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은 승강기 공사로 시작되었다. 7월 3일부터 8월 6일까지 정확히 5주간의 공사였다. 우리 집은 20층 아파트의 12층이다. 16층, 20층보다는 쉬웠고 6층, 8층보다는 힘든 위치. 위층을 보며 다행이다 싶었고 아래층을 보며 부러워했다.
배달을 시킬 수 없었으며 택배는 계단 1층에 쌓여 있었다. 조금 무거운 물건을 가지고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으니 어지간한 쇼핑은 미리 하고 한 달 뒤에 하는 것으로 미뤘다. 3층 간격으로 플라스틱 의자를 놓아두었고 계단을 따라 길게 늘어선 전깃줄에 등이 달려 있었다.
9층 어르신들은 자식들 집을 열흘씩 다니신다고 했다. 형편이 여유 있는 집들은 동남아로 한 달 살기를 떠났다고 하고 농막이 있는 집은 거처를 잠시 옮겼다는 소리도 들었다. 남편은 출퇴근으로 하루 한번 12층을 올랐고 나는 출퇴근과 운동을 위해 하루 두 번 12층을 올랐다.
그동안 나는 어딘가 길고 긴 언덕을 올라 다녀야 하는 달동네에 사는 기분이었다. 가족들 먹을 배달음식을 들고 뛰어올라가는 20층 아기아빠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고 그동안 승강기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낯선 주민들을 마주치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우리 라인에 저런 예쁜 아가씨가 살았단 말이야? 저런 아저씨가 우리 라인에?'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지나고 하루 일찍 승강기가 운행되던 날은 갑자기 너무 편해진 게 적응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디디며 가야 했던 집이 버튼만 누르면 되다니. 기쁘면서도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다.
반짝 거리는 승강기에 올라타자 오래된 아파트가 갑자기 호텔이 된 듯한 기분. 역시 새로운 것은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이 년을 넘게 공사 여부를 투표하고 공사 업체며 디자인까지 투표를 여러 번 하며 기다린 일이었다. 오래 걸린 만큼 걱정도 컸는데 이렇게 끝났다. 하필이면 가장 더울 때라고 투덜거렸지만 진짜 더위는 공사가 끝날 때쯤 시작되었다. 그리고 늦도록 더위가 가실 줄을 모르고 있다.
승강기 공사가 끝나고 캐리어를 들고 내려갈 수 있게 된 주말 평창으로 떠났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선재길에 맞닿은 계곡이다.
남편은 그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남편을 지루하게 기다리는 편이다.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을 싫어해서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는 남편을 끌고 가야 한다. 미련에 아쉬워하는 남편에게 이만하면 되었다고 달랜다.
성수기 리조트 숙박비가 너무 비싸기에 가성비 좋은 펜션을 예약했는데 완전 실패였다. 방문은 잠기지 않았고 정수기도 없고, 생수 한병도 없었다. 주차장은 협소했고 와이파이는 방에서 제대로 터지지 않아 공용 공간을 이용해야 했다. 아침에 업무를 봐야 하는 남편은 공용공간에서 느린 와이파이 때문에 애를 먹었다. 나이 든 주인 부부는 리조트에서 직원들이 보여주는 나이스한 태도와 거리가 멀었다. 이제 다시는 펜션은 이용하지 않는 걸로 결심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용평 리조트 안에 있는 발왕산 케이블카. 이십 분을 타고 올라가 도착한 발왕산의 서늘한 공기에 거의 감동이었다. 진짜 피서는 강원도가 맞는 것 같았다. 강원도 중에서도 평창은 서울과 온도 차이가 8도 정도 난다고 하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발왕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 서늘함에 8월 하순만 되어도 긴팔이 필요할 것 같았다. 데크길로 이루어진 발왕산 천년주목숲길을 걷노라니 1400미터가 넘는 높은 산의 깊은 숲 속을 이렇게 편하게 걸을 수 있음에 감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이 깊은 산에 길을 낸 인간이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늘한 평창에서 돌아오자 이곳의 더위가 더 힘겹게 느껴졌다. 2018년의 더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올여름 더위도, 열대야도 만만치 않다. 1994년의 악명 높은 더위 속에 나는 딸을 낳았고 그 딸이 다음 주에 또 딸을 낳는다. 그렇게 한세대가 넘어가고 있다.
남편이 승강기에서 9층 어르신을 뵈었다고 했다. 자식들 집에 열흘씩 다니신다고 하더니 잘 다녀오셨냐고 물으며 할아버지 안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승강기를 공사하는 사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공사 전에 뵈었을 때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니셨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오랜 시간 고생하지 않고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좀 슬펐다. 남편이 9층 어르신 내외를 참 좋아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