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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19. 2020

짊어질 수 없는 것은 내려놓으세요. 깔리기 전에.

-오늘의 질문

그녀와 인사한 직후 주위 사람들이 소곤소곤 건네 준 이야기는 ‘그녀의 남편’에 관한 것이었다. 일하는 곳에서 만났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취미나 특기 같은 것은 관심 없었다. 직장에서는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그녀'도 아니고 ‘그녀의 남편’ 이라니, 당연히 흥미는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신혼이 지나자마자(결혼 후 2년 혹은 3년째였다고 했다) 아팠다. 약을 복용하고 수술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코마 상태였다. 10년이 다되어 간다고 했다. 일이 바쁜 와중에 남편의 간호까지 겹쳐 그녀는 늘 지치고 힘들어 한다고 했다. 그곳에서 활력 넘치고 생기 있는 직원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설명을 백 퍼센트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런 일이 있구나 정도로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1년 넘게 일했지만 둘 다 농담을 건네거나 먼저 말을 붙이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어서, 그녀와 나는 일에 관해서만 단지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이다. 다정하지는 않지만 예의 바른 성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겨울로 들어가는 어느 싸늘한 오후, 복도를 돌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처음 듣는 격한 목소리여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걷다 가는 그녀의 코 앞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남편의 엄마 혹은 그의 동생이거나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인 듯했다.


“그건 나도 모르죠. 죽든지 말든지 아무렇게나 하세요.”


그리고 침묵.


한동안 조용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고 생각하고 걸음을 뗐다. 그리고 정확히, 인사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정면으로 그녀와 마주쳤다. 내 모습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가 황급히 주워 인사도 없이 스쳐 가 버렸다.




퇴근 준비를 할 때 그녀가 나타났다. 서랍 안 쪽에 감춰 둔, 다이어트고 뭐고 따질 수도 없을 만큼 스트레스 뻗쳤을 때 마시는 달달한 코코아를 타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시아버지는 치매였다. 중증으로 이행하는 단계라 시어머니와는 병원에 모시기로 합의를 했는데, 남편의 동생이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덧붙여 시아버지를 돌봐야 하니 언니가 휴직을 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병원에 모셨다가 악화되면 어쩔 거냐고 소리를 지르는데 화가 나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죽든지 말든지 아무렇게나 하라는 말은 좀 심했죠? 내가 왜 그랬을까요?


“남편도 없는데 왜 시댁에서 살았어요? 나와서 살지.”


“결혼해서부터 그냥 같이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10년이라면서요.”


“9년 3개월이에요.”




태어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이다. 멋진 부모를 만나고 좋은 형제자매를 만나는 것은 백 퍼센트 운이다. 운이 나쁘더라도 상당기간 함께 있어야 한다. 아동기, 청소년기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적응해야 한다. 실패할 확률도 상당하지만 말이다.


겨우 자기 한 몸 돌볼 수 있게 되어 안심할 즈음 같은 일이 벌어진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결혼해서 새로 생기는 가족 말이다. 원대한 포부가 있어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직장을 그만두는 꽤 많은 확률은 상사 혹은 동료에 치어서다. 일이 힘들어서 그만둔다는 경우도 있지만, 꼬치꼬치 캐고 들어가면 사람 때문에 못하겠다는 말을 에둘러한 것임을 알게 된다. 결혼은 말할 것도 없다.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생긴다. 식욕이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사는 일에 흥미도 떨어지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거 알아요? 비행기 타면 승무원들이 산소마스크 쓰는 법 알려주잖아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나부터 산소마스크 쓴 다음에 옆 사람 씌워주는 거예요. 반대로 하면 둘 다 죽어요.”


그녀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다 웃었다. 나는 그때 그녀가 웃는 것을 처음 보았다.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히긴 했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다 마신 컵을 씻어서 돌려주고 다른 말은 없이 방을 나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내가 불행해진다면, 나의 상식에서 벗어난 말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면 생각해야 한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을 제거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주위의 시선은 그다음이다. 나를 돌볼 사람은 나다. 내가 호흡할 수 있어야 누군가를 돌볼 수도, 공경할 수도, 키워낼 수도 있다. 내가 불행해진 다음에 칭찬받아서, 그거 어디다 쓸 텐가.


이후로 그녀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6개월 후  나는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 행복하시길.....


-오늘의 질문 : 직장에서 스트레스 해소법,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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