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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Sep 20. 2024

55. 은강커플

아침에 눈을 뜬 서아는 천장을 바라보며 턱까지 끌어올린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어제랑 오늘은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지난밤 우혁은 서아의 방문 앞에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있던 민석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적당히 하라고 외쳤다. 우혁은 마뜩잖은 시선으로 훼방꾼 민석을 쏘아보았다. 민석은 내일 짐을 대충 챙겨 오겠지만 우선 오늘부터 여기서 자겠다며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우혁은 저게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며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툴툴댔다. 민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그런 민석의 모습은 마치 절을 지키는 사천왕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우혁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서아는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십 분쯤 더 누워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짧은 여유를 즐기느라 이불속에서 뒤척이다 보니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그녀를 바라보는 우혁의 눈빛을 생각하면 발가락 끝에서부터 전율이 일었다. 


‘강우혁이 정말 이 은서아를 좋아한단 말이야? 가짜 연애가 아니라 진짜 나를 좋아하다 이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 어쩌면 정말 아빠가 자신을 우혁 앞으로 끌어다 놓은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빠, 나 그 사람 사랑받으며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지?’


책장에 꽂힌 아빠 책들이 아빠 대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아는 책 제목을 훑어보고 나서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긴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촬영할 때 입던 협찬받은 실내복인 핑크색 바지에 줄무늬 티가 마음에 들어 집에서도 입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 발뒤꿈치를 들고 팔을 머리 위로 치켜올렸다. 이곳은 이제 서아의 집이었다. 며칠 만에 돌아온 집의 공기가 좋아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자 주방 쪽에서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그녀를 유혹했다.


“이 냄새는 뭐지?”  


주방으로 들어가자 우혁이 말끔하게 씻은 얼굴로 팬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벌써 일어난 거야? 그런데 뭐 해?”


우혁이 프라이팬을 든 채 고개만 돌리고 대꾸했다.


“왜 나왔냐? 내가 팬케이크하고 커피 내려서 네 방으로 직접 들고 가려고 했는데. 아쉽다.”

“어, 어 탄다. 빨리 꺼내야겠다.”


서아가 소리 지르자 놀란 우혁이 재빨리 뒤집개로 팬케이크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한쪽 면이 까맣게 타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오빠, 그냥 내가 하면 안 될까? 그런 건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그런가?”


우혁이 머쓱한 표정으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이리 나와. 내가 얼른 부쳐서 오빠랑 장 대표님 먹을 수 있게 해 줄게.”


우혁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물러섰다. 그냥 있기는 싫은지 팬케이크 반죽하느라 어질러놓았던 개수대를 치우기 시작했다. 서아는 빠른 손놀림으로 팬케이크를 굽고 시럽을 얹었다. 냉동 블루베리에 오렌지와 키위까지 곁들이자 옆에서 우혁이 커피를 내렸다.


부르기도 전에 나타난 민석은 벌써 출근복 차림이다. 


“두 사람 오늘 광고 때문에 회의 있으니 두 시까지 사무실로 나오세요.”

“제가 정말 광고를 찍어도 되는 걸까요?”


서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민석을 바라보았다.


“네가 찍고 싶지 않으면 찍지 마.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


우혁이 끼어들자 민석이 쉿 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혁을 쏘아보았다. 우혁의 목이 쏙 들어가며 입을 다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문제에서는 우혁이 민석에게 꼼짝 못 하는 눈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대중들이 원하는 건 서아 씨가 프로처럼 잘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은강 커플의 모습이 보고 싶은 거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은강 커플요?”

“몰랐어요? 시청자들이 두 사람을 은강 커플이라고 불러요.”

“은강보다는 은하수가 더 좋은데. 은하수 커플이라고 불러주지.”


우혁의 말에 서아와 민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혁은 자신이 지은 카페 이름 은하수가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그 이름을 낙관으로 파서 여기저기 찍으며 애정을 드러냈다. 


“잊지 말고 두 시까지 나와라.”


민석이 출근하며 다시 한번 다짐하자 서아는 자기가 우혁을 데리고 나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민석이 나가자마자 우혁이 양팔을 벌려 서아를 와락 껴안았다.


“아, 장민석 나쁜 놈! 우리 둘이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이겠다니 저게 웬 심술이야. 그렇게 부러우면 저도 연애나 할 것이지.”


서아는 우혁의 품에 안겨 키득거리고 웃었다. 따스하고 포근한 우혁의 품이 좋았다. 그에게서 나는 블랙베리 향수 냄새도 좋았다. 그리고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박동을 느끼는 것도 좋았다.


“잠깐,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문을 열고 도로 들어온 민석이 주먹을 입에 대고 흠흠 거렸다.


“왜? 왜 또 들어왔는데?”


우혁이 울상이 되어 소리 지르자 민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빠트린 게 있어서. 구 작가가 알바생으로 게스트를 부르고 싶다는데 허락해도 되나 싶어서.”  

“돼.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 구 작가한테 말해 누구를 불러도 상관없다고.”

“나중에 까탈 부리며 딴소리하기 없기다.”

“알았으니까 어서 출근이나 해!”


우혁은 민석이 아주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등을 떠밀어 그를 내보내버렸다. 서아는 그런 우혁을 보며 웃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민석의 차가 집을 떠나는 엔진 소리가 들리자 우혁이 겨우 숨을 돌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분위기는 깨졌고 서아는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 중이었다.


“서아야, 그거 내가 할게.”


우혁이 또 서아의 일을 하겠다고 대들었다. 그러자 서아가 물을 잠그고 고무장갑을 벗어 옆에 걸쳤다.


“우혁 오빠 우리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무슨 이야기를 해?”


서아의 표정이 단호해 보이자 우혁은 멈칫하며 옆에 섰다.


“우리가 사귄다고 해도 내가 오빠의 가사도우미 인건 변함없지?”

“그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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