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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七) 물. 사리. 무지개마을

- 선인들로부터 구전되어온 순 우리말 지명 되찾기


청년이 사는 마을 지명은 ‘수락’으로 한자로 표기하면 水(물 수), 락(落)이다. 물이 떨어진다는 뜻인데 단순히 지리적·자연적 환경에 의미를 두는 듯하여 늘 부르던 이름이 귀향하고 나서는 어쩐지 낯설었다. 혹시 다른 지명은 없을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의문은 생각을 키워냈고 목소리로 이어져 세상 밖에 거론되었다. 가족의 뒤를 이어 귀향해온 집안 어른이 새로운 이장으로 선출되면서 목소리를 전했다. 이장님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까 주민 회의 자리를 마련해서 마을 지명 변경과 관련된 토의를 하자고 하셨다.     

 

예정한 시간에 맞춰 마을회관을 찾은 주민들로 실내는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어른들은 대부분 의아해하거나 변화를 달갑지 않게 여기며 볼멘소릴 했다. 행정 절차를 밟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텐데 괜찮겠냐며 걱정하는 할머니, 이러나저러나 수락이란 지명도 나쁘지 않다는 할아버지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자칫 험악한 분위기로 파장할 뻔한 회의를 이어준 건 청년회에 소속된 삼촌들이었다. 다른 마을 주민들도 무지기라는 옛 지명을 쓰는 사례가 많으니 이참에 마음먹고 시도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뜻을 고집하던 어른들도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압해도 주민들과 고령의 어른 세대는 옛 지명을 썼다. 청년은 ‘수락’과 *‘무지기’가 같은 지명으로 혼용되는 시점에 선인들에게서 구전(口傳)되어온 옛 이름을 되살리는 과제는 후손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일리가 있는 논리라며 저마다 노력해보자고 말씀하셨다. 갑작스럽게 건넛집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옳소~!”’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엉겁결에 주민 모두가 서로를 보며 박수를 따라치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부건강교실에 온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이장님이 웃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복이 온다는, 흔하지만 분위기를 바꿀 말씀을 하셨다. 긴장하던 청년도 따라 웃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4.11.13. 압해도. 수락마을에 뜬 쌍무지개



지명을 찾는 첫 작업은 문헌 자료에서 출발했다. 신안군의 역사와 기록을 관장하거나 연구하는 신안문화원과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전남도립도서관을 방문하여 자료를 찾았다. 1991년 압해면향토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압해면 향토사(壓海面鄕土史)」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수락은 ‘1961년 고시된 지명으로 *‘대벌’ 남쪽 갯가에 있는 마을이며 ‘무지기’, ‘수락촌(水落村)’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밖에도 *‘무지깃재’, *‘작은무지기’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2002년 신안문화원에서 발간한 ‘신안군지명지(新安君地名志)’14편 「압해면」에서도 같은 내용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문헌을 보다가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남한 정부가 수립된 후에 고시되었지만 혹여 일제강점기 일본식 한자를 차용한 지명이 여과 없이 이어진 건 아닐까 하는 부분이었다. 일본의 작명 사례를 보면 출생지의 공간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예로 ‘야마시타’(山下) 는 ‘산 아래’, ‘나카무라’(中村) 는 ‘마을 가운데’를 뜻한다. 대중이 익히 아는 충청도의 대전광역시는 ‘한밭’이라는 정감 있고 소박한 옛 지명 대신 대전(大田)이란 한자로 표기되어 불리고 있다. 기록을 찾아보니 조선 시대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서 최초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오해를 풀 수 있었지만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한자 문화권에 있고 한국은 지난 과거 식민지에 놓였던 아픔이 있기에 이런 오해에 따른 인식과 의문은 계속해서 발생할 듯했다. 지금이라도 고찰을 통한 고유지명 발굴과 복원에 힘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마을 어른들을 찾아뵈어 자문을 구했다. 손자뻘의 청년을 무척이나 반기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셔서 건의서를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 무지개마을은 골짜기가 많은 송공산 남쪽에 자리하였는데 비가 오면 골짜기를 타고 해안으로 흘러드는 민물이 바다와 만나 일교차가 큰 봄이나 가을, 소나기나 장마가 오는 여름에 자주 무지개를 보았다고 한다. 마을에서 바다 건너 목포나 영암, 해남에 이르는 해안선으로 곱게 색이 나타나면 한참 동안 보며 흐뭇해했다는 진솔한 감정도 곁들어 주셨다.    

  

한편 바다에서도 무지개와 관련된 고유 지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압해도 읍민과 더불어 인근 섬 지역의 어민들은 마을 연안의 갯벌을 ‘무지갯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산과 대지를 관찰했던 육지 사람들의 관념을 탈피하여 섬과 바다라는 자연환경을 바탕에 두는 바닷사람들의 사고가 반영된 시각과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역민의 시각과 생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인식과 합의를 바탕으로 하므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7.12.12. 압해도. 경로당 현판 제막식을 축하하던 날. 마을 지명 변경을 염원하며 표지석에 무지개마을을 새겼다. 



지명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지명 변경에 대해 질의를 하여 답을 얻었다. 매우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로워서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기약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지만 이장님과 아버지를 함께 모시고 그간 조사했던 자료를 보여드렸다. 감사하게도 두 분 모두 열성적으로 도움을 주셔서 지자체에 건의했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는 마을 주민들 모두 긍정적으로 호응해주셨다. 오랜 기다림 끝에 2020년 1월 무렵 마을 지명이 변경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전(口傳)되어온 순우리말은 문헌이나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말 그대로 옛 선인(先人)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전통문화유산이다. 그래서 고증하거나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전설이나 설화, 동요, 민요, 문학 등 사회 전반의 분야에서 구전(口傳), 구비(口碑)유산이 현세대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이는 가치 있는 보물이자 후대에 전승되어야 할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재’(고개), ‘골’(골짜기), ‘두렁’, ‘둠벙’(웅덩이), ‘갯가’ 등 어촌지역의 주민이 흔히 쓰는 순우리말이 많다. 나랏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방치되는 문제는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지만 새해가 기다려진다. 도야지한 마리 잡고 흑산도에서 홍어 구해와 마을 잔치를 벌여야 하는 건 아닌지 벌써 조바심이 난다. 늦었지만 지면을 빌어 마을 주민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무지기: 무지개를 뜻하는 사투리로 수락마을의 옛 고유지명. 

*대벌: 수락마을 옆 마을로 대천리의 중심이었다.

*무지깃재: 대벌과 무지기 사이에 있는 고개.

*작은무지기: 무지기 북쪽 골짜기에 있는 들. 무지기보다 작은 마을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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