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살라메를 좋아해서 챙겨본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는 상류층 어머니가 나온다. 인맥을 고려해 아들이 사귈 여자를 골라 줄만큼 계산적인 사람이다. 참견과 관심에 지친 아들이 콜걸을 여자 친구인 척 파티에 데려온다.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지만 엄마만은 진실을 꿰뚫어 본다. 여자를 내쫓고 아들을 골방으로 끌고 가 말한다. 내가 결혼 전에 콜걸을 했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왜 그런 여자를 데려왔느냐고 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아무리 뚜렷한 소신과 주관을 가지고 그 일을 선택한 사람도 자신의 과거를 아이에게 알리는 것은 꺼려한다(영화 속 어머니도 사실은 쭉 숨기고 살았다. 아들이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존경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한다. 전화 한 통, 돈 얼마에 섹스하는 남자나 여자는 경멸받는다.
이유가 뭘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과 함께 살아간다. 당연히 타인과의 만남이 중요하다. 그런데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상대를 위해 스타일을 바꾸기도 하고 가진 것을 기꺼이 양보하기도 한다. 연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타인의 존경을 받고 싶어 한다. 이런 노력을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물론 돈도 필요하지만요). 그러니 돈만으로 그 모든 것을 퉁치려 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말하자면 연애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다들 알고, 원하지만 누구나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하다못해 용돈이라도 받는다면 기본적으로 연애는 불가능하다. ‘대학 가고 나서 연애하라’며 고등학생 자녀를 뜯어말리는 부모가 사용하는 쉬운 무기는 용돈을 끊는 것이다. 집을 나가지 않는 한 부모의 승리로 끝난다.
돈을 번다고 해도 모든 판단을 부모에게 맡기고 있다면 더 큰 문제다. 무엇을 먹고 어디로 여행을 갈 지도 부모에게 상의할 것인가? 울고 있는 상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위로를 줄 수 있는지 부모에게 물어봐야 하나? 부모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쩔 셈인가? 나는 상대를 엄청나게 사랑하지만, 부모가 반대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은 연애도 뭐도 아니다. 집안과 집안의 결합인 결혼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개인의 문제인 연애마저 부모의 반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부모와 사는 것이 낫다. 이런 의미에서 불만이 생길 때마다 회사로 연락하는 부모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건 정말 자식을 망치는 길이다. 자기 불만 정도는 자기가 해결하게 놔두자.
그러니까 연애란 남자건 여자건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만 가능한 일이다. 이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대부분 연애는 하던 사람이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삼십 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의 사랑도 찾아오지 않고, 누군가는 실연하고 곧바로 다른 사람을 만난다. 너무하다.
주위에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세히 바라보자. 외모가 매력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뭔가 그 사람밖에 못하는 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외모는 어쩔 수 없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타고난 것을 질투하려 들면 답이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외모가 특별하지 않아도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매력이 있을 것이다. 성격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일하는 능력, 말솜씨, 유머감각 뭐든 좋다. 이런 것들이 자신감을 만들고, 그 사람 주위를 에워싸는 분위기로 자리 잡는다. 어차피 연애란 외롭고 쓸쓸해서 하는 것이다. 나보다 더 쓸쓸한 얼굴로 외로움의 다크 포스를 뿜어내는 상대에게 마음을 열 사람은 없다. 잔인한 이야기 같지만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래, 나도 안다. 인생은 참으로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다행인 점은 모든 연애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멋진 사람을 만나도 달콤한 시간이 끝나는 시점은 찾아온다. 어느 순간이 되면 ‘밥을 먹는그 사람'이‘밥을 처먹는그 인간'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이런 인간을 그동안 좋아했단 말이야?’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러니 끝이 다가오기 전까지 전력을 다해 사랑할 일이다.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마음이 멀어진 상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 감정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데, 타인의 마음을 무슨 수로 돌릴 수 있겠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을 수는 있지만, 둘 중 누군가의 마음이 돌아섰다면 그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인생에 생긴 ‘아프고 슬픈 사건’ 정도로 납득하고 감수해야 한다.
내가 티모시 살라메를 사랑하게 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연인과 이별한 채 상심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어떤 삶을 살든 그건 네 마음이다.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연애는 쉽지 않다.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의 생각도 존중하면서 해내는 어려운 일이다. 이러니 연애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