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 수도원

19. 그리스 정교

by 지안

델포이 신전에 도착할 때까지 산길을 그렇게나 휘돌아 들어갔으니, 나올 때도 당연히 비슷한 경로를 거쳐야 했다. 몸은 이리저리 흔들렸고, 바깥의 엄청난 열기 때문에 사람으로 꽉 찬 미니밴은 찜통 비슷하게 되어갔다.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차가운 프라페를 사 절반 정도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내장까지 차 있던 열기가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휴게소에서도 보니까 프라페 드시던데, 괜찮으시겠어요? 그거 살 엄청 쪄요.”


얼음만 남은 컵을 든 가이드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말했다. 마르고 탄탄한 몸매의 가이드님이 보시기에 살집 좋은 내가 염려스러웠던가 보다. 나는 아크로폴리스에 동반했던 가이드가 추천해 준 이래 줄기차게 프라페를 마시던 중이었다. 시원하고 당 보충도 잘 된다. 최고다. 게다가 그리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프라페를 지금 먹지 않으면 언제 또 먹을 수 있겠나.


“여기 지인 중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다이어트를 급하게 한 사람이 있어요. 그때 식사와 간식 똑같이 먹고 프라페만 끊었는데도 엄청 빠지더라고요. 설탕도 넣으셨죠?”


네, 듬뿍 넣었습니다, 나는 우물거리며 가이드의 말에 반박했다.


“그래도 너무 덥잖아요. 시원한 커피가 필요해요.”


“네, 그럴 때는 이거 드세요. 프라도 에스프레소.”


가이드가 빈 잔을 짤랑짤랑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프라페는 살 많이 찐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기로 충만한 미니 벤에서 한참 더 시달린 후 칼람바카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 7시가 다 된 시간이다. 호텔은 시원했고 프런트는 한가했고, 우리들은 지쳐 있었다. 일행 중 가장 기운 넘치는 사람은 운전과 설명과 안내를 도맡았던 가이드님 같았다. 근처 음식점에 관한 소개를 귓등으로 들은 후 방을 찾아 들어갔다. 대충 짐을 던져 놓고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침대 위로 쓰러졌다.하지만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거운 몸을 추스려 호텔 밖으로 나왔다.

칼람바카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여름이었다! ㅋ


칼람바카는 메테오라의 관문이다. 눈만 돌리면 메테오라의 우뚝 솟은 바위들이 보였다. 좁은 도로를 따라 음식점과 숙박업소, 관광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커다란 배낭을 멘 관광객이 스쳐 지나가고 커다란 관광버스가 호텔 앞에 사람들을 내려 놓기도 했다. 신을 마주하기 위해 인간을 피해 일부러 인적 드문 곳을 찾은 수도사들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마을을 형성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COVID 19 심할 때 이 동네는 완전히 망했었어요. 관광객이 없으니까요. 지금은 상점이나 호텔들이 한 70퍼센트 정도는 열려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한창때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여기 정말 북적북적했거든요.”


체크인을 하면서 가이드가 들려줬던 말이 생각났다. 저녁 7시가 넘었지만 대낮과 별로 다르지 않다. 조금 시원해졌다는 점이 차이랄까. 노상에 설치된 테이블에는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여유는 부러웠지만, 앉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차를 탔기 때문인지 입맛이 없다. 지나다 발견한 케밥 가게에서 안주거리를 포장하고, 시원한 맥주를 사 호텔로 돌아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보니 그림 같은 노을이 바위를 둘러싸고 있다. 자세히 보면 바위 꼭대기에 인공물이 보인다. 저것이 수도원인가? 그 부속 건물인가? 내일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예수의 등장 이후 가톨릭이 출현한다.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유대교와 가톨릭 사이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유대교나 가톨릭이나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고 보는 입장은 동일하다. 두 종교는 오래되고 유명한 ‘아담과 하와’의 그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 쭉 인간이 원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란 ‘바벨탑’ 같은 걸 만들어 신에게 도전하는 몹쓸 것들이다. 이 죄는 너무 심각해서 인간은 하느님 곁으로 다가갈 수도,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여기서 유대교와 가톨릭이 갈라진다. 가톨릭은 신과 인간이 갈라진 지점을 예수가 나타나 메웠다고 본다. 적어도 예수를 거치면 신에게 다가갈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구원도 가능하다. 유대교는 턱도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렇게 두 종교는 갈라졌지만, 유일신을 믿는 입장 자체는 같다.


예수를 죽인 것은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가졌던 유대인들이었다(이 사건은 이후 유럽 ‘유대인 박해’의 원인이 된다. ‘유대인 박해’의 역사는 이토록 길고 지난하다). 가톨릭은 유대인의 나라에서 탄압을 받는다.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은 소아시아를 찍고, 그리스를 거쳐 유럽으로 퍼지거나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들어간다.


카톨릭의 전파. 위키 펌

로마는 다신교 국가였다. 그리스의 여러 신들은 로마로 건너와 또다시 신의 지위에 오른다. 올림포스 산은 영원하다. ‘아테나’ 여신은 로마로 와서 ‘미네르바’가 된다. ‘제우스’는 ‘유피테르’가 되고 ‘헤라’는 ‘유노’가 됐다. 전설은 살과 뼈가 붙어 풍성하게 변했다. 그러니 이런 많은 신들 옆에 ‘황제’가 숟가락 하나쯤 더 얹는다고 문제 될 게 뭐람. 황제는 사후 투표를 통해 판테온에 모셔져 많은 신 가운데 하나가 된다.


가톨릭은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으로 무의미했던 외곽에서 생겨나 제국 전체, 급기야 로마의 심장부까지 파고든 종교다. 로마가 모시는 많은 신 중 하나로 하느님을 섬겼다면 로마 입장에서는 괜찮았겠지만, 그렇다면 가톨릭이 아니다. 게다가 황제를 향해 예배를 보라니 뭔 소리야. 가톨릭은 로마의 신을 모시는 것을 거부한다. 이에 대해 로마는 ‘탄압’으로 응수한다. 이런 방패와 창의 싸움이 서기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가톨릭을 종교로 인정하는 그날까지 계속된다.




멀리 바위 위 수도원이 보이십니까?

가톨릭이 로마 도시들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제들의 대표자인 ‘주교’가 생겼다. 서서히 그 ‘주교’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된다.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로마 같은 큰 도시일수록 주교의 힘은 컸다. 종교든 경제든 일단 자체 힘을 갖기 시작하면 슬슬 정치 권력을 탐하게 된다. 정치란 그 사회가 갈 방향을 정하는 기본 힘이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정치권력의 게임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모든 가톨릭 교인들이 이런 움직임에 박수를 보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신에게 다가가려는 노력’과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떻게 도시에 살면서, 그것도 더러운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신께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인적이 드문 곳에 ‘수도원’을 짓고 기도에 전념했다. ‘수도승’이라는 말은 ‘홀로’ 혹은 ‘독신의’라는 뜻의 그리스어 ‘모나코스(Monacho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이집트와 시리아의 외진 산악 지대에 수도원을 지었다. 움막 같은 것을 짓고 홀로 신에게 예배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점점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수도원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많은 구성원들이 한 감독자의 지도하에 공동생활을 하며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생활이 하나의 ‘종교 방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이 흐름은 이후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서유럽으로 번져 나갔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이슬람의 지배를 받을 때에도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곳 메테오라도 그런 수도원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어제의 기세등등 했던 더위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뛰어간 것 같은 아침이다. 점퍼를 걸치고 나타난 가이드가 말했다.


지금 기온이 20도입니다. 6월에 20도라니 이상기후예요. 유럽 기후가 최근 많이 이상해졌어요.”


인적 드문 칼람바카 거리를 미니밴은 조용히 달렸다. 아직 상점들도 열리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길은 이내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차 두대가 마주 지나치기 힘든 좁은 길을 올라 거대한 바위 옆 공터에 차를 멈췄다.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저 위를 보세요. 문 같은 것이 보이죠? 저기는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겁니다. 아마 수도자일 거예요. 저런 식으로 혼자 기도하는 수도승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가이드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본 곳에는 동굴의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 인공물로 가려져 있었다. 옷처럼 보이기도 하고, 천으로 만든 가림막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이다. 그 혹은 그녀의 노력이 부디 결실을 맺기를.


“저 쪽에 깃발 같은 거 혹시 보이세요?”


바위 중턱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깃발 같은 것들이 모여 있다.


“여기 클라이밍의 성지이기도 해요. 가만히 보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이 보이실 겁니다. 저렇게 올라간 표시로 국기 같은 거 놔두기도 하고요. 언젠가 저기 매달려서 자는 사람도 봤어요.”


메테오라에서 칼람바카를 가려면 이쪽으로 가시죠~


바위의 경사는 대략 90도 혹은 그보다 조금 모자라거나 넘쳤다. 사람이 매달려 있기 편한 경사는 아니다. 고정된 줄이 늘어져 있는 곳도 보였다. 나중에 도착하는 클라이머를 위한 배려다. 확실히 메테오라는 이제 수도사보다는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 메테오라 수도원의 지도를 펼치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자, 이게 메테오라 수도원들이 번성했던 시기의 지도입니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10세기 수도자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다 13세기 초부터 수도원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세상은 온통 이슬람판입니다. 기도하기 힘들죠. 에이, 더러워서 난 속세를 떠나겠다, 수도자들이 이렇게 외지고 산과 절벽이 가득한 곳으로 모여든 겁니다.”


가이드가 태블릿을 넘겨 그림 한 장을 보여준다. 지상에 있는 수도사가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수도원과 연결된 도르래를 움직이는 삽화다. 수도사의 표정이 어쩐지 지쳐 보인다.


“도르래에 연결된 밧줄이나 그물로 필요한 물품을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사람이 도르래에 탈 수 없으면 위에서 내려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요. 가장 많았을 때 이곳에 24개 수도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수도원 4개와 수녀원 2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메테오른 수도원’과 ‘성스테파노스 수녀원’을 방문할 겁니다.”




메테오라는 수도원을 빼도 사방이 볼거리다

메테오라에 ‘수도원’만 볼거리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메테오라는 그 자체로 엄청난 풍경을 제공한다. 모퉁이를 돌면 사진 스폿이다. 수도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핸드폰이 뜨거워질 만큼 셔터를 눌렀다. 가이드는 노련하게 사진이 잘 나오는 지점을 안내해준다. 바위 위에서 점프를 하라는데, 그건 무리다. 하지만 남들은 잘도 뛴다.




차로 돌아오자 느긋하게 우리를 기다려 준 가이드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잠깐 이 장면을 보시고 갈까요? 007 For your eyes only라는 영화입니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보신 분?”


1981년에 개봉한 영화를 알 리가 없다. 5분 정도 재생된 장면 속에서, 오래전 007인 로저 무어 옹이 깎아지른 암벽을 오르고 있었다. 수도원에 뭔가 첨단 무기 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아닌가? 본드걸이 계신가?


밖은 어둡고, 직각의 암벽이 이어진다. 대단한 보호장비를 갖췄다면 007이 아니다. 그의 생명줄은 로프 하나뿐. 목적지 근처, 즉 수도원 마당에 다다른 007이 후들거리는 손을 올려 바닥을 짚는다. 겨우 손가락만 닿았을 뿐이다. 이제 몸을 올려야 한다.

넵. 007은 저기 보이는 수도원을 기어서 올라갑니다!


하지만 당연히 악당이 007을 기다리고 있다. 악당은 잔인하게 007의 손을 발로 짓밟는다.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007의 얼굴 클로즈업.


“이 영화를 찍은 곳이 메테오른 수도원입니다. 이 영화는 물론 허구지만, 그렇다고 마냥 거짓말은 또 아닙니다. 1,2차 세계 대전 때 이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보세요. 007이 올라가기도 힘든 곳이니 누가 감히 성공했겠습니까. 그리스 군은 이곳을 요새로 이용해서 전투를 펼쳤다고 합니다. 당연히 많이 부서졌겠죠? 지금 모습은 그 이후 복구된 겁니다. 자, 그럼 수도원으로 들어가 볼까요?”




한낮의 태양이 바위를 녹일 듯 내리쬐기 시작했다. 수도원 앞에는 기념품과 음료를 파는 매점과 트럭들이 늘어서 있다. “어디서 왔어?” 80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할머님이 자신의 작은 기념품 가게 앞에서 물었다. 코리아라고 말했더니 한국어로 된 메테오라 가이드북을 내민다. 글자체도 문장도 이상하지만 한국어로 되어 있긴 하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다. 수도원 밖에는 아직도 도르래가 붙어 있다.


“저거 지금도 사용해요. 물건 옮길 때 계단으로 들고 가는 것보다는 빠르고 쉽죠.”


우리의 시선을 쫓아 도르래를 확인한 가이드가 말해 주었다. 진입로는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져 있었다. 좁은 동굴 통로로 들어갈 때는 맞은편 사람이 지나오기를 기다려야 이쪽에서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다. 그리고 그래야 할 만큼 관광객이 많다.


이런 수도원에 도착하는 방법은????


영원한 제국일 것만 같던 로마도 4세기 말에 이르자 서쪽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민족의 침입이 심해진다. 로마의 행정기능은 점차 동쪽으로 이동한다. 한때는 '일진'으로 복도를 평정했었지만, '전학생'의 세력이 커지면서 점점 교실 안으로 움츠려 드는 것과 비슷하다.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후 로마는 콘스탄티노플을 정식 수도로 칭하고 동로마 제국시대를 연다. 이 동로마 제국은 천 년 정도 더 존속했다. 그렇다면 서로마의 땅은 비어 있었을까? 그랬을 리가. 이민족들은 이곳에 나라를 세운다. 이 땅의 새로운 주인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후계자임을 자처한다. 교황에게 '로마 황제'라는 인정을 받았고, 동로마 제국과 친선 관계를 맺고자 노력했다. 이제 동과 서는 각자 평행선을 걷기 시작한다. 갈등으로 점철된 역사가 시작된다.


1054년 서방과 동방의 교황이 서로를 파문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쌍방 파문의 원인은 ‘누룩’이었다. 신부님이 입에 넣어주는 ‘성찬’에 누룩이 들어가느냐, 아니어도 되는가로 싸움이 붙었다. 동방 교회는 전통대로 누룩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방 교회는 아니어도 된다고 주장했다. 먹는 입장에서는 ‘깨끗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대부분 큰 싸움은 이런 디테일 때문에 벌어진다. 쌓이고, 축적되고, 심화되어 딱 꼬집어 말하기도 뭐한 속상함들이 이런 작은 요소를 빌미로 터져 버리는 것이다. 그즈음 동방 교회는 자신들의 힘이 서방 교회에게 밀리고 있다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심정적으로는 완전히 갈라선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덕분에 지리적으로 오스만 영토에 가깝던 동방교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동네 주먹들'이 몰려오자 '일진''전학생'이 일단 싸움을 멈춘 것과 같다. 게다가 일진은 오가는 길에 계속 주먹들이 모여 있는 앞을 지나가야 한다. 쫄린다. 전학생과 잘 지내고 싶다. 아무리 교내 라이벌이지만 동네 주먹한테 당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에 들어가는 십자군, 들라크루아, 위키 펌 - 십자군은 죄악이었다


십자군 전쟁이 터진다. 외견상 십자군 전쟁(1095년 – 1291년)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고통받는 ‘예루살렘’을 회복하려는 ‘종교전쟁’이었지만, 현대 밝혀진 바로는 ‘근본도 없고 목표도 없이 오직 예수님의 얼굴에 먹칠한 전쟁’ 정도로 정의된다. 이슬람군을 몰아내겠다던 십자군은 1204년 느닷없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약탈한다. 주먹들을 물리치겠다고 분연히 뛰쳐나간 전학생이 갑자기 일진을 공격해 쓰러뜨린 것이다. 이게 뭐람. 이제 동, 서방 교회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은 사라졌다.




1453년 이슬람 침공으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동로마가 지도상에 사라지기 전에도 동, 서방 교회는 이렇게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동로마 멸망 후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지성인들이 대거 이슬람을 피해 탈출한다.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과 가까운 곳이라면, 당연히 이탈리아다. 이들의 지식과 식견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큰 힘을 준다.


이슬람 땅에 남은 동방정교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슬람은 원래 종교에 관용적이었다. 세금만 조금 더 내면 뭘 믿든 그다지 상관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시 이슬람교도였다(지금과는 매우 다르다). 교황을 중심으로 뭉친 서방 가톨릭과 달리 동방 가톨릭은 나라별로 단합한다. 그리스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러시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는 ‘술’때문이었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제 브런치 '집콕바텐더' 중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만 있다면, 스쿠르 드라이버'글을 참고해 주세요) 같은 경우, 세상이 어지러울 때 종교를 중심으로 뭉쳐 고통과 탄압의 시기를 견딘 역사가 단단하다.


두 수도원 안은 프레스코화로 가득했다. 성당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성경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설명을 들어야 한다. 다리가 저릿하도록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시끄러운 그림’ 일뿐이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성령이 가득하고 축복이 넘치는’ 그림이다.


평화롭게 지냅시다. 이 고양이들처럼.


“그리스 정교회는 결혼한 신부님이 있나요?”


수도원 관광을 마치고 나오며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톨릭과 다르게 결혼했어도 신부가 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일정 지위 이상 올라가려면 독신이어야 해요. 결혼한 신부는 승진에 한계가 있다고 해요.”


역시 뻣뻣해진 다리를 두드리며 가이드가 대답해 주었다.


“이혼해서 독신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결혼한 것이 문제라면 독신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한 질문에 가이드의 눈이 커졌다.


“이혼하면 파문일걸요?”


아, 그래, 그리스 정교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름길로 가려다 뭔가 크게 잘못할 뻔했다. 내 생각은 이렇게 짧고 부족하다.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오래 세워져 찜통이 되었을 미니밴으로 이동했다. 아테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keyword
이전 18화델포이 신전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