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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pea Jul 31. 2020

6. 이직과 신뢰자본

미국은 이직이 굉장히 활발한 편이다. 링크드인에서 프로필들을 둘러보다 보면 1년 반에서 2년이면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더 좋은 포지션으로 옮기는 경우도 꽤 많다. 나 역시 리쿠르터들로부터 ' 이런 포지션이 있는데 한번 지원해볼래?'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한동안 나의 대답은 같았다. 


"고맙지만 나는 현재 회사와 포지션에 만족해."


남들은 1-2년이면 더 높은 연봉과 직급으로 이직을 잘만 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나는 2년이 넘어가는데도 적극적으로 이직을 알아보지 않는 이유가 사실 있다. 바로 그동안 회사 내에서 쌓은 신뢰자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한 사람이 업무적으로 신뢰를 받기까지는 최소 6개월이 필요하다. 이 기간은 배우는 기간, 업무에 익숙해지는 기간, 서로를 파악하는 기간 등 탐색기간을 지나 본격적으로 업무적 협력을 하나씩 해보며 서로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기간이다.  나 역시 입사 6개월이 지나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업무적 파트너로 온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신뢰자본을 쌓고 나면 일하기가 100배는 훨씬 수월해진다. 서로의 스타일을 파악했기에 시행착오가 줄어든다. 어떤 질문에도 즉각 답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며 협력을 요청하기도 수월하고 또 타 프로젝트에 협력을 요청받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회사 내부의 이해 관계자들의 개인적 특성뿐 아니라 업무적 특성 및 그들의 전문성을 파악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기에, 이 일은 A에게 저 이슈는 B에게 라는 연결고리가 생기며 업무시간이 단축이 되고 또 그동안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업무 처리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나날이 높아진다. 


많은 경우 바로 이 시점에서 이직을 생각한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겼을 때 더 챌린지 한 업무와 포지션을 원하는데 내부에서 충족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외부의 기회들을 탐색하게 된다. 나 역시 내 업무가 쉬워 보이던 이러한 시기가 있었다. 사실 나는 안주하기보다는 오히려 변화를 추구하고, 계속 챌린지 한 업무와 프로젝트가 주어져야만 동기부여가 되는 성향이다. 그렇기에 그런 내가 이직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제 일이 익숙해졌으니 편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닌 이 신뢰자본을 이용해서 좀 더 챌린지 하면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회사 내에서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신뢰를 쌓은 관계에서 얻는 100%의 서포트는 다른 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약 지금 이직을 한다면, 연봉과 타이틀은 지금보다 높아질지언정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업을 배워야 하고, 시스템을 배워야 하고, 사람들을 알아가야 하고, 업무를 익혀야 하고 최소 6개월을 그렇게 나는 다시 새로운 업무에 익숙해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지금 수준의 신뢰와 서포트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상사와 업무 스타일이 안 맞을 수도, 조직 문화가 안 맞을 수도 있고, 또 막상 해 보니 정작 업무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이직을 생각해도 되는 연차임에도 아직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커리어 상 한번 올까 말까한 좋은 기회의 경우는 예외이다). 업무에 관한 제반 지식, 문제 해결 능력, 응용 능력, 슈퍼바이저를 포함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 및 서포트를 이끌어 내는 능력 등 힘들게 쌓아온 이런 자본들을 버리고 바로 이직을 하기엔 아깝다. 내가 이 곳에서 나의 자본들을 이용해서 어떤 프로젝트를 리드하여 실행해볼 수 있을지를 탐색해보고 도전해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직을 생각해야 하는 때는 바로 그 이후이다. 그간 쌓은 지식, 경험, 신뢰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하여 결과를 공유했으나 별다른 관심도 인정도 피드백도 받지 못하는 경우. 이런 경우는 곧 당신이 해야 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을 회사도 리더십도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는 간접 선언과도 같으니 그때에는 적극적으로 기회를 탐색하여 내가 좀 더 창의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이직을 유예하고 투자한 시간이 버린 시간은 아니다. 작든 크든 한 프로젝트를 리드하여 실행한 경험은 하나의 이력으로 남아 더 좋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뒷받침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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