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성별을 확인하자 나는 아기 이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 딸에게 물었다. 딸이 마음에 두고 있다는 이름의 첫인상은 발음이 명쾌하게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통화를 마치고 이름을 이야기하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많이 짓는다는 서윤, 지아, 소율처럼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굳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도 않은 이름을 가지고 왈가불가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출산이 가까워지자 다시 한번 이름에 대해 물었다. 딸은 처음에 생각한 이름으로 결정할 것 같다고 했다. 거기서 입을 다물었어야 하는데 나는 일종에 책임감 같은 걸 느꼈다. 혹시라도 나중에 아이가 이름을 못마땅해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충고나 간섭은 관계를 걸고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간섭하는 사안이 그 사람과의 관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 하는 거라고. 그만큼 함부로 내일이 아닌 일에 입을 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평소 나답지 않게 간섭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발음이 쉽지 않고 어감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더 예쁜 이름을 알아보라고 했다. 순간 딸은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이름을 결정하고 나서도 마음에 찜찜한 게 남을 수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발끈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섣불리 말을 꺼냈다는 것을 깨닫고 뒤로 물러섰다. 발끈하고 생각하니 자기도 과했다 싶었는지 딸은 엄마가 돼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며 마무리했다.
평소에 간섭을 하던 사람 같았으면 그 많은 참견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나처럼 간섭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 선을 넘는 소리를 하게 되면 서로가 더 날이 서게 된다. 두 사람 다 그러려니가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여태 한 번도 하지 않던 간섭인데 그게 발끈할 일인가 싶고, 딸은 하지 않던 이래라 저래라가 더 거슬리는 것이다. 이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소관이 아닌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묻지 않은 말에 대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말이 있던 아기 이름은 딸이 처음 마음에 두었던 그 이름으로 정해졌다. 한자의 의미는 깨우치고 어질다는 의미로 정했으나 작명 어플을 돌려 광채로 충만한 의미로 바꿨다. 딸의 이름은 남편이 작명소에서 제법 큰돈을 주고 지은 이름인데 어찌나 흔한지 같은 생년월일에 성까지 똑같은 이름이 우리나라에 세 명이나 있다고 한다.
남편이 정성 들여지어 온 이름이지만 너무 흔해서 정말 성의 있게 지은 이름인가 싶었다. 그런데 딸이 자기 이름을 어플에 돌려보니 발음 오행과 음양이 매우 좋음으로 나온다며 아기 이름도 그렇게 매우 좋음이 나오는 광채로 충만하다는 뜻을 가진 한자로 정했다. 처음과 달리 좋은 뜻을 담은 아기 이름이 발음과 오행이 좋다고 하니 나도 괜찮구나 싶었다.
개명한 사람들은 바꾼 이름을 많이 불러주어야 한다며 새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청한다. 우리 아기 이름도 그렇게 좋은 이름이라고 하니 좋은 일에 불러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첫걸음이 몹시 빛나는 자리였다. 봉사 활동을 많이 하는 동생이 아기 이름에 힘을 실어 주었다.
동생은 장애인 어린이집인 베다니어린이집이 확장 이전해서 개원하는 날 그곳의 개원 축하 떡을 아기 이름으로 기부했다. 출생 신고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 이름이 가치 있는 일에 쓰인 것이다. '예쁜 마음 OOO님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에 쓰인 아기 이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았다.
할머니는 그렇게 앞으로도 내내 아기 이름이 소중하게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