨을만한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한 아들에게 배 위에서는 편히 피우자고 말씀하셨다. 다만 다른 어른 앞에서는 조심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먹고 사는 생업의 현장에서 우린 배에서만큼은 부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동지(同志)가 되었다. 어장으로 나아가는 뱃길에서 살갗을 후비고 할퀴는 바람을 함께 맞았고 뱃머리에 부딪혀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수면의 차가운 짠물을 서로 뒤집어썼다. 작대기 끝에 곡선을 그리며 구부러진 갈고리를 그물에 걸고 한참 동안 씨름한 끝에 수면 위로 떠올렸다. 힘에 부쳤지만 놓칠 수 없었다. 놔버리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하는 까닭이다. 기운을 축내는 반복은 용납되지 않았다.      


바다는 바람을 몰고 왔다. 그 바람은 잔잔한 수면을 일그러뜨리며 화를 부추겼다. 거센 조류를 피해야 수월한 그물질을 할 수 있겠지만 어장은 늘 물길이 도는 험난한 구역에 설치됐다. 거칠수록 괴기가 많이 든다는 어부 사이의 정설(定說) 탓이다. 고단함을 자처하면서 피로가 쌓이는 시간을 괴로워하는 입장이란. 그렇다고 누구에게 이 아픔을 하소연하겠소. 식탁에 오르는 생선구이 한 마리, 회 한 접시가 얼마나 많은 통증과 수고로움에서 비롯되는지 몸소 깨달았다. 땀과 눈물 없는 쌀이 있을 수 없고 욕과 고성이 담기지 않는 생선이 있을 수 없었다.  

    

겨울 바다는 연신 그물을 집어삼키다 토해내길 반복했다. 키 낮은 난간에 걸쳐 아슬아슬하게 선 육신은 거대한 자연에 이끌려 들썩였다. 연약한 그물코를 피해 두꺼운 *원줄을 꼭 쥐고 한참을 버텼다. 없이 어부의 손만으로 이 크나큰 그물을 집어 올린다는 건 애초에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전업으로 삼지 않는 탓에 값비싼 장비를 설치하는 건 사치였다.      


2017.02.12. 어장에서 물을 보다


지루한 방어를 계속하다 보니 헛생각을 했다. 제힘만으로 온전히 갑판 위에 그물을 내동댕이치는 액션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고. 변강쇠가 아닌 이상 과도한 행위는 일반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현실에선 이처럼 힘든데 말이야. 우직하고 힘이 넘치는 변강쇠의 이미지를 연상하다 웃고 말았다. 웃음은 핏줄이 선 팔뚝의 기운을 앗아갔다. 그만 줄을 놓치고 말았다. 허망하게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아차!’ 했다. 곧이어 어른의 야단과 호통이 들려왔다. 눈을 치켜뜬 그분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곤 씩씩거렸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물질은 청년만의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힘을 들이는 공동 작업이었다.            

 

 사투를 벌이다 아들의 실수에 맥이 풀린 아비는 성화(成火)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긴 숨을 연거푸 토해내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잠깐 쉬자 했다. 일그러진 얼굴로 털썩 주저앉은 부자(父子)는 달콤 쌉싸름한 담배를 찾았다. 서로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며 무언(無言)의 소통을 이었다.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붉어진 얼굴을 식히는 아비. 그리고 마른 침을 삼키는 아들. 볕을 맞아 냉기가 증발하는 갑판에 드러누웠다. 욱신거리는 전신에 통증이 몇 바퀴를 돌고 나면 이윽고 노래지던 하늘이 파래졌다. 차디찬 겨울 바다에 손은 감각을 잃고 무뎌졌다 이내 익숙해졌다. 고무장갑을 한 켤레와 목장갑 두 켤레를 벗어 말렸다. 볕을 맞아 장갑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만조에 이를수록 물살이 거세어질 터였다. 더 쉬고 싶어도 아비는 급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나긋나긋한 어조로 조용히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청년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처럼 천천히 갈고리를 원줄에 걸고 묵직하게 잡아당겼다. 마음가짐이 달랐던 덕분일까? 보기 좋게 어망이 수면 밖으로 딸려왔다. 펄떡이는 괴기들이 흰 포말을 일으키며 파닥거렸다. 며칠을 기다렸다 어장을 찾은 보람이 있었다. 농어와 숭어, 광어, 백조기, 장어, 돌게 등 종류도 다양했다. 흐뭇하게 웃던 아비는 기합을 넣었다. “영차!” “영차!” “하나!” “두울!” 소리에 힘이 실렸다. 푸른색으로 칠이 되어 있던 갑판에 녀석들이 넓게 퍼졌다. 살아있는 생물이니 서둘러 어창(魚艙)에 담아야 했다. “꼭 살려서 가야 한다.” 어른의 당부를 곱씹으며 주섬주섬 주워 넣었다.     


그득하니 괴기가 실린 어창을 보다가 후련하게 담배를 피웠다. 매캐한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맛을 느낄 새 없이 코로 배출해버린 건 불규칙한 숨을 다스리지 못한 탓이다. 바람에 이끌려 떠나간 연기는 얼굴로 되돌아왔다. 눈을 질끈 감으며 매운 기운을 차마 다스리지 못하였다. 눈물이 났다. 고된 작업에 지쳐서 그러는지, 단순히 연기 탓에 그러는지 알 길이 없는 아비는 아들에게 시선을 두다 너른 수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창에 그득하니 실린 괴기 떼를 보며 배를 쓰다듬었다. 포만감을 느꼈다. 연신 펄떡이며 친구들과 부대끼는 녀석들은 아비의 땀이었고 아들의 통증이었다. 괴기를 많이 잡는 날이면 아비는 뭍으로 향하는 배에 속력을 붙이곤 하였다. 살려서 제값 받고 팔고 싶은 걸 잘 알았다. 요지부동이던 바다가 만선(滿船)을 만나 시원하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펌프로 끌어올린 신선한 짠물을 어창에 흘러넘치도록 들이부으니 배 안은 금세 물바다가 되었다. 물이 놀아나니 물 따라 튀어나온 숭어 몇 마리가 볕을 받아 반짝이기도 했다. 미끄러운 갑판 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웃으며 녀석들을 제 자리에 넣었다. 부디 죽지 말라. 숨을 쉬어야 값을 옳게 받는다. 네 숨이 멎는 순간 내 손에 쥐어질 땀의 달콤함은 없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배가 무게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질까 염려되어 아들은 재빨리 제 자리 찾았다. 들썩이는 갑판에서 몇 걸음 떼어 간신히 뱃머리에 육신의 무게를 올렸지만 배는 좀체 평정심을 찾지 못하고 들썩였다. 익숙한 포구가 보이고 분홍빛의 섬 집이 시야에 들었다. 다 왔다고 생각했지만 길이 멀어지는 혼란에 휩싸였다. 분초(分秒)가 빠르게 스쳤다. ‘아부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속도를 내주세요.’      


선착장에 가까워지자 포구에서 기다리던 용달차가 한 대 보였다. 한 남자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압해도에 어판장이 없던 시절 차를 끌고 다니며 매집(買集)하던 상인이었다. 도매가에 버금가는 값에 만족해야 했지만 많은 물량을 쉽게 넘길 수 있어서 판로를 걱정하던 어부는 어장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한창 그물을 털 즈음 그들은 미리 와서 기다렸다.  급한 마음에 대야를 한 손에 거머쥐고 어창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싱싱하게 펄떡이던 녀석들이 수면위에 둥둥 떠서는 간질거리는 숨을 빠끔대다 뜬 눈으로 힘없이 흐느적이는 것이었다. 수면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어선의 들썩임에 일정한 간격으로 일어나는 미세한 파동만이 흐물거리는 몸뚱이를 뒤흔들었다. “아야.” “일어나보거라잉.” “인자 다 와서 죽으믄 어떡하냐.” “아야.” “얼른 일어나보랑께!!” 어창에 담긴 작은 바다가 주문을 걸다 잠잠해졌다. 청년은 힘없이 주저앉아 수면 아래로 손을 넣어 휘휘 저었다. 주검들이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말을 잊었다.      



2017.02.12. 주검이 되어버린 괴기 앞에서 우린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어부의 손을 탄 녀석들은 커다란 대야에 옮겨지며 찰나의 순간 펄떡였지만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음에 이르는 미동이었던가? 얕게 파닥이다 이내 돌처럼 굳어졌다. 대관절 볕을 받아 제 몸을 반짝이던 그놈들은 어디로 갔나.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던 상인은 기다리는 시간만 아깝게 썼다며 핀잔을 늘어놓고는 서둘러 떠났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발동걸린 차가 멀어졌다. 공기 중에 머무른 흙먼지가 날아들었다. 쌍욕이라도 지껄이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다.     


뭍에 첫발을 내디딘 아비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지 못하고 허망하게 구겨진 담뱃갑을 찾았다. 이윽고 녀석들의 영혼이 허공에 흩날렸다. 여전히 갑판에 머무르던 아들도 무언가를 찾았다. 허전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휘휘 젓다가 갑판에서 둥둥 떠다니는 갑을 발견했다. 젖어버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씨를 살리려고 애썼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손가락이 달구어지도록 쇳돌을 굴렸지만 불을 붙이지 못했다. 주검처럼 흐물거리는 무언가를 내내 입에 물다가 수면 위로 던져버렸다. 내팽개쳐진 주검은 불씨를 만나지 못하고 미약한 파동에 이끌려 유유히 떠내려갔다. 녀석들의 영혼은 하늘로 솟구치기도 하였다가 얽히고섥켜 제집으로 회귀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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