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시절 떠올린 변리사의 이미지는 세련된 커리어우먼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전문직의 모습이 나를 슬쩍 기대케 했다.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강남 한복판의 오피스로 출근. 클라이언트와 원격으로 미팅을 마치고 점심은 가벼운 샐러드와 아메리카노. 그러나 우리 특허 사무소는 대학교의 연장선 같다. 맨날 하품하며 야근하는 대학원 느낌. 그래도 비위 맞출 교수님은 없으니 그건 좋은 듯.
상사는 나를 '변리사님'이라고 호칭하는 대신 '백고므야!'라고 이름을 불렀다. 나는 배운 대로 내 밑으로 들어온 후임에게도 똑같이 이름으로 불렀다. 호형호제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팀장님은 자기 뒷담화를 안주 삼아 놀라고 하셨고, 우리는 그보다 더 즐거운 팀장님 성대모사에 푹 빠져 시시덕거렸다.
야근을 하고 있으면 아홉 시쯤 메신저가 울렸다. [술이나 먹자] 우리는 못 이기는 척 상사의 부름에 불려 나갔다. 광어를 곁들인 소맥을 마시며 다음날이면 기억도 안 날 헛소리들을 지껄이고 깔깔댔다. 분위기에 금방 적응을 마친 우리는 야근을 하는 날이면 오늘은 안 부르시나 기대를 품는 지경까지 갔다. 물론 상사들은 서운치 않게 챙겨주었다.
이 와중에 열정적인 동기들은 스터디를 꾸렸다. 그들은 변리사의 전문성을 기르자며 눈을 반짝였고, 나는 스터디 끝나고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시지 않으려나 싶어 덜썩 들어갔다. "어머, 기계팀 수습 변리사들은 스터디도 한다면서요?" 다른 팀장님에게까지 소문이 퍼졌다. "아 그거? 별 건 아냐~ 애들끼리 그냥 미국 특허법 공부하는 거야~" 우리 팀장님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술은 씰룩거렸다.
어느 날 회사를 관두겠다고 말하며 소리 내 우는 나를 보면서, 내가 우리 사무소를 많이 좋아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사무소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나를 예쁘게만 봐주는 동료들 곁에서, 찬란한 시간을 보내왔음을 새삼 느꼈다. 내 사진첩에는 사무소에서의 일상만이 듬뿍 남아 있었다. 매 시간을 붙잡아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나 보다.
연수 때 '어느 특허사무소가 좋아요?'라고 물으면 선배들은 '동기 많은 곳이 최고다'라곤 했다. 한 귀로 듣고 흘린 조언이었는데도, 어쩌다 보니 정말 그런 곳에 들어오게 되었다. 힘든 적도 참 많았다. 그럼에도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곁의 사람들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