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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

by 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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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독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독이 되기도 하고, 독이 약이 되기도 한다. 보툴리눔 톡신은 생화학 테러에 쓰일 만큼 치명적인 맹독이지만 우리는 그 독을 이용해 보톡스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수많은 질병 치료와 미용에 효과를 보고 있다.


사람에게 사람도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보툴리눔 톡신이 약이 되기 위해서는 소량의 적정 용량이 쓰여야 한다. 그처럼 사람도 타인과의 관계가 꼭 필요하지만 그게 넘칠 때면 독소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시달림을 동시에 받고 있는 동생이 리마스터링 한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위로받았다는 말에 나도 문득 그 느리고 끈적이는 듯했던 OST 'Calling you'가 떠올랐다.


1993년에 개봉된 영화는 아스라한 기억 속에 calling you와 두 여자의 이야기였다는 것 이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감정은 남아서 무척 좋은 영화였다는 것은 잊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여자들의 연대감을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어지간히도 많이 본 사람이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뚱뚱하고 답답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천사처럼 보였다. 극 중의 등장인물들도 나도 그녀의 뒤로 비추는 후광을 볼 수 있었다. 야스민은 칭송받아 마땅한 여주인공이었다.


라스베이거스 근처 황량한 모래사막 한가운데 다 쓰러져가는 카페와 주유소가 있다. 카페에서는 모텔도 운영하고 있으니 그곳은 트럭 운전사들의 휴식처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별로 없고 아이 셋을 키우며 카페와 모텔 운영에 치인 브랜다는 한량 같은 남편을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누런색 먼지가 풀풀 날리는 사막을 배경으로 서 있는 브랜다의 모습에서 그녀가 지금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막은 그녀의 배경이자 그녀의 내면이었다. 그런 브랜다 앞에 뜬금없이 두꺼운 정장 차림에 뚱뚱한 독일 여자가 나타났다.


차가 없으면 올 수 없는 곳을 여행가방을 든 채 걸어서 나타나 모텔에 묵겠다고 하자 당황한 브랜다는 여자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 지친 브랜다는 걸리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물어대는 성난 개 같은 상태였다.


그러니 남편도 물고 자식들도 물고 이제 낯선 독일여자, 이름도 어려워서 부를 수 없는 뮌힉스테이트도 물어 버리고 싶었다. 여자가 이상하다고 보안관을 불렀지만 그가 보기에 여자는 멀쩡한 여행객일 뿐이었다.


뮌힉스테이트는 남편과 여행 중이었지만 싸우고 사막에 홀로 버려졌다. 남편은 그녀와 함께 노란색 커피포트를 내버리고 떠나버렸다. 브랜다의 남편이 길에서 노란색 커피포트를 주워와 카페에서 사용하고 뮌힉스테이트는 어려운 자신의 이름대신 야스민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커피머신마저 고장 난 카페에 노란 커피포트는 제법 유용했다. 그리고 야스민은 카페 가족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치는 브랜다의 아들에게 음악을 청해 듣고 옷을 좋아하는 딸아이와 패션쇼를 하고 브랜다의 자식인 줄 알았으나 어린 아들의 자식인 아기를 돌보기도 한다.


그리고 카페 옆에 트레일러를 놓고 가족처럼 사는 콕스의 그림에 모델이 되기도 하며 야스민은 브랜다의 식구가 되어간다. 이제 먼지만 풀풀 날리던 삭막한 바그다드 카페에 묘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야스민이 익힌 마술로 카페 가족들과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면서 조금씩 소문이 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야스민과 브랜다는 손발이 척척 맞아 카페를 찾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 하지만 브랜다가 불렀던 보안관이 야스민의 비자를 문제 삼으며 바그다드 카페에 위기가 찾아온다. 야스민이 떠나자 바그다드 카페는 다시 예전의 황량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데 카페 손님으로 온 젊은 청년은 사막의 노을을 배경으로 계속 부메랑을 던진다. 힘껏 날아갔다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그 부메랑을 통해서 알려주고 싶어 했다. 허공으로 날아간 야스민이 돌아올 곳이 어디인지 말이다.


나는 그 유명한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서 캐리가 걸치는 명품과 뉴욕의 생활과 연애가 환상이 아니라 여자들의 우정이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여자건 남자건 그런 우정은 드라마 속에나 있는 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치유받는 이야기가 좋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는 생각만 해도 기 빨린다고 싫어한다. 나이 들어 기운이 없으니 공연장이나 극장도 힘들어서 피하게 되고 웨이팅 있는 맛집, 대형 카페도 피하고 싶다. 그렇게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외롭다.


많으면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없으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게 또 사람이다. 그래서 야스민이 브랜다에게 준 희망과 활기를 보면서 나도 브랜다가 된 듯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야스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브랜다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휴일의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관계에 게으른 나도 누군가에게 안부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더운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혹시 냉방병이나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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