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예진 Sep 09. 2024

50. 당신이 뭘 안다고

우혁이 차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 걸 서아가 붙잡았다. 


“나가지 말고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여기 떠나요.”

“나 혼자 나가 볼 테니까 너는 여기 있어.”


서아가 고개를 흔들며 재차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우혁은 서아의 양쪽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내가 은근 남자애들한테 인기 있는 거 아니?”

“모르는데.”

“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나 지금 싸우러 나가는 게 아니고 재랑 이야기해보러 가는 거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여기 얌전하게 있어. 알았지?”


서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흔들었지만 우혁이 강한 목소리로 다시 당부하자 하는 수없이 수긍했다.


차 문을 소리 나게 닫은 우혁이 아직도 담벼락 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원성태를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시큼한 양파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혁은 이 냄새가 액취증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성태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지 짐작이 되었다.


“원성태!”


우혁이 다가오자 당황한 원성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뛰었다. 하지만 발이 빠르고 순발력이 좋은 우혁에게 바로 잡혔다.


“야, 원성태, 도망갈 짓을 왜 했냐?”

“내가 뭘 했다고 그래요?”


원성태가 우혁의 손에 잡힌 팔을 잡아 빼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뭘 하긴 내 차 타이어에 나사못을 박았지. 그거 박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원성태는 체념한 듯 후드티를 움켜쥐고 히죽 웃었다.


“드릴이 있어서 어렵지 않았어요.”

“짜식, 쎄지도 못한 주제에 센척하기는.”


우혁의 일갈에 원성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세기에?”

“까분다. 내가 너보다 열 살이나 많거든. 깍듯이 형님이라고 불러라. 나야 너 같은 놈 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세지.”


우혁의 태도가 생각보다 공격적이지 않자 원성태는 당황스러운 듯 어쩔 줄 몰랐다. 


“영화랑 현실을 착각하시는 모양이네.”

“과연 그럴까?”


순간 원성태가 주먹을 내뻗었다. 하지만 그 주먹은 나가기도 전에 우혁의 손아귀에 잡혔다. 


“까불지 말랬지.”


우혁은 그대로 원성태의 팔을 비틀어 뒤로 꺾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너 지금 경찰서로 갈래 아니면 나 따라와서 반성문 쓸래?”

“네? 반성문요?”

“응, 반성문.”


우혁의 엉뚱한 제안에 동공이 마구 흔들리던 원성태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성문 쓰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너는 정신 개조가 좀 필요해 보여.”


서아는 우혁이 원성태를 잡아끌고 차로 들어오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동자만 굴렸다.


“얘, 학교 다닐 때 왕따였지?”


서아는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우혁을 바라보았다.


“뻔하지.”


왕따 이야기가 나오자 원성태가 욕설을 내뱉으며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우혁이 블랙박스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여기서 나가는 순간 나는 바로 경찰에 이거 넘긴다. 너는 재물손괴로 골치 아파질걸. 그러기에 블랙박스 뻔히 보이는 차에 이런 짓을 왜 했냐?”


우혁은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며 원성태가 한심하다는 듯 계속 구박했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원성태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얘랑 볼 일이 있으니까 너는 먼저 들어가서 자.”

“무슨 볼일?”

“앞으로 우리 서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게 해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주무셔.”


원성태는 그런 우혁의 말에 후드를 슬쩍 내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다 우혁이 고개를 돌리자 재빨리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서아는 원성태를 주눅 들게 하는 우혁이 꽤나 어른 같아 보여 좀 신기했다. 처음으로 오빠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나는 집에 가 있을게요.”


우혁은 차에서 원성태를 끌어내려 잡아끌고 해변 쪽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걷기만 하던 우혁이 모래사장에서 원성태를 놓아주고 자리에 앉았다. 


“아까 낮에 카페에서 서아를 보고 있는 너를 볼 때는 네가 그냥 변태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어.”

“나, 변태 맞아요. 왕따 새끼에다 변태 맞아요!”


원성태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우혁은 원성태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그런데 너한테서 나는 그 시큼한 양파 냄새를 생각하자 마음이 좀 바꿨어. 왜냐면 나도 어렸을 때 액취 증으로 고생을 좀 했거든. 이제 수술해서 괜찮아졌지만.”


“너는 학교 다닐 때 서아한테 고백을 해봤어야 했어. 거절당하든지 말든지 고백은 해봤어야 했다고. 그런데 그 고백도 못 해본 거잖아. 그 빌어먹을 냄새 때문에.”


원성태는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쏘아붙이는 우혁의 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씨발, 당신이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들어!”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원성태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거리고 우는 통에 불꽃놀이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전 19화 49. 이러는 거 싫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