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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3. 2023

내 삶을 채우는 방식

부자의 새로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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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서의 불편함



늘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통학버스에 몸을 싣고 등교해 밤 11시까지 야간자율 학습을 해야 했던 고등학교 라떼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건 3년 동안 스터디 플래너 맨 뒷장에 차곡차곡 적어뒀던 버킷리스트 덕분이었다. 그리고 20대 초반 탐닉했던 자기 계발서는 닳아 해진 종이 위의 글자들을 경험으로 현실화하는 데 있어 내 안의 작은 불씨를 활활 지펴준 도구였다. 덕분에 지금도 아쉽지 않은 다양한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다.

취업 후에는 주로 고전소설과 현대 문학소설, 업무 관련 서적, 에세이에 손이 가면서 자기 계발서를 접할 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경제 공부를 목적으로 다시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각종 매체와 젊은 시기에 부를 이룬 사람들이 추천하는 경제도서들을 도장 깨기를 하는 중이랄까.

그런데 무심코 ‘미래의 결과를 위해 현재의 역경을 이겨내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라.’ ‘평범은 현대판 노예다.’라는 문구들을 읽으며 ‘이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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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차선으로 가는 나다운 선택


내가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은 ‘시간’에 관한 관점이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책들의 공통점은 ‘4시간만 일하는 삶을 위해’ 현재 투여하고 있는 노동력을 시스템화하는데 주력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4-5년을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이 필연적이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기꺼이 내줘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삶을 채우는 시간이라는 자원을 이런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이르렀다. 지금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 부자가 된다면 나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가? 결국 우리가 부자가 되는 목표의 종착점은 ‘행복’이 아닌가?


p.119 인생은 유한하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사람들은 상당 부분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이런 것들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하지만 여기서 기대만큼의 행복결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수십 년 연구의 결론이고, 이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적응’이라는 녀석이 지목되었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최근 10년 차인 커리어의 중간점검과 방향설정을 위해 직업 관련 셀프 문항지를 채워가고 있다. 문항지에는 “가치관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할 때 기준점이 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내 삶의 동력이 되는 체크해 보는 파트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핵심 가치는 ‘자유, 성취감, 재미, 통찰, 안정감’으로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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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기서 부자로 살기


p.186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첫째,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위 책의 저자는 가치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은 다르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가치를 둔 것을 토대로 가치관에 따라 나다운 선택을 하면 곧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주변인들과의 비교와 여러 저자들의 주장에 혼란을 겪고 있던 내게 한 친구는 ‘인생 개 X 마이웨이로 사는 게 진리야’라고 짧고 굵은 명언을 던졌다.) 그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고 내 기준대로 선택하고 책임지면 되는 거다. 심플하게. 이렇게 결론 내고 공표하기 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p.114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돌이켜보니 지난 한 주 나는 부자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동안 배우고 싶던 베이킹 수업을 시작했고, 한 예능에서 보여주는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며 지난 경험의 토대로 성당 안에서 느꼈던 압도감의 감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경험을 누릴 수 있었던 과거와 현재의 경제적 상황은 선택의 자유와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넘치게 만들고 받은 스콘을 우리 반 학생들과 친구들에게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직접 내 손으로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가시적), 선생으로서 기복이 있던 녀석이 목표가 생긴 후 보이는 변화에 반가웠고 그 아이의 여정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5년째 가르치고 있는 중학생 녀석이 고등 모의고사에서 목표 등급을 달성한 것(비가시적)은 성취감을 주었다.

밑미 리추얼을 하며 나의 통찰을 글로 구현해 낸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메이트분들의 댓글과 응원 덕분에 또 다른 종류의 성취감을 느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부자가 되는 과정이 의미 없다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저자들이 몸소 실천하고 경험을 통해 이룬 업적에 대해 존경스럽고,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시대에 배울 점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선택지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은 오직 자신만의 세계이기에 우리는 광활한 우주에서 ‘나’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이 기준으로 부자의 정의를 다시 내리니 이제 더 이상 수십억 자산가들의 삶이 부럽지 않다. 나에게 시간은 그들만큼이나 절대적으로 귀한 것이기에 귀하게, 나답게 쓰기로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하게, 하지만 적당히 힘을 빼기도 하면서 가치 있고 행복하게 나의 하루를 채우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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