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4년 시리아 다마스쿠스

연극 [키스]

by 지안

4.1 연극 [키스]


무대는 아랍 풍으로 장식된 밝고 깔끔한 거실이다. 넓은 소파와 서너 개의 전등, 양주가 올려진 테이블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속이 비치는 실내복을 입은 하딜이 혼자 티브이를 시청하며 깔깔거린다. 자유롭고 편안하고 화려한 상류층 가정의 표본처럼 보인다. 무대 위 전광판에는 “2014년 다마스쿠스”라고 적힌 글씨가 지나간다.


‘2014년 다마스쿠스에 저런 집이 있었다고?’ 관객 중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괜찮다. 다마스쿠스는 우리에게 멀고 낯선 곳이다. 극장에 있던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과 배우를 포함한 연출진을 다 합한 사람들 중 다마스쿠스에 가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0명’이 아니었을까?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이며, 우리나라는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당연히 대사관이나 공관도 없다. 다마스쿠스를 사적 목적으로 방문한 대한민국 국적의 누군가가 있다면, 절차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다. 시리아는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매우 먼 나라다.




키스 인스타.jpg 연극[키스] 서울시극단 인스타 갈무리


어쨌든 2014년 다마스쿠스에 있는 어느 호화로운 거실의 하딜에게 돌아가자. 그녀는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인인 아메드, 그들의 친구인 유세프와 바나 커플이 올 것이다. 예정보다 훨씬 이르게 유세프가 도착한다. 하딜과 유세프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어쩌다 하게 된 키스. 당사자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연애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 이것이 1막이다.


이 연극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극의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마치 영화 <식스 센스>를 보고 나오며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라고 소리 지르는 것만큼 치명적이다. 연극의 구성 자체가 반전이다. 내용이 놀랍다기보다 그것을 풀어가는 형식이 대단했다. 나도 모르게 양쪽 엄지 손가락이 한꺼번에 펴졌다. 1막을 본 후의 감상은 ‘당황’이다. 2막은 ‘그러면 그렇지’로 시작한다. 3막은 충격 그 자체다. 더 입을 뗄 수 없는 내 입장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칠레의 극작가 기예르모 칼레론(Guillermo Calderon)이 쓴 이 작품은 독일 무대에서 처음 선 보였다. 독일은 시리아 전쟁에 정치적으로 얽힌 부분이 적다(‘없다’라고 쓰려다 자세한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하므로 이렇게 썼다). 객관적으로 시리아의 상황을 바라보기에 적합한 환경일 수 있다.


하지만 시리아 출신이 아닌 칠레의 작가가 쓴 이야기라니 당황스럽다. 하지만 정치적인 고난과 핍박의 세월을 오랫동안 겪은 칠레인에게 시리아의 현실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어쩌면 외부인의 시선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인 서술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갈 수도 없는 나라의 일이라 이렇게 짐작할 뿐이다.


판타지나 SF가 아니라면 연극은 현실에 기반을 둔다. 4명의 친구가 모인 2014년 다마스쿠스의 상황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2010년 12월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나라 튀니지에서 무함마드 부아지지라는 청년이 분신한다. 부패한 경찰의 노점상 단속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이 죽음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진다. 2011년 1월까지 이어진 시위로 당시 튀니지를 24년 동안 통치하고 있던 제인 벤 알리 대통령이 사퇴한다. 이른바 튀니지 혁명(다른 말로 재스민 혁명)이다.


혁명의 여파는 인근 지역에 영향을 준다. SNS등을 타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곳곳에서 시위의 불길이 타오른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예멘, 리비아 등에서 장기 독재 정권들이 연달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계는 이 일련의 흐름을 ‘아랍의 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혁명의 바람은 시리아까지 영향을 준다. 2011년 1월 시리아 북동부 하사카라는 곳에서 하산 알리 아클레라는 사람이 분신을 한다.


하지만 당시 시리아를 철권통치 중이던 사람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었다. 얼마나 강력한 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분노의 날’ 사건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하산 알리아클레의 사망에 분노한 사람들이 (심지어) 야당의 주도 하에 2월 4일과 5일을 ‘분노의 날’로 지정하고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기획한다.


전 세계가 주목한 분노의 날 당일, 집결지에는 보안요원과 기자들만 서성였다! 시리아에서는 “개도 국경을 넘어가야만 짖는다.”라는 말이 회자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6일, 시리아 남부 다라라는 도시에서 몇몇 청소년이 담벼락에 낙서를 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상황은 달라졌다. ‘의사선생, 당신 차례가 왔어(ijaka al-darw ya duktur)’라는 의사 출신의 대통령 바샤르 대통령을 비꼬는 장난 같은 문구였다.


경찰은 이 청소년들을 체포해 고문한다. 이들의 부모와 인근 주민들이 청소년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이 시위는 곧 정권의 부패를 규탄하고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바뀐다. 3월 18일 시위대와 정부군 간의 첫 충돌이 발생한 이후 한동안은 정부군이 시위대를 일방적으로 유혈 진압했다.


튀니지에서 불기 시작한 아랍의 봄바람이 시리아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곧 이상한 폭풍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반정부군이 결성되고 이들이 힘을 키우면서 시리아는 급격히 내전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2012년 8월까지 내전으로 사망한 희생자 수만 2만 명에 이르고, 튀르키예,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등인접국으로 탈출한 난민의 수가 12만을 넘었다. 터키 해변에서 발견되어 전 세계를 반성하게 만든 ‘에이란 쿠르디’의 죽음도 이 연극의 배경이 된 시점에서 3년 후에 벌어진 일이다. 2022년까지 시리아 전체 인구 2000만 명 중 1300만 명이 구호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였고 600만 명이 해외에서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시리아의 내전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하딜과 아메드, 유세프와 바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연극은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어떤 분노보다 강하다. 이 연극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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