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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y 11. 2020

나이 먹는다고 연애도 중후해지지는 않는다.

- 오늘의 조언

내 나이 스물 한 둘쯤. 어학원 프리 토킹반에 출석도장을 찍던 때 일이다. 지각은 좀처럼 하지 않던 강사가 5분쯤 늦게 들어왔다. 삼십 대 초반의 중국계 미국인 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찡그린 얼굴로 이유를 설명했는데, 옆 자리 사십 대 초반의 여자 강사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동거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그럼 이만’이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했다. 


“지금 이 나이에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겠어?”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울고 있다고 했다. 프리 토킹반이었기 때문에 주제를 정해서 두 시간쯤 떠들어야 했는데, 덕분에 그 날의 주제는 ‘LOVE’가 되었다. 하아.


주제는 ‘사랑’이었으나, 이야기는 ‘늙은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가’로 흘러갔다. 그렇다. 이 십 대 학생들이 볼 때 삼십 대의 사랑이란 역사책 한 페이지 같고, 삼십 대 남자가 볼 때 사십 대의 사랑은 전설 속 일각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새로운 사랑이 생겨 구 여자 친구를 떠난 어떤 남자는 덜 된 영어문장으로 매우 모진 말을 들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변명해줄 거리가 오조 사억 삼천 가지는 되지만, 그 때야 뭐. 


그러니 최근 이런 식의 말을 듣게 되었다고 놀라거나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며칠 전 삼십 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슬슬 넘어가는 자들과 두서없이 떠들었다. 화구가 네 개인 가스레인지 불을 모두 켜고 각기 다른 음식을 조리하는 능숙한 주방장처럼 대개의 이야기가 ‘그건 아니지’라는 반론을 단 채 다음 주제로 이어졌다. ‘오, 이 조합, 떠들기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할 때쯤 ‘결혼’이라는 영역에 도착했고, 한순간에 의견이 모아졌다(아, 나는 빼고). 


“여자 친구가 운명의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 결혼 못하면 다시 연애는 힘들 것 같아요. 이 나이에 누군가와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아, 그건 못할 일이에요.”


맞아, 맞아. 좀 전까지 화구 밖으로 맹렬히 삐져나와 타오르던 불꽃들은 어디로 가고 모두 함께 합창하듯 중얼거렸다. 이 사람들아. 그런 일에 의견 일치 같은 것 되지 말라고, 세상에 반드시 의견 일치를 봐야 하는 것은 같이 먹을 라면 면발 익힘 정도뿐이라고! 모두 자네들처럼 생각했다면 ‘불륜’ 같은 것이 어디 발을 붙이겠어?


물론 내가 불륜을 옹호하거나 권장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 기나긴 연애사에서 가장 크고 상처 깊게 맞은 폭탄이 ‘양다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불륜에 관해서는 무관용에 가까운 입장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다’ 면, 다시 찾아온 사랑에 열중하는 것과 동일한 정성으로 지나간 사랑에 적합한 이별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모름지기 2막은 1막을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시작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저 친구들은 과연 현재의 연애 상대와 헤어지고 나면 다른 사람을 찾지 않을까? 에이, 설마. 확실히 확률은 줄어든다. 뭐니 뭐니 해도 주위에 싱글이 넘쳐나던 시기는 20대가 정점이다. 이후로는 하나둘씩 어디론가 사라진다. 좋아서 뛰어가는 사람도, 어쩌다 보니 끌려가는 사람도, 가자 마자 후회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관성적으로 움직여 간 근방에 머물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은 싱글의 총량은 줄어들고, 연애는 어려워진다. 어느 의미로는 저 친구들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확률’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이름이 뭐예요?’로 대변되는 가계도 파악을 시작으로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못 견디는가 하는 개인적인 취향까지 알아내야 하는 그 지난한 작업을 되풀이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뜻 동의해 줄 수가 없다. 연애란 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지름신이 내 계좌 사정을 봐 가며 내려오는 것이 아니듯, 사랑도 내 주변 상황을 봐주며 찾아오지 않는다. 


10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30은 이제 겨우 1/3이다. 해본 것보다 안 해본 일이 많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축구와 농구를 가르친다. 내가 구기종목을 좋아하는지,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도 싫어하는지는 그때쯤 알 수 있다. 하지만 ‘번지점프’는? ‘스카이 다이빙’은? ‘스키’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절대 하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어쩔 수 없이 뛰어내린 후 전혀 다른 풍경에 머리가 휙 돌아갈 수도 있다. 뛸 때의 쿵닥거리만 참을 수 있다면 세상 가장 황홀한 기분을 맞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다면, 그때는 과연 어쩔 텐가.


모든 동화책이 “그래서 그들은 결혼해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고 해서 모두의 삶이 그렇게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자세한 사정은 업계의 비밀이라 굳이 떠들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서른 넘어 결혼하고 나면 마음의 휘청거림 따위 없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줄 아는가 본데, 어림없는 소리다. 당신이 결혼을 했건, 나이가 열 살이건, 칠십 살이건 올 사랑은 온다. 그것도 정정당당하게 앞으로 치고 들어온다. 게다가 지금 연애하고 있는 자라면 나중에도 연애하고 있을 확률이 그 반대일 경우보다 높다. 



그제 밤 술자리에서 만난, 50이 다 돼가는 내 남자 사람 친구는 밤 11시 넘어서 연락이 되지 않는 여자 친구 때문에 술자리를 벗어났다 전화를 걸어 댔다 난리를 쳤다. 중년의 밤 11시는 꿀 잠 자기 딱 좋은 시간이라고 말해 줬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다가 결국 그녀를 찾아 떠나 버렸다. 같이 술을 마시던, 기혼의 50살이 넘은 선배가 하늘에서 잉어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그 친구가 그걸 신경 쓸 리가 없다. 연애 휴업 중인 내 입장에서도 친구의 상태는 처량해 보였는데도 말이다. 


“미친놈,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저 나이에 저럴 일이야?" 


선배는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지만, 내 경우는 언제든 입장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늙어도 사랑은 어렵다. 모두들 파이팅이다. ㅋㅋ


오늘의 조언 : 나이 먹었다고 사랑은 끝났고 그른 거 아닙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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