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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pea Sep 27. 2020

8. 대체 불가능한 직원은 과연 존재할까?

대체 불가능한 직원은 없다고 한다. 나 없으면 또는 저 사람이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 것 같아도 결국은 다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절반은 동의하고 절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회사는 중요한 직원이 나가더라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이다. 업무 공백은 결국 메워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조직이라는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이유이다. 직원은 '나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기업은 근본적으로 이익을 '지속 가능'하게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회사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그렇게 계속 존재되기 위해서는 ceo의 공백으로도 타격받지 않는 시스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회사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직원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다. 하지만 아래 공유하고 싶은 한 가지 예가 있다. 


회사에서 Incorta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Business Intelligence, 일명 BI)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로 하면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과 일할 기회가 많아졌다. 방대한 데이터를 엑셀만을 이용하여 분석하고 리포팅하는 것이 좀 아쉽던 찰나에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할 기회가 생겨 데이터와 시스템이 연결되자마자 대시보드(Dashboard)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시보드란 간단히 말하면 기존에는 엑셀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여 몇 시간을 들여 분석하거나 차트, 표를 업데이트해야 하는 일을 분석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주요 지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Tableau (타블로)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데 우리는 2013년에 설립된 회사의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되었다. 


출처: https://www.incorta.com/blueprints/incorta-for-netsuite


프로젝트는 2020년 5월에 시작했고 2020년 7월에 끝났으니 두 달 정도가 걸렸다. 두 달이라고 하면 길어 보이지만 회사에서 프로젝트의 론칭과 완료 사이의 시간이라고 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초창기여서 당시에 이 부분을 서포트하는 담당팀의 인력은 D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D는 꽤 전문가여서 내가 대시보드를 만들면서 당면한 문제들을 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최소 1-2번씩 주기적으로 짧은 회의를 하면서 대시보드를 완성해 나가는 전 과정을 함께했다. 초창기 시스템 론칭 기간에 백엔드(Backend) 쪽 셋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볼 때 내가 대시보드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그의 공이 컸다는 점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로젝트가 일단 끝나고, 몇 주 후에 몇 가지 업그레이드를 할 부분이 생겨 D와 그 팀의 직원 K에게 연락을 했다. K는 D가 컨트렉터였고 다른 업무로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나는 아쉬움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안도는 내가 D가 있던 그 짧은 기간에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마쳤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였다. 만약 그가 그만둔 후에 내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면 나는 아직도 그 프로젝트를 완성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쉬움은 같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케미 좋은 직원 한 명이 회사에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다. K는 새로 뽑힌 지 얼마 안 된 직원이고, 새로운 담당자가 있지만 현재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볼 때, 일이 D가 있을 때와 같이 민첩하고 빠르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린스타트업 (Lean Startup)이라는 책이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몇 년 전에 크게 유명했던 적이 있다. 처음부터 심혈을 기울이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완성된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또는 가장 필요한 기능이나 서비스만을 탑재한 제품을 우선 시장에 내어놓고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완성시켜 나가는 방법을 의미한다. 제한된 자원이라는 한계를 가진 스타트업에서 꽤 각광을 받았던 전략론이다. 애자일(Agile)도 비슷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또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일일이 승인과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닌, 소규모의 팀이 빠르게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내가 했던 프로젝트도 애자일(Agile) 방식에 가깝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큰 팀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며 일일이 과정마다 승인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필요에 의해 시작했고 그 일을 제일 잘 아는 전문성 있는 사람 1-2명 이면 일을 시작하고 끝내기에 충분했다. 즉 그 프로젝트에 필요했던 인원은 D와 나, 그리고 새로 합류했던 K가 전부였다. 


일을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짧은 시간에 우선 결과를 창출할 줄 아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일할 때마다 일종의 케미가 느껴진다. 즉 린스타트업 또는 애자일 조직에 특화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회사라는 조직의 모든 사람들은 대체 가능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처럼 기질적으로 스타트업처럼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요하는 애자일 조직에 특화된 사람들이 나가면, 업무는 다른 사람으로 충분히 대체될지언정 이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일에 대한 접근방식, 기질적인 '민첩함'과 '실행력'은 대체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문제와 그다지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총 10명을 미팅에 초대하여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또 이슈를 해결하려고 어떤 양식을 작성해서 제출하고 내 이슈가 해결될 때까지 차례를 기다리고 승인을 받기 위해 반복적으로 설명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프로세스는 느려지고 단계는 늘어난다.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고 길을 못 찾고 결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체 불가능한 직원은 없다는 데에 반만 동의한다. 기업은 여전히 운영될지언정 그들이 불러오는 작은 혁신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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