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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Sep 25. 2024

57. 적조?

“오랜만입니다. 민 기자님.”


차현준은 민성훈을 불러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역 아이돌 같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감돈다. 저렇게 웃는 얼굴로 홀리고자 마음먹으면 유혹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게요. 우리가 이렇게 적조할 사이는 아닌데.”


민성훈이 손을 내밀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적조? 그게 뭡니까?”


차현준이 해맑은 얼굴로 적조의 뜻을 묻자 민성훈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고, 차현준 씨 유머가 날로 늘어요.”

“진짠데.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민성훈은 도대체 이 자식이 뭘 하려고 이렇게 깐족거리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연락이 끊겨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있었던 걸 적조라고 합니다.”


차현준이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리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어려운 말로 해요? 적조라니 바닷물에 뜨는 그 빨간 거 그거 같잖아.”


차현준의 신경질에 민성훈은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듣고만 있었다. 


‘도대체 이 새끼가 왜 나를 부른 거지?’


“민 기자님, 기자노릇 참 쉽게 하십니다.”


차현준이 몸을 기울이더니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왔다. 한 뼘 차이도 나지 않는 거리를 두고 눈을 마주한 민성훈이 놀라서 주춤거렸다.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가 알게 해 드리지요.”


차현준은 핸드폰을 열어 우혁의 열애설이 나기 전날 밤 한남 빌리지로 들어가는 민성훈의 차량 사진을 내밀었다. 


“열애설을 낼 기자가 전날 당사자인 배우 집을 찾아갔다. 이거 뭐 좀 이상하지 않아요?”


민성훈은 천천히 몸을 뒤로 빼며 차현준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장 대표랑, 한가영 변호사랑 임 팀장 그리고 당신 차. 이렇게 네 명이 강우혁이네 집에서 대책 회의를 했겠지요. 은서아랑 강우혁의 사이를 어떻게 설정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민성훈은 씩 웃으며 태연을 가장했다. 


“차현준 씨, 왜 이래요? 남의 밥줄 끊을 일 있어요? 나 그렇게 편하게 일하는 사람 아닙니다.”

“과연 그럴까? 조금 더 센 사진이 있는데 그거까지 보여줘야 하나?”


차현준이 우아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핸드폰 화면을 바꿨다. 거기 서아의 어깨를 안고 있는 우혁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민성훈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민성훈은 흠뻑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침을 삼켰다. 


“원하는 게 뭡니까?”

“사실 이런 거 필요 없이 그냥 터트려도 되는 건데. 내가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확인은 해야겠거든. 우선 확실하게 답을 해줘 보라고. 두 사람 가짜 열애설 맞지……요?”


민성훈은 대답 대신 질문을 먼저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강우혁을 못 잡아먹어 안달입니까? 강우혁이 차현준 씨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차현준이 우습다는 듯 낄낄거리며 다리를 꼬아 올렸다. 길쭉한 다리를 꼬아 올리며 거만한 표정을 짓자 꼭 화보를 찍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누가 잘못되기 바라는 게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난 그냥 그 인간이 싫은데. 뭐 이유를 대야 한다면 처음에 나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하기는 했지. 인사를 안 한다는 둥 건방지다는 둥.”


민 기자는 이 인간이 정말 말로만 듣던 쏘시오 패스가 아닌가 싶어 등골이 오싹했다.


“쫄기는.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야단이야.”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쩔 겁니까?”

“당신이 인정하면 JK401 측에서 작업한 일에 엮인 불쌍한 기자로 만들어주고 인정하지 않으면 팩트 뉴스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강우혁과 은서아의 열애설을 만들었다고 하는 거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차현준 씨 인기 있고 총망 받는 차세대 스타인데 왜 이런 일에 에너지를 쓰는 거지?”

“강우혁이랑 같이 거짓 열애설을 만든 기레기 주제에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실까. 나는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진 미디어 스타가 대중을 속인 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너희가 잘못이지 내가 잘못이야?”


차현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차현준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증오에 가득 찬 듯한 그의 태도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민성훈을 노려보는 차현준의 눈빛은 목을 조르는 것만 같은 살기를 담고 있었다. 


“빨리 선택하라고. 팩트 뉴스랑 같이 기자 생명 끊을 건지 아니면 선의의 피해자가 될 건지.”


민성훈은 결국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틀림없이 지금 그를 녹화하고 있을 테니 거기에 맞춰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장민석 대표랑 강우혁 씨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팩트 뉴스에 특종을 주는 거니까 사진만 찍어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역시 JK401에서 작업한 게 맞는 거였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기자님이 대중을 농락하는 나쁜 사람들에게 놀아났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차현준은 어느새 대중이 알고 있는 소년 같은 남자로 돌아와 있었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순한 눈에 민성훈에 대한 동정이 흘러넘쳤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제가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용기 있는 기자님에게는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민성훈이 고개를 숙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인간은 무조건 맞춰주고 나중을 도모하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다가는 일이 더 커질 수 있기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우선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이건 언제 터트릴 겁니까?”


차현준은 입가를 끌어올리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천사의 얼굴과 조커의 얼굴이 공존하는 듯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연기자로는 대성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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