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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않는 말에 답하지 않는다

by 은예진

지난 26일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딸이 9월 4일 출생 예정인 아기를 조금 일찍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서 출산 했다. 경상남도 끝자락에 위치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딸부부는 사위의 출산휴가 일정과 연휴를 적절히 쓸 수 있는 날로 26일을 골랐고 그날 12시 18분 3.24킬로의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사위가 보내준 동영상 속에 아기는 태를 막 잘라서 집게로 집은 채 온몸에 하얀 양수를 얼룩덜룩하게 묻히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태어난 시간과 몸무게 그리고 발가락, 손가락 개수를 확인해 주었다. 자연분만이 아니라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세상에 급작스럽게 나온 아기는 아직 적응이 어려운지 눈을 뜨지 않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날아오는 사위가 보내주는 사진을 보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내가 자식을 키울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키웠건만 손녀가 세상에 나올 때가 되자 불안이 덮쳐 혼자 전전긍긍했더랬다.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도 없는 온갖 사위스러운 생각을 떨치느라 애를 먹었다.


아기는 시간시간 예뻐졌고 그제보다 어제, 어제보다 오늘 더 예뻐졌다. 사진을 본 가족 친지들은 딸의 입매를 고스란히 닮은 아기를 신기해했다. 딸아이의 입매는 또 나를 닮은 것이라 재미있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내가 딸을 출산할 때만 해도 출산과 관련된 대부분의 감정적. 육체적 노동은 산모와 외할머니의 몫이었다. 양수가 먼저 터져 병원으로 가면서 남편은 친정어머니께 알렸고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한 엄마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내 곁을 지켰다.


결국 바쁜 업무를 핑계로 남편은 딸아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나도 남편도 서툴러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날 병원 셔터가 내려갈 때까지 병실로 돌아오지 않은 남편은 이후 이십 년 이상 나에게 그 일로 시달렸다.


남편을 잡으려고 하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날 일은 결코 덮어두고 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느라 지친 나는 남편의 변명을 따지지 않고 이해해 주었다. 이해하지 말아야 할 일을 이해해 준 후유증은 컸다.


자기 자리를 지킬 줄 몰랐던 남편과 요구해야 할 일을 요구하지 못했던 나와 다르게 딸 부부는 자신들의 역할을 정확히 해내고 있다. 결혼식부터 누구의 도움도 원하지 않던 아이들은 출산에서도 온전히 자기들의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고 있다.


출산 휴가를 받은 사위는 일주일간 딸의 곁을 지켰다가 다음 주부터 출근한다. 오늘 퇴원하는 딸은 조리원으로 가서 이주를 보낸다고 했다. 사위는 조리원으로 퇴근을 하고 조리원 퇴소 후에는 추석 연휴로 사위가 온전히 딸을 보살필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이후에는 삼 주간 산후 도우미를 부른다고 한다.


앞으로 일 년 딸이 육아휴직을 쓰고 이후 사위가 일 년 육아 휴직을 써서 교대로 아기를 돌보기로 했다.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실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특별한 변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 사는 일이니 육아가 계획 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욕심을 내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딸은 공부할 때와 마찬가지로 육아도 성실하게 잘 해낼 것이다.


이렇다 보니 할머니인 나는 그저 사진을 보며 환호만 하면 되는 입장이다. 친정엄마처럼 출산을 옆에서 지킬 필요도 없고 한 달간 미역국을 끓여대며 아기와 딸을 보살필 일도 없다. 대신 묻지 않은 말에 결코 대답을 해서도 안된다.


딸아이가 생각하고 있는 아기 이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이름을 알아보라고 하자 딸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순간 내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바로 사과했다. 묻지 않는 말에 대답을 했다가 쩔쩔매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자기 힘으로 다 해내는 딸은 도움을 원하지 않는 만큼 참견도 용납하지 않는다.


앞으로 손자 일에 참견하고 싶은 순간마다 떠올려야 할 금과옥조다. 할머니 명심보감 하나, 묻지 않는 말에 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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