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예진 Oct 11. 2024

2. 다섯 번의 이사 끝에

딸은 남자 친구와 같이 근무하던 지역에서 지금 살고 있는 경상남도로 이사 가는 것을 시작으로 총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두 명의 차장님과 같이 쓰는 쓰리룸 숙소에 살았고 다음에는 원룸 숙소로 옮겼다. 원룸에서 살다가 남자 친구가 근무지를 옮겨 오면서 둘이 투룸 월세를 얻었다. 


월세 투룸에서 결혼을 한 딸은 혼인 신고를 하고 오는 길에 기념으로 아파트 전세를 구했다. 회사에서 저리 이자로 대출해 주는 돈에 둘이 모은 돈을 긁어모아 전세를 얻은 딸은 그 아파트에서 신혼을 보냈다. 나는 딸이 그렇게 이사를 하는 동안 머나먼 남쪽나라 경남을 가보지 못했다.


9월에 딸이 결혼하고 나는 12월에 전정신경염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쉽사리 가볼 수가 없었다. 이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친구 또는 신랑과 같이 했으며 나는 구경만 하면 되는 것인데도 가볼 기회를 놓쳤다. 그러던 차에 마음에 드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점찍어 놓았다는 딸의 말에 집을 사면 가보는 것으로 미뤄두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딸은 그렇게 다섯 번의 이사 끝에 집을 샀다. 집을 사면 그동안 어른들이 한 번씩 떠보듯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하겠노라 했다. 그건 아기였다. 


사실 나는 직장 다니는 여자에게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살지도 못하니 아기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자기 딴에는 그게 관심이라고 명절 금지 질문을 조카에게 해대는 남편은 내가 아무리 싫은 티를 내도 개의치 않고 딸 부부의 아이 계획에 대해 궁금해했다.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말이 없던 딸이 집을 사고 두 달쯤 됐으려나 1월 5일 금요일에 카톡으로 아빠는 퇴근을 했는지 물어왔다. 순간 나는 눈치를 챘다. 


'아! 임신이구나.'  


모르는 척 딸이 발표하기를 기다렸고 아빠가 퇴근한 시간에 전화가 걸려왔다. 집을 사면 아이를 가져볼까 했더니 바로 임신이 되었다고 한다. 젊으니까, 이제 바뀐 만 나이로 스물아홉밖에 되지 않았으며 어느 순간 학창 시절에 잘 먹던 정크푸드와는 작별을 고하고 건강식을 먹으며 운동을 열심히 하더니 순조롭게 임신이 되었다.


그때는 축하를 하면서도 은근 걱정이 앞섰다. 아이를 키울 때 전담은 못해줘도 급박한 상황이 될 때만이라도 도와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수도권인 우리 집과 경상남도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기보다 내 딸이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싶으니 말이다. 


드디어 입덧도 조금 가라앉은 삼월에 딸 부부를 보러 처음 경남으로 향했다. 중부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경부를 거쳐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도착한 곳에 이제 앞으로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살 딸의 집이 있었다. 수도권으로 올라오면 부부가 다른 지역으로 순환근무를  해야 하지만 본사에 자리를 잡으면 경남 본부정도를 돌면 된다고 생각한 딸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곳에 집을 사고 그곳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딸의 선택에 토를 달지 않는다. 딸은 나에게 묻지 않고 나는 묻지 않는 말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우린 그 선을 지키며 평화를 유지한다. 이미 고등학생 때 내 곁을 떠나 세상으로 나간 딸이다. 애초부터 어린 시절 내가 갖고 싶었지만 가지기 어려웠던 자유를 주고 싶었다. 


동생은 자신이 성장기에 부족했던 세심한 보살핌을 자식들에게 준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성장기에 장녀인 나에게만 적용되던 지나친 억압을 걷어내고 자유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자유를 원 없이 주었다. 남들이 보면 좀 지나칠 법도 했지만 그게 나름 나의 사랑 방식이었다. 물론 자칫 방임이 된 경우도 있어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위는 전적으로 믿을만한 사람이다. 요즘 이 정도는 해야 결혼한다더라 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정도로 아내와 가정에 헌신적인 마음을 가진 남편이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도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 한 번 해보지 않은 나의 남편을 몹시도 부끄럽게 만드는 사위다. 


그런 사위는 결혼을 하고 싶었던 만큼 아이도 가지고 싶었다. 장항준 감독이 김은희 작가에게 네가 낳기만 하면 내가 키우겠다고 했던 것처럼 사위는 딸에게 아이를 낳기만 하면 자기가 주양육자가 되겠다고 했다. 사위는 그 말을 지킬 사람으로 보였다. 


딸은 신랑이 조금이라도 믿음을 주지 않았으면 아이는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위는 누가 봐도 믿음직스러웠고 이 젊은 부부는 아이를 가졌다. 아이의 태명은 딸기였다. 사위의 본가가 논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딸기는 실컷 먹겠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논산이 딸기의 고장이었다. 


딸은 그냥 딸기를 먹다 지은 태명이라고 했다. 아기 딸기는 아주 작은 씨앗처럼 보이는 초음파 사진에서도 너무 귀여웠다. 어이없을 만큼 귀여웠다. 그 귀여움이 낯설었다. 


 


 


 









 









 

이전 01화 1. 계획형 인간의 결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