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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Sep 11. 2024

51. 그때도 지금도 예쁜

“여보세요? 박사님? 네, 저 강우혁인데요. 네, 제가 아는 동생이 있는데 액취증이 심각해서요. 네, 박사님한테 진료 부탁드립니다. 네, 네 그럼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우혁은 모래사장에 널브러져 우는 원성태를 내버려 둔 채 전화를 했다. 한참을 울던 원성태는 지쳤는지 주먹으로 모래를 치고 있었다. 우혁은 그런 원성태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며 강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다음 주 강남에 있는 에스 성형외과에 진료예약 해놨거든. 수술비 내가 대 줄 테니 이번에 수술해라.”

원성태는 갑작스러운 우혁의 말에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당신이 왜? 딸꾹.”


딸꾹질을 하고도 민망한지 주먹으로 모래를 쳤다. 하지만 주먹질이 끝나기도 전에 또 딸꾹질이 나왔다. 


“내가 형이니까 그렇지 인마.”


그러더니 바다를 향해 주저앉았다. 검은 바다 위로 몇몇 사람들이 쏘아 올린 불꽃이 환하게 퍼졌다. 불꽃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올라가서 계속해서 펑펑 소리가 났다.


“있잖아 나는 돌아가신 서아 아빠가 아니었으면 십 년 전에 죽어버렸을 거야. 죽으려고 마음먹었었거든.”


우혁의 목소리가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느라 깊게 가라앉았다. 원성태가 우혁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움찔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죽을 거라고 했더니 서아 아빠가 그 길로 달려오셨어. 당시 서아 아빠인 은 피디님은 그렇게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겨우 이름 알리기 시작한 별거 없는 연기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만사 제치고 오셨어.”


원성태는 지저분하게 얼룩진 얼굴로 우혁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우혁은 그런 원성태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분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다시 태어나서 결심했어. 나도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피디님한테 받은 은혜를 대갚음하기로.”

“칫. 나는 배우 강우혁이 좋은 일 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는데.”


원성태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그렇지. 나도 은 피디님 덕분에 제대로 살게 되고 나서는 결심은 거하게 했는데 곧 잊어버리고 살았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우혁이 고개를 돌려 원성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서아는 정말 가로수길 천사 맞아. 서아가 아니었으면 나도 너를 재물 손괴로 경찰서에 넘기고 말았을걸. 내가 지금 너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거 따지고 보면 서아 때문이지. 서아하고 같이 있으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


“서아는 천사 맞아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어요.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 좋았던 건데.”

“이 바보 같은 놈아. 아무리 보는 게 좋아도 그렇게 무섭게 따라다니며 보면 여자들은 무서워.”


우혁이 원성태의 머리를 치며 말했다. 


“수술해라. 그리고 자신 있게 여자 만나.”

“서아는요?”


원성태가 뻔뻔한 얼굴로 묻자 우혁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너 맞을래?”


원성태가 키득거리고 웃었다. 울어서 꼬질꼬질해진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자 은하수에서 서아를 뚫어지게 보던 변태 자식이 아니라 순진한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누구는 수술하기 싫어서 안 했는지 아나.”

“그러니까 내가 도움 줄 때 얼른 수술해라.”

“그래도 이건......”

“사내자식이 쪼잔하게 굴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아라.”


우혁은 손을 들어 원성태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렇게 헝클다 생각하니 머리에 손대지 말라고 하던 서아가 생각났다. 


“서아 고등학교 다닐 때도 지금처럼 예뻤니?”

“그럼요. 서아는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뭐? 에이 그건 아니다.”


우혁이 실소를 터트리자 원성태가 정색을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님은 그렇게 생각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


우혁이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사실은 원성태 말이 옳다고 동조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아보다 더 예쁜 여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차마 그걸 입 밖으로 내기에는 뭔가 부끄러웠다. 그걸 인정하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일어서자. 전화 좀 줘봐라.”


원성태가 전화를 내밀자 우혁은 그의 전화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내 번호니까 수술 무사히 잘 끝나면 연락해라.”

“정말 제가 형님 도움받아도 되는 건가요?”


우혁은 원성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내가 몇 번 이야기해야 알아듣니. 이건 다 가로수길 천사 덕분이야. 그러니까 서아한테 감사한 마음 갖고 새 삶을 얻으면 되는 거야.”


원성태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체념한 듯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우혁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서아가 기다라는 집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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