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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Oct 18. 2024

3. 불안이의 등장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오래전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위험한 환경 속에 살았고 조심스러운 겁쟁이가 생존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현생 인류는 겁쟁이의 후손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DNA 속에 걱정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타당한 걱정보다 한심한 걱정이 훨씬 더 많다. 내가 했던 한심한 걱정 중에 하나는 딸의 결혼식에 하객이 없어 너무 초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남편은 인싸였지만 고향을 떠나며 대부분의 관계가 정리되었고 이후에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때뿐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으로 혼자가 편하다. 남편이나 나나 모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내가 가끔 떠올렸던 이 걱정이 정말 한심해 진건 딸의 결혼식이 코로나 시국 한가운데였다는 것이다. 하객 수가 150명을 넘기면 제재를 받는 상황이라니 정말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가족친지 이외에는 오고 싶은 사람도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딸부부는 같이 근무하는 입사 동기다 보니 전국에 퍼져 있는 동기들의 참석율도 높았다.


하객은 차고 넘쳤고 아무도 우리 부부의 손님에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또 우리 부부의 손님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제부가 고향에서 엄청난 손님을 받을 위치에 있으니 어차피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티도 안 날거라 상관없지만 그럼에도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걱정이라는 것은 대부분 내가 해결책을 딱히 세울 수 없거나 노력하고 싶지 않은 일에 한정되어 있다.  늙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니 더욱 걱정이 많아져서 부모님은 자식들을 귀찮게 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그저 걱정만 하는 것이다. 


딸이 임신을 하자 나는 스멀스멀 안개처럼 피어올라 시야를 가리는 불안이를 만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끔 터무니없는 불안을 느꼈는데 글을 쓰면서 그 불안이 잠재워졌다. 아마도 몰입을 하면서 불안에 내줄 자리가 없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지러워서 제대로 몰입도 못하는 처지다 보니 불안이 서식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가 만들어졌다.


지구가 멸망하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생겼다. 소중해도 너무 소중한 존재가 생겨서 지구는 어떻게든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위험이 너무 많다. 포탈 창을 열면 넘치는 사건사고 소식에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사위스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럼에도 태연한 척 아무 생각 없는 척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불안한 것을 들키면 그 불안이 실현될 것만 같았다.


지금도 내가 너무 디테일하게 걱정거리를 열거하면 무언가 나쁜 기운을 몰고 올 것만 같아 함부로 표현하기 두렵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그 불안은 점점 더 커졌다. 내가 출산을 앞두고 느꼈던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불안이었다. 아마도 내가 겪는 일이 아님에도 그 이상 신경이 쓰이고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무력감과 합쳐진 감정 때문일 것이다. 


드디어 딸아이가 잡은 출산일이 되었다. 키도 작고 골반도 작은 딸에 비해 아이가 크다는 의사의 말에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아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안을 아는 수술실 간호사는 동영상 속에서 양수를 묻힌 채 울고 있는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확인해 주었다.


그걸로 끝이 아닌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한 울음과 열개의 손가락, 발가락을 보면서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불안이 햇빛을 받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렸다. 아이가 무사히 세상에 나와 빛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그 아기 앞에 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지해주신 삼신할머니는 아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비가 몹시도 많이 내리던 날 내가 아기를 보러 먼 길을 운전한다는 것을 아는 아버지가 걱정을 하셨다고 전화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걱정을 일축한다. 그러면서도 입장이 바뀐 나는 또 아기를 걱정한다. 


요즘 sns에는 예전에 명품 자랑을 하던 것과 다르게 자신의 이혼을, 불의의 사고를, 갑자기 닥친 암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행을 상품처럼 판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우리의 삶이 너무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연약한 것이라는 실감이 난다. 한때 불안에 시달리는 동생에게 걱정을 하느니 기도를 하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우리 아기의 무탈과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기적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 가사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받는 것만 기적이 아니라 여기 이렇게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에 잠시 놀라고 만다. 우리는 이 기적에 너무 소홀한 거 아니었을까. 


방금 태어난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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