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 신전에 가다

18. 마라톤 49.195의 비밀

by 지안

아라호바는 작은 동네였다. 산 중턱에 동화 속 마을처럼 펼쳐져 있는 곳. 여행객을 빼고는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점과 동네 우체국이 엽서 속 퍼즐처럼 늘어서 있는 평화로운 동네다.


가이드를 따라 들어간 레스토랑의, 30대로 보이는 여주인은 우리에게 카운터에 서 있는 그녀의 어머니와 가게 입구에서 손자와 놀아주고 있는 자신의 할머니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3대가 운영하는 동네 레스토랑. 정겹고 따뜻하다.


혹시 추천 메뉴가 있냐는 물음에 가이드는 ‘시금치 샐러드’라고 말했다. 시금치? 그리스에 도착해서 시금치로 만든 파이를 먹고 맛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걸 샐러드로 먹는다고? 잎이 두껍고 줄기가 억세서 무침을 할 때도 꽤 오래 데쳐야 하는 그 시금치를 생으로?


“맛있어요. 전 이 동네 오면 꼭 먹어요.”


나는 마른 사람이 추천하는 음식은 신용하지 않지만(가이드가 마른 체형이었다, 시금치 파이의 기억이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가이드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시금치 샐러드라니....치즈 구이라니....맛있잖아!


잣과 다진 견과류, 토마토와 올리브로 만든 소스가 뿌려진 시금치 샐러드는 훌륭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금치보다 두께가 얇고, 줄기도 가늘다.


“시금치 씨를 뿌려서 어린 잎일 때 따서 만들면 이런 맛이 날까?”


함께 주문한 양고기와 샐러드를 우적거리며 내가 물었다.


헛소리 그만 하고, 그냥 여기서 많이 먹고 가.”


그리스에 온 이후로 나는 너무 조곤조곤 깨지고 있다. 슬프다.




레스토랑을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 중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소나기다. 엽서나 티셔츠 같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의 주인들은 물건을 들여놓을 생각도 없이 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산을 쓴 사람은 없다. 우리도 비를 맞으며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아라호바 안녕~


델포이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이리저리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식곤증이 쏟아지지만 몸이 받아 주질 못한다. 산을 몇 개인가 넘고 울창한 올리브 밭을 바라보다 델포이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며 가이드가 말했다.


“제우스가 세상의 끝에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렸다고 합니다. 두 마리 독수리는 세상을 가로질러 바로 이곳 델포이에 내려앉습니다.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것이죠. 제우스는 이곳을 세상의 배꼽, 옴파로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도 옴파로스를 보셨죠?”


그랬다. 아크로폴리스에도 ‘옴파로스’ 비석의 모조품이 뒹굴고 있다.


“그리스 각지에 옴파로스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이곳 델포이의 옴파로스입니다. 자, 들어가실까요?”


경사진 길을 천천히 올랐다. 가이드가 설명했던 ‘옴파로스’ 옆으로 작은 창고처럼 생긴 돌 집이 보였다.


아폴론 신전에 남은 것은 거대한 터와 기둥 뿐이다

“이곳은 그리스 각지에서 신전에 바친 현물이나 돈이 보관되던 자리입니다. 나라 별로 창고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처음 세운 것은 코린토스라고 하는데, 이후 아테네와 테베 같은 나라들도 줄줄이 창고를 짓습니다. 저쪽에 보이는 것이 아테네의 창고입니다. 마라톤 전투가 끝난 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페르시아와 전쟁이 벌어지기 전, 그리스는 스페인 동부 해안부터 아시아까지 바다를 이용한 교역로를 잘 개척했 놓았다. 척박한 땅과 거친 산을 제외하면 내놓을 것 없던 그리스는 해상 교역로를 통해 상업과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다. 지금의 이란 땅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뻗어 나와 세력을 넓히고 있던 페르시아와 마주치게 되는 일은 그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기원전 491년, 600척의 페르시아 함대가 그리스 본토에 상륙한다. ‘페르시아’라면 뭐니 뭐니 해도 ‘기병’이다. 고대의 말 탄 전사는 지금으로 보면 탱크 탄 군인과 같다. 1당100이다. 문제가 있다면 오랫동안 배를 탄 말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정도? 그렇지, 말도 멀미를 한다.


페르시아 군은 아테네 보병 정도는 한 칼에 도륙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독재를 일삼다 쫓겨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 히피아스가 페르시아 군의 길잡이였다. ‘너넨 다 죽었어’ 뭐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놀란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 ‘필리피데스’라고 알려진 이 전령은 직업적인 장거리 선수였다. 그는 이틀 만에 스파르타에 도착한다. 두 나라 사이의 거리는 250Km 정도 된다. 그렇다면 왜 아테네는 달리기 주자를 보냈을까? 말도 있었을 텐데……


우리나라의 국토 70%가 산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에 와보니 이곳도 만만치 않다. 보이는 곳이 전부 산이다. 게다가 작은 도시국가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봉화 같은 통신망이 깔려 있을 리도 없다. 말을 타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보다 사람이 달리는 것이 빨랐을 것이다.


그리스에는 산이 많다. 델포이 신전도 산 속에 있다.

전령이 도착했을 때 스파르타에서는 ‘카르네이아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스파르타는 파병을 결정하긴 하지만, ‘축제 끝나려면 6일 남았으니까, 그 후에 갈게.’라고 전령에게 말한다. 필리피데스는 다시 280Km 떨어진 마라톤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아테네에서 마라톤은 30Km 떨어져 있다.




아테네는 근처 나라에서 소규모 육군을 지원받고, 자국의 노예 중 싸울 수 있는 자들을 전부 해방시켜 전투병으로 만든 다음, 산을 넘어 마라톤으로 행군한다. 참주 히피아스에게 아버지를 잃은 밀티아데스가 이들을 이끌고 있었다. 한 번은 싸워야 할 적수가 만난 것이다.


마라톤에 도착해 페르시아 군의 상황을 본 아테네군은 기가 죽는다. 때마침 도착한 필리피데스도 스파르타의 말을 전한다.


“나중에 온다는 데요.”


아테네군의 의견은 싸우자는 쪽과 항복하자는 측으로 순식간에 갈린다. 이때 밀티아데스가 말한다.


“페르시아 군에게 굴복하면 아테네는 히피아스의 손에 넘어갈 텐데……. 괜찮으시겠소?”


아테네에 그래도 괜찮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참주정 하의 상태를 다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다. 마라톤 전투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투이기도 했지만, 독재자와 민중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분이 밀티아데스. 부모의 원수이자 나라의 배신자인 히피아스를 한번 잡아 볼까나?


마침내 페르시아 군과 아테네군이 맞붙는다. 예상외로 아테네군은 선전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페르시아 군은 바다로 빙 돌아 아테네 도시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가뜩이나 위기에 몰린 전투에서 아테네로 파견할 병력이 빠져나가자 전열은 급속도로 와해됐다. 마침내 아테네 군이 승리한다.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에서 “이 마라톤 전투에서 전사자의 수는 페르시아 쪽이 6400명, 아테네는 192명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대승이다.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페르시아 본진이 바다를 가르며 아테네로 가고 있다. 아테네에서 싸울 만한 사람은 전부 마라톤에 와 있다. 그러니 이곳의 군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아테네는 항복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


필리피데스는 다시 달린다. 성문을 잠그고 조금만 버티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30Km를 죽어라 달려간다. 그 뒤로 가족과 조국, 영토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아테네군이 움직였다.


이랬으니, 필리피데스가 아테네에 도착해 숨이 넘어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4박 5일 동안 560Km를 쉬지 않고 달린다면 내 숨도 장담할 수 없다. 560Km라면 부산에서 출발해 평양 정도까지 가는 거리다. 나는 이 거리를 걸어서라도 갈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이렇게 필리피데스는 달렸고(사망했다는 기록은 없다. 사실 기록상 필리피데스가 나오는 부분은 구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스파르타로 간 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저의 상상입니다~!) 뒤를 이어 아테네군이 도착한다. 바닷길로 돌아온 페르시아 군을 맞아 마라톤 전투의 대승한 여세를 몰아 승리한다. 그리고 이 승리를 기념해 델포이에 ‘아테네 창고’를 짓고 보물을 가득 채운다. 돈 쓰는 맛이 났을 것이다.




스파르타는 결국 축제 후 마라톤에 도착한다. 6400명의 페르시아 군이 사망한 것이 맞다면, 불과 며칠 후에 도착한 스파르타군도 그 대단한(ㅜ.ㅜ) 광경을 봤을 것이다. ‘다음 기회가 오면 그땐 잘 하자’고 다짐하게 된다. 그 기회는 10년 후에 찾아온다. 바로 영화 300의 무대가 됐던 ‘테르모필레 전투’다.


마라톤의 거리가 49.195Km로 정해진 것은 1908년 런던 올림픽이라고 한다. 성 안에서 편안히 마라톤을 보고 싶다는 왕실의 요청으로 마라톤의 출발점을 윈저 성 베란다로, 결승점을 화이트 시티 운동장으로 결정한 후 동선을 짜 보니 49.195Km가 된 것이다. 마라톤의 거리는 마라톤 전투와도 필리피데스와도 아무 상관없다.


델포이 신전 안 아폴론 신전 터


지금 ‘아테네의 창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때는 내가 서 있는 이 길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것이다. 보석과 돈을 실은 수레 같은 것도 줄을 지어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 보물들을 기꺼이 내놓고 알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폴론이 내렸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예언이다. 가이드가 위 쪽, 기둥이 늘어선 신전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돌계단 아래 줄이 죽 늘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무녀를 만나려고 몇 날 며칠을 줄을 서는 거죠. 그렇게 서 있는데, 저기 신전 쪽에서 갑자기 신관 하나가 튀어나와 누군가를 찾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 서 있는 분 중에 일산에서 오신 김 땡땡 씨 계십니까?’ 이렇게요. 그럼 그 사람이 앞으로 나가겠죠? 신관은 신녀가 찾고 있다며 그 사람을 저기 신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진짜 신녀가 그 사람을 찾은 것인지 어떤지 알 도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신관을 매수해서 새치기를 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어요.”


한숨이 나오지만 사실이다. 돈이면 어지간한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건 기원전에도 알려진 사실이었나 보다. 다행인 건 지금도 반드시 필요한 어떤 일들은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누군가의 진심 얻는 것, 제대로 된 사랑, 이런 것은 아직은 돈으로는 불가능하다. AI와 4차 산업혁명이 지나가고 나면, 그마저 돈으로 해결이 될까?




“처음부터 예언의 능력은 특별히 직관력이 뛰어난 여자에게 있다고 해서 신녀는 모두 여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여자들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나이가 좀 있는 분들로 바뀝니다. 최소한 50세 이상인 세 명의 신녀 혹은 무녀가 환각 상태에서 아폴론의 뜻을 물었다고 합니다. 삼발이 의자에 앉은 신녀는 – 좀 있다 박물관에 가면 그 의자를 볼 수 있습니다- 신전 아래 구멍에서 나오는 특이한 가스 같은 것을 맡고 환각 속에서 말을 하고 옆에서 그걸 받아 적는 겁니다. 해석은 해주지 않아요. 그건 알아서 하는 겁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각자 해석하는 거죠.”


그러니까 테세우스의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주머니 풀지 마’ 같은 신탁을 얻은 것은 상당히 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신탁을 잘못 이해해 나라를 잃은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리디아인과 다른 여러 국민의 왕이신 크로이소스는 이곳 신전의 신탁을 세계에서 유일한 참다운 신탁으로 믿고 여러 봉납품을 바쳤습니다. 지금 여기서 과연 페르시아에 출병해도 좋을지의 여부를 여쭈는 바입니다.”

신탁은 모두 같은 대답을 하였다. 즉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로 출병하면 대제국을 멸망시키게 될 것이며.......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델포이에 보답으로 공물을 듬뿍 안겨준 후 신나게 페르시아로 출병한다. 하지만 델포이 신탁이 말한 ‘대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리디아였다. 델포이 신탁을 잘못 해석한, 혹은 자의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크로이소스 왕은 나라를 고스란히 페르시아에 바친 것이다.




신전으로 향하는 이 길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겠지.


언덕을 조금 더 오르자 드디어 아폴론 신전이 나왔다. 6개의 기둥만 남은 지금의 모습에서 ‘신녀들의 신탁’이나 ‘이상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의자’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천천히 그곳을 지나 델포이 경기장까지 훑어본 후 길을 내려왔다.


남아있는 유적만으로 이곳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늘어서 있었을 사람들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간절한 질문과 염원을 가슴에 담은 순례객들이 이곳에 도착했으리라. 가뜩이나 졸아든 마음으로 하염없이 긴 줄의 행렬을 따라 이동했겠지. 이들에게 먹을 것을 팔거나 눈요깃감을 권하는 노점상도 극성을 떨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신탁의 결과를 해석할 수 없어, 어떤 이는 그 해석을 믿을 수가 없어 저 델포이 극장 어느 계단에 망연자실 앉아 있었을 것이다. 듣고 싶은 대답을 듣고 기쁨에 겨워 펄쩍거리며 경사진 길을 뛰어내려 가는 사람도 있었겠지.


번쩍이는 장신구와 조각품을 싣고 오는 행렬이 큰 소리로 길을 헤치고, 그 소리에 놀라 줄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흐트러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의 삶은 지금의 나처럼 바쁘고, 정신없고, 숨 가쁘게 흘러갔을 것이다.




나무가 늘어선 길을 걸어 델포이 박물관에 도착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조각상이 늘어 서 있었고, 관람객도 많았다. 거대한 두 남자의 입상 앞에서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클레오비스와 비톤 상


“이 조각상 느낌이 어떠신가요? 뭔가 좀 투박하고 부자연스럽죠? 이집트 피라미드 속 그림과 비슷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약간 옆으로 틀었다고 상상하면 그래 보이죠? 뒤로 돌아가 볼까요? 다리도 영 어색하지 않습니까? 초기 형태로 ‘아르카익 형식’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7 -6 세기를 지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 조각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조각상을 한 바퀴 돌며 ‘아이고오, 엉덩이 봐라’, ‘엉덩이가 이래이래 생겼다’ 라던가 ‘다리 근육 봐’ 같은 실없는 농담이 오갔다.


“이 조각상의 이름은 ‘클레오비스와 비톤’입니다. 클레오비스와 비톤은 아르고스 태생의 형제였는데, 체력도 좋고 능력도 출중했다고 해요. 어느 날 아르고스에서 헤라 여신의 제례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곳에 가고 싶어 합니다. 이제 늙고 기운이 없어진 어머니를 우마차로 모시고 싶었지만, 마침 소가 밭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걸 끌고 와서 어머니를 모시면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은 수레에 어머니를 태우고 번갈아 가며 10Km를 달려 제시간에 신전까지 도착합니다. 어머니가 마음이 어땠겠어요? 신나죠? 자랑하고 싶죠?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들을 자랑합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신에게도 자랑을 하죠.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내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아들들에게 내려 달라고 빕니다. 헤라 여신은 생각하죠.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물이 뭘까요? 신의 곁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헤라는 어머니의 기원을 들어줘서 두 아들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갑니다. 즉 다음날 깨어나지 못했어요. 죽은 겁니다.”


‘아, 어떻게 해’ 이야기에 집중하던 일행이 조금 큰 소리로 중얼거렸을 때, 검은색 단발머리를 한 흰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여자가 화난 표정으로 다가왔다. 가슴에는 직원임을 알리는 표식이 달려 있었다.




눈이 동그래진 가이드가 그녀의 말에 뭐라 대답하더니 손사래를 쳤다. 두 사람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조각상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했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전시장 구석에 달린 카메라를 손가락질하더니 관람실 밖으로 사라졌다.


당황한 일행들과 함께 몇 걸음 떨어져 쫓아가 보니 가이드는 프런트 직원 둘과 ‘매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목소리가 자못 컸다. 단발머리 여자는 계속 가이드와 우리 일행을 노려봤지만, 옆에 서 있던 직원이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아까 우리가 조각상 주위를 돌 때 엉덩이 부분을 만졌다고 나가라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실 때 저도 봤지만, 만지는 시늉만 했지 직접 터치는 안 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CCTV 돌려보자고 했더니 알겠다고 들어가라고 하는 겁니다.”


관람실을 이동할 때마다 단발머리 직원이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쫓아왔다.


스핑크스 상

“이해하세요. 이 사람들도 자기들 유물을 사랑해서 이러는 겁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가이드의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아니, 우리는 가이드님께 죄송해서 그렇죠. 우리야 한번 보고 나면 끝인데, 가이드님은 이 박물관 계속 오셔야 되잖아요. 직원들이랑 사이 나빠지면 죄송해서 그렇죠. 진짜로 나는 안 만졌어요.”


‘엉덩이가 이래 이래 생겼다’라며 손짓을 했던 일행이 풀 죽은 소리로 말했다. 가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싸우면서 친해진다잖아요. 괜찮습니다. 다음번에 와서 아는 척하면 오히려 더 잘 받아줍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죠, 뭐.”


우리는 그렇게 박물관 직원의 ‘특급 서비스’를 받으며 관람을 마쳤다.




‘클레오비스와 바톤’에 대한 뒷 이야기도 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큰 기여를 한 솔론이 법을 제정한 후 10년 간의 장기 휴가 중에 있던 일이다.


세계 유람 중 솔론은 리디아에 도착한다. 크로이소스 왕이 솔론을 왕궁으로 초대한다. 군주 대 군주로서 자랑도 하고 싶고 좋은 이야기도 듣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 만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크로이소스는 내심 솔론의 입에서 ‘당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솔론의 대답은 이랬다.


“왕이시여, 아테네의 텔로스가 그런 인물입니다.”


이유를 묻자 솔론은 ‘번영한 나라에서 태어나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을 두었고, 나라를 위해 전사하여 명예를 얻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이 상했지만, 크로이소스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냐고. 이번엔 자신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기다렸지만, 솔론의 대답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라고 말한다.


타인의 행복이란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난 다음에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그 따위 서민만도 못한 것이냐고 화를 낸다. 솔론이 대답한다. 인간의 생애는 모두 우연일 뿐이라고. 돈과 힘이 많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재산과 권력이 적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개개인이 완전히 자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없는 법인데, 될 수 있는 대로 부족한 것이 적은 상태로 지낼 수가 있고, 게다가 보람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왕이시여,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마땅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헤로도토스 [역사] 중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크로이소스는 솔론을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델포이의 신탁을 잘못 해석해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마침내 페르시아 왕 키루스에게 사로잡혀 장작불 위에서 타 죽게 되었을 때 불현듯 솔론의 말을 떠올린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크로이소스는 깨달음을 얻는다 솔론의 이름을 세 번이나 목놓아 부른다.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뭔가 소리를 지르자 키루스 왕은 신하를 시켜 ‘솔론’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라고 한다.


키루스는 통역으로부터 크로이소스의 말을 전해 듣고 마음이 변했다. 자기도 같은 인간이면서 한때는 자기 못지않게 부귀영화를 누린 또 한 사람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려 한다는것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응보를 두려워하고 인간 세상의 무상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는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꺼서, 크로이소스와 아이들을 내려오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타오른 불길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 중


모든 일은 끝이 나야 판단할 수 있다. 오늘의 해프닝이 가이드님의 사업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길. 인간의 삶이란 그저 새옹지마일 뿐이니까. 가이드는 괜찮다고 했지만, 우리 모두는 약간 풀이 죽은 채 칼람바카로 가는 미니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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